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은 흘러 유명(幽明)을 달리하신지도 50여년이 되었군요.
솔직히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바 별로 없지만, 당신의 손 끝에서
빚어진 처절한 아름다움은 이 천박한 나의 두 눈에도 심상치 않더군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절벽 끝 같던 그 시절,
순수한 예술의 열정 하나로 버티며 철저히 외로운 화가였던 당신은,
그러나 모질게 불어치는 세파(世波)에 목숨까지 내어 주셔야 했지요.
이 세상에서 향기로운 정신을 지탱하기엔 병들어 너무 약한 육신이었지요.
그렇게 죽은 후 오랜 세월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천재화가가 될 수 있었고
그림 속에 잠자던 당신의 조선(朝鮮) 소들은 굉음 지르며,
적막하게 감고있던 눈들을 부릅 떴지요.
하지만, 죽음 후의 명예란 얼마나 공허한가요.
침 튀기며 칭송하는, 후세의 찬양들이란 그 얼마나 헛헛한 것인지요.
공연히 죄(罪)스럽더군요. 당신의 그림을 보는 내 눈이 미안해 지더군요.
결국 당신이 있는 불귀(不歸)의 먼 하늘은 지금의 세상과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데, 살아남은 당신의 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단 한번의 자유를 위해 죽어간 당신 앞에서,
그 소리 안나는 완벽 앞에서,
우리들에게 부끄러운 소름이라도 돋게 하고 싶은 건가요.
밥 없으면, 라면을 먹는 이 시대에 당신의 가난과 질병 속에
홀로 처절했던 예술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결국, 그렇게 죽어간 당신만 억울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요,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이 쓸쓸하고 캄캄해지네요.
한 치 앞이 안보이네요.
차라리 가난 속에서도 영혼 따뜻했던, 당신이 현명했던 것인가요.
당신의 그 혹독한 외로움이, 오히려 더 생기로운 삶이었던 것인가요.
대답 좀 해주세요, 화백님.
이중섭(李仲燮)
[출생] 1916년 평남 출생
[직업] 서양화가, 호는 '대향'
[데뷔] 1941년 '미술창작 작가협회전'으로 데뷔
[특이사항] 1956년 9월 간염 등으로 사망
[작품] 소, 흰 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