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없는 얼굴로
포획(捕獲)의 그물을 치던
창백한 본능의 욕구
아니 그것은 이미 종교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너는 투철한 정신의 상징으로
우리의 시대를 풍미(風靡)해 온 것을
그래,
죽음의 시간 후에 낡은 줄에 매달린
육신의 껍질을 보면
이따금 운 좋게
네가 지닌 환상적 이데오르기의 정체를
볼 수 있다
제 알맹이를 스스로 파먹었던
표독스러운 노고(勞苦)를
그 환멸을
아, 정직한 배고픔은
어떤 죄악도 용서해 주는 섬뜩한 신앙
그리하여
세상은 참으로 하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멍텅구리 같이 은혜로운 것들도 있어서
쇠약한 영혼이 목을 매는 날에도 아침은 싱그럽고
저주받은 삶들이 웅크린 어두운 숲 속에도
행복을 예감하는 새들은 지저귀고
심지어,
대낮에 제일 외로운 태양은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고
한밤에 가장 괴롭게 침묵하는 달 까지도
메마른 가슴들로 하여금 시를 노래하게 하며
단 한번의 악수에도 깊은 정(情)을 느끼는
바보 같은 마음들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의 모습에서
완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렇다 하여 무작정 헐벗은 시간들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둘러보면,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 조차도
이 삭막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그렇게 고운 수의(壽依)를 입고
땅 속에 묻히는 걸 우린 매일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