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구주'(Real Saviour)
파스칼은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다가 뒤늦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 중 하나이다. '팡세'의 작가로 유명하기도 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내가 잘 나서 그런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하나님이 수학의 하나님이요, 철학의 하나님이요, 과학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의 참 구주가 되신다는 얼마나 멋진 신앙고백인가.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한다. 세상에서 할만 한 것은 다해보고 즐길만 한 것도 다 즐겨보았지만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체험하고 있던 차에 여인은 세상의 참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삶의 변화가 없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Real Christian)이라 할 수 없다. 여인은 삶의 변화를 가져와
물동이도 내버려둔 채 동네로 뛰쳐가 그가 메시야(Messiah)임과 참 구주임을 증거하였다. 너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 뛰어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예수 스리스도의 삶 또한 복음 증거로 그의 삶을 보낸다.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은 복음전파(Preaching),
제자훈련(Teaching), 병자 치료(Healing)이다. 이중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 더 나아가 사마리아 지역
전체에는 참 구주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거늘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이 땅을 살고
있는가. 정말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야 할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멸시하고 기피하는 사마리아 지역에까지 들어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늘 날 우리가 전하여 할 복음의 대상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외모로만 평가한다든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바라볼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구원의 대상으로 시각을 바꾼다면 주님의 사역의 소중한 일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겠는가.
위니펙에서 한 40대 남자가 자살한 사건을 최근 신문에서 읽었다. 몇 년전 1천만불의 복원(Lotto) 당첨자로 행운을 잡았던 그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그 돈으로 매일같이 술과 마약으로 파티를 하며 흥청망청 낭비를 하였다고 한다. 사업도 부도나고 결국 그 많은 돈을 다 날려버리고 인생의 절망과 회의를 느껴 자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비극이다. '돈은 일만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마치 주님을 알기전 사마리아 여인처럼 인생의 고통가운데 서 있는 것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주님이 없는 삶은 생명이 없는 고목나무와 같다. 주님 안에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의 삶은 소망과 기쁨과 생명으로 가득차게 된다.
캐나다는 기독교 국가이면서도 점차 내리막 길로 내달리고 있다. 마치 레일을 벗어나기 직전의 기차와 같이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믿음도
약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전 일간지 사설에 "누가 캐나다를 구할 것인가?"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계속하여 폴 마틴의 과감한
정책 드라이브 즉 '동성애 합법화'와 '마약지역의 합법화' 이슈(issue)와 정책화는 캐나다인의 여론을 이분화 시켰으며, 그의 불안정한
리더쉽을 드러나게 하였뿐이다. 과연 아무도 캐나다를 구하지 못하는 것일까. 더 중요한 것은 좌절감, 소외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사마리아 지역이 유대로부터 극심한 소외감, 열등감, 좌절감으로 고립무원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마리아 지역을 찾아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강한 도전이 된다.
마지막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의 말을 인용한다. 현대 시대의 교회는 점점 설 땅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한다.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교회,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교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 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로 전락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피값으로 세워진 곳이다. 교회가 세상에 나아가 살아계신 주님의 마지막 캡슐즉 방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hopeless 가 아닌
hope를 주는 교회로 helpless가 아닌 help로 구제하는 교회로 powerless가 아닌 power 있는 교회로 바뀌어진다면 세상을
변화될 것이다. 내가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변화되어지지 않는다. 주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share)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캘거리 전체에 넘쳐 흐르기까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진종 목사 < 순복음 캘거리쉼터교회 >
* 추신: 위 글은 기독신문 "미션캘거리" 제 1호에 실렸던 내용
그대로 전문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