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모습은 여전했다
한 잔 술에 불콰해진 얼굴이 고왔다
이제, 편안하십니까?
홀로 이승에 남은 부인이 그립다 했다
저승에서도 차마 놓지 못한 사랑
지상에서의 그의 삶은
너무 고된 질곡의 삶이었다 한다
시인에게 물었다
그럼, 아름다운 소풍길은 뭡니까?
살아가는 동안 꿈이라도 고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지극히 단순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진실한 시를 쓰고 싶으면,
네 영혼에서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는
고뇌는 말하지 말라고
부끄러워서, 빨리 꿈을 깨고 싶었다
시인이 말했다
아, 이 사람아
술이나 한 잔 하고 가
여기 하늘나라는
맛좋은 술이 모두 공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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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千祥炳 1930∼1993)
시인· 평론가.
일본 히메지시[姬路市(희로시)] 출생.
1949년 마산중학교 재학시절 시인 김춘수(金春洙)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첫추천되었고,
1952년 시 <갈매기>로 추천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5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수료하였으며,
재학중 송영택(宋永擇)·김재섭(金載燮)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였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으며,
한때 실종되어 동료 문인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가 발간되었던 일화가 있다.
무소유의 방랑시인이자 자유시인이었다.
저서로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와
유고시집《나 하늘로 돌아가네(199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