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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만삼천원
작성자 지나다     게시물번호 -2139 작성일 2005-11-25 09:19 조회수 1729
축의금 만 삼천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글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면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가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으날.
너와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 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원이다.하지만 슬프지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을 너와 함께 읽으면 눈물 흘렸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면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
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내손에 사과 한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 냈다. 신혼 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으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 해다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서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면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 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기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읽을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나 있다. 조그마한 서점에서 내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잔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수 백 명의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시간이나 계속됐다. 나에게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주야,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다. 살며시 웃으면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그런 감나무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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