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도 뼈가 있다고 / 김종제
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창(窓)에 부딪히는 저 빗소리로부터
문(門)을 흔드는 저 바람소리로부터
담장을 슬쩍 넘어가는
어둠 속 초생달의 발자국 소리로부터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
소리에도
무릎 같이 부드러운 뼈가 있고
등허리처럼 강한 뼈가 있어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새벽의 여명이 오기 전에
둔탁한 굉음을 내면서
굴러가는 바퀴들이
잔뜩 독이 오른 수 많은 뼈들을 몰고 온다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
껍질 속의 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 하나가
나의 몸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가
당신이 쓴 시 한 구절을 읽던가
그런 어느 날에 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소리 소리를 지르리라
손을 내밀어 나의 목소리 같은
저 단단한 뼈를 만져 보아라
강원도 출생
1993년 ≪자유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정시마을 정회원
現. 선진공업고등학교 국어교사
시집으로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내 안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이여> 등
시마을에서 필명 '구석기 김종제'로 활동
같은 시인은 그의 [현대시에 관하여] 에서, '아마도 지각知覺에는
굳이 그의 이런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시는 결국,
김종제 시인의 시편들에서는, 늘 이러한 투철透徹한 관찰이
그의 시에서 전율처럼 다가서는 그 어떤 선각적先覺的 지성과
그의 시, '소리에도 뼈가 있다고'에서도 이러한 시적詩的
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창(窓)에 부딪히는 저 빗소리로부터/
문(門)을 흔드는 저 바람소리로부터/
담장을 슬쩍 넘어가는/
어둠 속 초생달의 발자국 소리로부터/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
소리에도/
무릎 같이 부드러운 뼈가 있고/
등허리처럼 강한 뼈가 있어/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소리'에도 뼈가 있음을 진술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무심하게 간과看過해 온 '소리'에 대해
한마디로, '소리'에 관한 시인의 관찰이 예리하고 신선하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소리'는 무형無形의 파장이다.
그것은 우리의 귀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로 인식되어
상념화 되며, 그에 따른 행위의 유발誘發과 남겨지는 기억이란
형태로 진전한다. '소리'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단순화한다.
아마도, 시인은 그런 단순함의 고착화固着化에
그는 '소리'를 음파장音波長이 아닌, 뼈가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과의 교감交感을 통해 현대의
건조한 삶이 지닌 정체성停滯性으로 부터의
즉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다'함은 시인의 그러한 새로운 인식의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모든 것이 획일화劃一化 되고 전형화典型化되어가는 이 시대에
당당하게 내미는 '소리의 도전장'이 인상적이다.
다만, 여기서 '서거나 걷거나 달려오는 시간이 있다'라고
'나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생략하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이어서, 시인은 세상이 무작위無作爲로 던져오는
새벽의 여명이 오기 전에/
둔탁한 굉음을 내면서/
굴러가는 바퀴들이/
잔뜩 독이 오른 수 많은 뼈들을 몰고 온다/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
껍질 속의 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 하나가/
나의 몸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
외부로 부터 유입된 '소리'들은 제 각기 하나의 생명을 지닌
그 자신 또한, 삶의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꽃과 나무와 새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자연적 존재의 상실)
(세상의 눈빛들이 서로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낸다/-->인위적 존재의 아픔)
(캄캄한 입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뼈 같다/-->소리의 끝에 남겨진 자아의 모습)
흔히, 이런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인 스스로의 감정에
시를 마무리 하며, 시인은 이렇게 인식된 절망감에
즉,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의 기력을 고갈시키고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소리의 날카로운 뼈'에 결연히 대항하는
'소리의 단단한 뼈'를, 자신의 목소리에 심고자 하는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가/
당신이 쓴 시 한 구절을 읽던가/
그런 어느 날에 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소리 소리를 지르리라/
손을 내밀어 나의 목소리 같은/
저 단단한 뼈를 만져 보아라/
결국, 시인은 우리가 지녀야 할 '싱싱한 삶'의 면모面貌가
외부의 압박으로 침식浸蝕당하는 것을
시인의 그같은 목소리는 또한, 날로 '인간의 존재'가 희미해 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목소리'가
나 또한,
시인의 그 같은 목소리에 다음과 같이 화답和答하고 싶어진다.
찬 바람의 목젖에 걸린 외마디 목소리.
때로 크나큰 침묵 속에서,
그것은 몸에 감긴 오랜 어둠을 떨어 낸다.
먼 곳의 그대는 나를 부르며 달려 오고,
나는 나지막히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본다.
내 그대를
능금의 심장 같은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주면,
그대, 나에게 사랑을 안겨주겠는가.
부족한 안목으로 시를 말한 것 같아, 시인에게 송구한 마음이다.
문우로서 너그럽게 헤아려 주실 것을 바라며,
김종제님의 지속적인 건필을 기원해 본다.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