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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종로서적
작성자 조윤하     게시물번호 -1290 작성일 2005-05-01 00:20 조회수 1969

*** 책방의 추억 ***

 

내 흘러간 세월 속에 책방의 추억이 단연 기니긴 시간의 띠로

내 허리를 감고 있다.

 

결혼을 하여 일년을 더 출판사 근무를 하던 중

노량진 언덕배기에 차린 신혼 살림에서

아침이면 시간에 맞춰 경사진 비탈을 뛰어 내려오던 출근 길,

급기야는 나도 모르게 들어 선 태중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으로

직장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써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가난한 남편은 이제나 그 때나 책을 사 들이는 독서광이 였으며

줄 담배를 피우 듯 책을 연이어 읽었다.

그 결과의 산물이 우리들 결혼 당시의 신접살림은 허접한 가구

몇 점과 그와 내가 모아 놓았던 책장의 책무더기 뿐이었다.

 

그의 적은 봉급으로는 도저히 우리들의 미래의 꿈을 가꾸기엔 턱없는 부족함으로 내 부업을 설계하던 중

책방을 선택 1호로 꼽고 노량진 시장 좁은 골목에 작은 서점을

open 하였다.

 

후에 아들 셋을 낳아 이름을 三友書籍 이라 간판을 다시 갈아붙힌

이유는 이 책방이 나의 세 아이들의 더 없는 벗이 되어줄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이 커 가듯 조금씩 키워 온 서점이 대로변으로 나와

노량진 삼거리 코너에 번듯하게 자리 잡고 신림동으로 옮겨 온

서울대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70년대 유신체제를 거치는 동안

참으로 금서가 많았었다.

리영희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며 신동엽전집, 한완상교수 저서며

김지하시인의 5賊과 셀 수 없이 많은 판금서적들로 수시로 서점을

뒤지며 책을 걷어가곤 했었다.

 

유신시대가 물러가는 동안 나라 살림이 조금씩 늘아가는

5공시절, 국민의 의식과 관심을 레저와 스포츠 방면으로

몰고 가면서 국민들의 독서량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입시를 돕기 위한 참고서 위주의 판매가 서점의 위기를

버텨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노량진 부근으로 몰려오는 유명학원들을

따라오는 수많은 서점들의 난립으로 오히려 굴러들어 온 돌들

오래 박힌 돌을 밀어내고 있어

급기야  17년의 오래도록 흘러온 강물의 고기 

수 만권의 서적을 출판사로 반품처리를 하며 정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정리단계에 남겨 놓았던 몇 권의 책을

이민 보따리 속에 끼워넣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키우며 서점을 작은 평수에서

제법 큰 서점으로 키워가던 그 시절이 참 아름답고 아득한 

추억으로 떠 오르곤 한다.

겨울이면 책방 한 가운데 벌겋게 타 오르던 연탄난로의

치열한 삶의 불덩어리를 잊을 수가 없다.

 

요즈음도 나의 남편은 여전히 많은 책을 사 들이고

독서로 밤을 패고 있다.

이따금 이곳 서점 챱터나 인디고를 따라가곤 한다.

내가 서점을 할때 꿈꾸던 분위기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보고 싶은 책을 뽑아들고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푹신한

쇼파에 깊게 몸을 묻고 몇시간 몇페이지 눈을 박아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커피향이 짙게 퍼지는 카페분위기도 곁드려 C D를 귀에 꼽고 클라식으로 부터 최신 팝송까지를

감상도 할 수 있는 책방,

그런 책방이 아니어도 작은 한국책방 하나쯤 아쉬워지는 것은

그 때의 추억이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오늘도  추억 한 줌에 젖어보는 싸늘한 봄밤에

머물러 있다.   

 

  

 

 

 

 

 

 





☞ michael 님께서 남기신 글


 

5년 전 서울 갔을 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 중 한 군데가 종로서적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점에서 책을 사고 종로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하던 추억,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있는 종로, 명동 일대.

 

종로서적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5층까지 올라가는 비좁은 엘리베이터, 좁디 좁은 계단. 3층에서 책을 골랐다. 고등학교 2학년이 읽을 교양필독서적을. 그녀는 내게 골라야 할 책의 목록을 보여주었다. 목록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목록 중에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그 책은 금서였는데 이젠 고등학교 2학년 교양필독서적이 되었다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다.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나는 그 책을 읽어봤는데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는 게 왜 그 책이 금서였는지.

 

추측해 보건대 독재정권은 민중들 특히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을 갖는걸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 하는데 역사란 무엇인가 가 금서가 된 게 그런 이유가 아닐지.

 

아이들 책을 사고 어른들 책도 한 권씩 샀다.

나는 그녀에게 안도현 시집을 그녀는 내게 체 게바라 평전을.

우리는 인파 속을 걸으며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 와 죽을 때를 이야기 했다.

주인공 에른스트 그레버 와 엘리쟈벳의 절망적 이고 한시적 사랑을. 아니, 우리 자신이 그런 한시적 절망적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종로서적이 부도가 나서 문들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3년 전, 추억의 한 모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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