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창에 불어온 정처없는 가을 바람은
사나운 미로(迷路) 그리던 내 마음에
황홀한 죽음에나 어울릴만한
창백한 창공을 열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방 안에 머물러 있던 빛살은
하염없는 흔들림으로 지난 밤의 고뇌를 엮어
그것은 추종(追從)의 언덕배기 기어오르는
기대의 인력만큼이나 팽팽한 감각으로
병든 가슴을 쓰다듬고,
그리하여 나는 고달펐던 지난 여름이 사라져간
먼 골짜기를 향해 영원한 이별의 손짓을 한다.
아, 길도 아닌 길의 흔적을
서럽게 감추는 낙엽은
외로움에 익숙한 나의 그늘.
헐벗어 가는 예언의 대지 위에
길게 퍼져나간 갈숲의 흐느낌에서
나의 보잘 것 없던 열정과 덧없는 노고를
스스로 위로하는 깊은 음향을 들으면
이미 나는 잠자는듯한 고행을 꿈꾸는 이방인이지만,
삶의 굴레가 끈질기게 남겨놓은 불안만은 어쩔 수 없어
한때는 너의 매력으로 빛나던 나의 환희가
바람이 쓸고간 들녘에 고독한 몰락처럼 메아리 친다.
낯설고 고요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바람은
기울어진 햇살 너머 마알간 하늘로 날아 오른다.
이전에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린 양,
정말 아무 미련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