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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감상] 소리에도 뼈가 있다고 / 김종제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509 작성일 2005-06-15 17:38 조회수 1869
 


소리에도 뼈가 있다고 / 김종제


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창(窓)에 부딪히는 저 빗소리로부터
문(門)을 흔드는 저 바람소리로부터
담장을 슬쩍 넘어가는
어둠 속 초생달의 발자국 소리로부터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
소리에도
무릎 같이 부드러운 뼈가 있고
등허리처럼 강한 뼈가 있어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새벽의 여명이 오기 전에
둔탁한 굉음을 내면서
굴러가는 바퀴들이
잔뜩 독이 오른 수 많은 뼈들을 몰고 온다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
껍질 속의 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 하나가
나의 몸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가
당신이 쓴 시 한 구절을 읽던가
그런 어느 날에 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소리 소리를 지르리라
손을 내밀어 나의 목소리 같은
저 단단한 뼈를 만져 보아라





gusukgy_1115247861_1.jpg

강원도 출생
1993년 ≪자유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정시마을 정회원
現. 선진공업고등학교 국어교사
시집으로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내 안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이여> 등
시마을에서 필명 '구석기 김종제'로 활동





* 현실계現實界와 창조적 상상의 세계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긴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월리스 스티븐즈'(WallaceStevens 美 1879 ~ 1955)
같은 시인은 그의 [현대시에 관하여] 에서, '아마도 지각知覺에는
실제적인 것과 상상된 것이 하나가 되는 상태가 있을 것이다.
이는 시인이, 특히 매우 명민明敏한 시인이 접근 할 수 있고,
그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투철透徹한
관찰의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굳이 그의 이런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시는 결국,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시인의 예리한 관찰에 의해 그 기초의
뼈대가 다듬어 진다고 생각한다.

김종제 시인의 시편들에서는, 늘 이러한 투철透徹한 관찰이
그의 시에서 전율처럼 다가서는 그 어떤 선각적先覺的 지성과
그것이 촉구하는 각성覺醒의 자리매김에 있어서 주요한 힘의
배경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시, '소리에도 뼈가 있다고'에서도 이러한 시적詩的
접근의 자세는 그의 여타의 시편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균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창(窓)에 부딪히는 저 빗소리로부터/
문(門)을 흔드는 저 바람소리로부터/
담장을 슬쩍 넘어가는/
어둠 속 초생달의 발자국 소리로부터/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
소리에도/
무릎 같이 부드러운 뼈가 있고/
등허리처럼 강한 뼈가 있어/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소리'에도 뼈가 있음을 진술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무심하게 간과看過해 온 '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사유思惟의 공간을 화두話頭처럼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리'에 관한 시인의 관찰이 예리하고 신선하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소리'는 무형無形의 파장이다.
그것은 우리의 귀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로 인식되어
상념화 되며, 그에 따른 행위의 유발誘發과 남겨지는 기억이란
형태로 진전한다. '소리'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단순화한다.

아마도, 시인은 그런 단순함의 고착화固着化에
염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소리'를 음파장音波長이 아닌, 뼈가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과의 교감交感을 통해 현대의
건조한 삶이 지닌 정체성停滯性으로 부터의
일탈逸脫을 모색한다.
즉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함은 시인의 그러한 새로운 인식의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모든 것이 획일화劃一化 되고 전형화典型化되어가는 이 시대에
당당하게 내미는 '소리의 도전장'이 인상적이다.
다만, 여기서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라고
맺음을 하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생략하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이어서, 시인은 세상이 무작위無作爲로 던져오는
수 많은 '소리'들과 조우遭遇하면서 현실의 세계와 충돌하는
내면의 세계가 요동치는 모습을 청각적 효과와 시각적
영상작용에 실린 적절한 은유와 상징으로써 잘 표현하고 있다.

새벽의 여명이 오기 전에/
둔탁한 굉음을 내면서/
굴러가는 바퀴들이/
잔뜩 독이 오른 수 많은 뼈들을 몰고 온다/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
껍질 속의 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 하나가/
나의 몸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

외부로 부터 유입된 '소리'들은 제 각기 하나의 생명을 지닌
유기체로서 시인의 내면과 충돌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했던
부드러운 뼈의 감촉보다는 날카로운 뼈의 감촉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에 그 어떤 절망감에 다다르고
그 자신 또한, 삶의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하나의 날카로운 뼈가 되어있음을 느낀다.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자연적 존재의 상실)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인위적 존재의 아픔)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소리의 끝에 남겨진 자아의 모습)

흔히, 이런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인 스스로의 감정에
몰입되어 균형을 잃기 쉬운데, 충돌의 경계점에서 외부와
내부에 균등한 감정의 분포를 하는
시적詩的 콘트롤control이 돋보인다 하겠다.

시를 마무리 하며, 시인은 이렇게 인식된 절망감에
주저 앉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위한
 '소리'를 추구하고 있다.

즉,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의 기력을 고갈시키고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소리의 날카로운 뼈'에 결연히 대항하는
'소리의 단단한 뼈'를, 자신의 목소리에 심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가/
당신이 쓴 시 한 구절을 읽던가/
그런 어느 날에 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소리 소리를 지르리라/
손을 내밀어 나의 목소리 같은/
저 단단한 뼈를 만져 보아라/

결국, 시인은 우리가 지녀야 할 '싱싱한 삶'의 면모面貌가
외부의 압박으로 침식浸蝕당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그같은 목소리는 또한, 날로 '인간의 존재'가 희미해 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목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시인의 그 같은 목소리에 다음과 같이 화답和答하고 싶어진다.



찬 바람의 목젖에 걸린 외마디 목소리.

때로 크나큰 침묵 속에서,
그것은 몸에 감긴 오랜 어둠을 떨어 낸다.

먼 곳의 그대는 나를 부르며 달려 오고,
나는 나지막히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본다.

내 그대를
능금의 심장 같은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주면,
그대, 나에게 사랑을 안겨주겠는가.


부족한 안목으로 시를 말한 것 같아, 시인에게 송구한 마음이다.
문우로서 너그럽게 헤아려 주실 것을 바라며,

김종제님의 지속적인 건필을 기원해 본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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