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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초자연적인 하나님없는 종교가 필요한 시대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0132 작성일 2017-06-22 08:28 조회수 1546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키는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종교들때문에 세계가 온통 테러와 전쟁으로 불안합니다. 자신들만이 정통이고 진실하고 나머지 모두는 심판을 면치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위협하는 초자연적인 신의 종교들이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심지어 온갖 폭행을 저지릅니다. 더욱이 이러한 만행을 자신들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릅니다. 

오늘 우리의 세계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알라/신 없는 종교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은 교회 안에서나 하는 개인적인 계시일뿐인데, 교회 밖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따라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몰상식하고 망상에 젖은 행위입니다.   

초자연적인 신 없이도 종교는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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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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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댓글 달아 드립니다. 원망(願望)과 예측은 다릅니다. 앞으로 15년 내에 중국은 세계에서 기독교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되리라고 퍼듀 대학교의 사회학자 양선생이 주장했습니다.
"By my calculations China is destined to become the largest Christian country in the world very soon," said Fenggang Yang, a professor of sociology at Purdue University and author of Religion in China: Survival and Revival under Communist Rule.
중국은 공식적으로 무신론 국가구요. 쏘비엣유니온 기간동안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인은 물론 시베리아 샤먼들에 대해 가한 박해, 테러, 살상을 한 짓을 알아야 하구요. 쏘비엣유니온을 무신론적 폭력의 예외적 현상으로 하면 안되구요.

퓨 리서치 센타에 따르면, 2035년이 되면,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인 아이 출산수를 넘어선다고 합니다. 이슬람은 유일신적 신념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Babies born to Muslims will begin to outnumber Christian births by 2035, a study has found.The results, published by the Pew Research Centre on Wednesday, find that followers of the Muslim faith are projected to be the world's fastest-growing major religious group in the decades ahead.

흥미롭게도 기독교와 이슬람은 2060년에 크게 늘어난 상태가 되고 무종교인의 수는 줄어든다고 합니다.
Both Muslims and Christians are expected to capture a larger share of the global population by 2060. In contrast to this boom, the number people who do not identify with any religion are projected to decline in coming decades.

다른 책에서도 철저 무신론자들 (active atheists)의 고령화 땜에 더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출산율 땜입니다. 유럽에서 곧 무슬림 인구가 5%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면 유럽의 종교적 상황은 다른 이야기가 되죠.

신없는 종교는 가능하다는 말은 누누히 저도 말한 바지만, 신있는 종교(불교의 보디사트바를 포함해서)가 가장 강력한 문화적 힘입니다. 아, 답답하다...

그러니까 신있는 종교의 쇠퇴는 우리 세대의 담론이 될 수 없어요.

늘봄  |  2017-06-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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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종교학자들과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초자연적인 신(the supernatural God)과 신(god)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초자연적인 신은 자연의 법칙을 기도의 요청을 받아 깨트리는 신이고, 신은 초자연적인 신과는 달리 삶의 방식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말하기를, 21세기에 초자연적인 신은 필요없지만, 신의 새로운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적 자연주의와 과학적 자연주의가 요즘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논쟁보다 나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없이 선할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믿었던 40대 이전 시절보다 지금 훨씬 더 자율적이고 창조적이고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역사적 예수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20년 전문목회에서 부지런히 설파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지금도 개인적인 경험과 목회경험을 살려 여기저기에 저의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에 유투브에 "진화영성"이란 타이틀로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는 초자연적인 신과 신의 구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는 믿는 신 보다, 살아내는 신의 의미가 필요하고 더욱 소중합니다.

