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눈
지친 몸, 나무 등걸에 기대 세우고
잠시 서서 숨 고르며 뒤 돌아 보라.
밟고 온 길 마다
묻힌 듯 빛나는 옛날의 금잔디.
눈물 흠뻑 먹고 푸릇하니 누워있는
들판을 보라.
한숨 거두고 지긋이 내려다 보면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는가?
그렁한 눈 들어 하늘을 보라.
봄 내음에 연한 꽃잎,
서러움이 터져 창백한 눈발,
서로 상처 받으며 말 없이 나린다.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 새 순이 돋는데,
진실로 진실로 실종을 꿈 꾸면
오월의 하늘 가득 덧없어 눈이 나린다.
흉진 가슴 쩌억 열어 젖히며
참담하도록 눈이 퍼붓는다.
눈물을 거두고 보라.
눈 나리는 오월에도
하필이면 꽃이 피고 바람 불고 새가 날고
맑은 햇살은 여전히 꾸벅 꾸벅 졸고 있다.
보기 좋더라, 그러 하더라!
아, 정말이지 죽고 싶더라! ( 2004.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