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6·15선언 17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중국의 평화 우선주의와 북의 자주노선”을 발췌해 ‘자발적 대미 예속주의 사례’라는 제목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강 교수가 지적하는 예속주의는 제가 말하는 식민주의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한국사에서 수천년 동안 한국이 중국의 종속국으로 시녀노릇을 했듯이 2차대전 후 지난 70년동안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강 교수는 우리의 부끄러운 발자취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람들마다 각 자 역사를 이해하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강 교수의 글은 시국을 왜곡하지 않고 직시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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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대미 예속주의 사례
(참고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061)
미국관련 사드 배치·반입은 일본관련 위안부 12·28합의와 함께 대한민국 국가자주의 완전실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의 전형적인 사례 몇 개와 그 뿌리를 살펴보겠다.
대미 예속주의 사례 1
대한민국 국방부와 외교부의 상상을 못할 정도의 극단적인 자발적 예속주의는 참여정부 당시 두
가지에서 확인되어 사회적 쟁점이 되었지만 전혀 근절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 사드 배치와 반입에서 재확인되었다.
사례 하나는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의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보고”(2003. 11월 18일)이다.
보고서의 ‘총괄평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협상주체의 하나인 외교부 북미국(북미3과)이 “미국에 대한 지나친 맹종적 자세와 현상 유지적 속성으로 당당하고 합리적인 협상외교를 전개하지 못하면서 중요 정보에 대한 독점적 장악과 통제를 통해 조약국 등 여타 부서의 적법하고 정당한 조언을 무시하고 참여를 제약함으로써 협상 실패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
둘째, 국방창구인 국방부 정책실(용산기획반, 미주정책과)은 “오랫동안의 대미 의존으로 인한 특유의 추종 자세와 좁은 시야를 벗어나지 못해 협상 시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으며, 부처 내 법무관리관실 법무관들이 협상과 관련하여 제시한 검토 의견을 무시하고 제한”하였다.
셋째, 외교안보 분야의 총괄 조정기능을 맡고 있는 NSC(전략기획실)는 “용산기지 이전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전략적 의도 등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확한 전략방침을 제시하면서 대미의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외통부와 국방부를 적절히 견제하고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공동보조를 맞추어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자세를 내보이는 등 외교안보의 전략본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례 하나는 외교통상부 북미3과 김XX 외무관이 대미 협상 팀은 “용산기지 협상을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제를 기초로 했다”고 실토한 협상원칙 내용이다.
①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가 돈이 들던지 추진해야한다.
③ 국회와 국민들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과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④ 협상은 외교부, 국방부, NSC가 주도가 되어 비밀로 추진하고 관계부처와의 협의는 문안이 완성된 단계에서 하되 그 범위는 최소화한다.
⑤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의 개입은 최소화시킨다. (실제로는 아이러니하게 서주석 실장 등 NSC 인사들은 협상 과정의 대부분을 추인해 주었다.)
⑥ 용산기지 이전을 신속히 그리고 조용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하며 법률가적인 지엽주의는 경계해야한다.- 상기와 같은 입장을 기초로 조약국의 이견은 무시한다. 협상은 북미국이 주체이며 조약국은 그것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대미 예속주의 사례 2
김대중 정권 당시 공군의 차기전투기사업(F-X) 외압설 폭로의 주인공인 조주형 공군대령이 2002년 6월 26일 3차 공판 최후진술에서 국방부의 ‘식민지성’을 국방부 수뇌부의 자발적 예속주의성이란 행위적 측면과 한국 군부체제의 미국동질화라는 구조적 측면을 함께 거론하면서 질타한 데서도 드러난다.
“미국 무기에 대한 국방부 수뇌부의 맹목적인 추종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이 미국에 종속적인 위치에서 F-X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의 자국이기주의와 우리나라 지도층 일부의 사대주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군에 의한 군사종속 때문입니다... 우리 군의 모든 체제는 미군 체제에 의해 동질화되었으므로 미국 무기 이외에는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냉철하게 떠져보면 식민지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오마이뉴스>2002.7.13.).
이 결과 조주형 대령은 군사재판에서 사병으로 강등되고 강제 전역되었다. 미국이란 성역을 건드린 결과이다.
대미 예속주의 뿌리
이 대미 자발적 예속주의는 해방공간부터 한·미 인적동맹을 맺은 친일친미파에 의해 축성되어 그들의 생존전략으로 체질화했다.
이 예속주의를 발판으로 친일친미파가 미 점령군의 배양육성 정책에 힘입어 한국사회의 기성주류가 되었고, 이 결과 예속주의는 우리 현대사의 굽이굽이마다 스며들어 지금까지 난공불락처럼 공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반(反)자주의 역사 행로를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부터 제도적으로 강제하고 지속시켜 왔다.
그 전형적인 보기가 1954년 11월 17일 이승만 정부에게 쿠데타 위협과 석유공급 중단 등 온갖 위협을 통해 불법적으로 관철시킨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부속문서인 한미합의의사록이다.
이 부속 합의의사록은 정치, 통일, 경제, 군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을 농단하고 미국에 예속시키는 합의였다. 형식상으로도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방위조약의 부속합의서 형태로 처리해 불법적이었다.
이 합의의사록은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절대적인 통일, 국가주권의 절대적 요소인 작전지휘권, 국군병력 수나 기준, 사회경제체제 등등이 미국의 지배와 감독을 받도록 보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국토통일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미국과 협조”하며,
“...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군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두며,
“부록 B에 규정된 바의 국군병력기준과 원칙을 수락”하도록 하고,
“투자기업의 사유제도를 계속 장려한다”로 자본주의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해방 70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런 예속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어 반(反) 자주의 장막이 이 땅위에서 계속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