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혼절(昏絶)이나 해 버릴 것을
풍차에 실린 들녘의 바람이
목 조이려는 몸짓으로 윙윙거린다
가을비에 씻긴 논두렁은
드러난 그 모습만으로도 핏기 하나 없는데
어느 농가의 장례식에서 울음 참았던
모진 아픔이
볏짚처럼 누워버리고
무언(無言)의 참대숲은 우수수(憂愁愁)
조문(弔問)을 한다
가식의 밥 숫가락,
오늘도 입 안을 들락거리고
오열(嗚咽)은 이제 막막한 심호흡으로
가녀린 묵주(默呪)를 집어 삼킨다
보려했던 눈과
말하려했던 입과
들으려했던 귀가
죽은 자(者)의 얼굴 위에
기억으로 머물러있어 애처롭기만 한데,
최후로 뿌려진 순백색 빈민(貧民)의 선혈은
변색(變色)치 않는 태양의 빛
그것은
초라했던 삶을 비추어
어두운 언덕 저 너머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도
그래도
황금관을 머리에 쓴 자들은
오늘도 반역(反逆)의 음모 꾸미며
빈사(瀕死)의 들녘에서 축배를 든다
망각에 익숙한 탄식만이
침체(沈滯)로 가득한
이 암담한 정경
피골(皮骨) 드러낸 외로운 혼(魂)들이
소박한 분노를
침묵의 땅에 묻어버리면,
어이없는 슬픔 달래듯
파랑새 한마리가
고독한 하늘을
가슴으로 품는다
빈 들에는
이제
아무도 오려 하지않는데
누구도 거들떠 보려하지 않는데,
참대숲만 바보처럼 홀로 노래 부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