나의 경험적인 이야기에 마음이 상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학문적인 논쟁을 벌리기 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좋은지 양심적으로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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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이나 종교학 그리고 여타 사회과학은 경험과학입니다. 그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지 상상에 입각한 speculation이 아닙니다. 사회과학자의 글을 보고 그 글은 speculation에 불과하다고 하면 기분 엄청 나쁠 겁니다. 진화론으로 인간의 문화나 종교현상을 연구하는 것도 경험 자료를 갖고 하는 것이지 speculation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봄님은 초자연적 신과 신의 구분은 중요하다고 했는데, 개념적 적합성을 볼 때 그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습니다. 지난 번에 늘봄님의 생각을 사람들이 무신론으로 오해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범주적 오류입니다. 그런 불평보다는 차분한 설명이 더 중요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 상한 것이 아니라, 님의 social construction에 흥미는 있긴 하지만 그 선동적인 글엔 맘이 그냥 답답한 것이죠. 양심적이고 상식적인 글은 늘 사실에 입각하고 객관성을 담보하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speculation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수든 진보든 열린 사회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늘봄님의 목회 경험은 오히려 종교이해에 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실천은 좋은 이론에 기반할 때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요? 진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는 겁니다. 저는 아직 종교학 써클(종교사회학, 종교정치학, 종교인류학 포함해서)에서 어느 종교학자가 진보냐 보수냐로 논쟁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누가 종교라는 현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설명하느냐에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 학습 이후에도 얼마든지 자기의 진보적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늘봄님의 신학운동은 선교행위의 일부 또는 목회경험의 연장이지 종교이해를 위한 출발점은 아닙니다.

늘봄  |  2017-06-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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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에 감사합니다. 독자들이 자율적으로 생각하시고 분별하시겠지요.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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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유신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전통적인 신앙을 잃은 사람들을 향한 늘봄님의 목회적 비전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Unitarians이 이런 일을 하고 있거든요. 유니테리안 교회는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다 수용하는 편입니다. 유니테리안 교회의 역사를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니테리언 교회를 위해서 늘봄님께서 공헌을 하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캘거리의 유니테리언 교회는 10여년 전 두번 나간 적이 있습니다. 에드먼튼도 있는데 요즘 거기 한 번 가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연합교회도 많은 교역자들이 유니테리안적으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신념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이런 현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Olds, Mason, [American Religious Humanism] (Revised Edition), 2006은 유니테리언 교회의 역사입니다. 아마도 이 책을 보시면 늘봄님의 사상과 목회적 비전과 유사한 유니테리어니즘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에요. '종교 휴머니즘'이라는 책 제목만 보셔도 늘봄님의 사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유니테리언에 대한 수요한 꾸준한 면이 있습니다. 수백년에 걸쳐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경우죠. 유니테리안은 주변의 사회환경과의 tension이 낮아서 주류문화에 속하지만 신종교학계에서는 신종교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도 하죠. 이러한 유니테리안적 신념에 대한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은 굉장한 흥미거리이기도 합니다.

늘봄  |  2017-06-2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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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드림의 이번 주 <칼럼-문학>에 "그런 하느님을 믿기 보다, 우주를 신뢰하자" 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습니다. 신을 믿는 종교 보다 신의 의미를 살아내는 삶이 오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신의 의미를 살아내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면서 신이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종교 보다 우주의 법칙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나의 삶을 100% 책임지는 것이 진실한 종교이며 새로운 의미의 신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신-하느님-하나님 이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 말들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말의 의미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밖 세상에서 이런 말들을 일상생활에서 듣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웃과 세상을 위해 선하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신을 들먹거리는 종교 보다, 신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도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삶이 훨씬 더 소중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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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의 이러한 댓글은 예배당이나 절에서 발언되어야 하는데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히 말씀하시니 낯 뜨겁습니다. 종교는 과학이 아니라 상상이며 ,신화이며, 이야기며 , 생활입니다. 무신론적 교회든, 신을 모시지 않는 선불교의 선방이든, 온갖 신을 모시는 만신전이든 그러한 종교적 실재에 참여하는 것은 신자의 몫입니다.

Dogma는 종교적인 용어인데, dogmatism은 사회과학에서 자기 이론만 맞다고 배타적인 태도를 일컬어 사용됩니다. 즉 교조주의라는 것이죠. 맑시즘이 현실 사회주의로 나타났을 때, 이것은 교조주의가 성공했을 때이고 또 교조주의 때문에 망했습니다. 교조주의는 탐구의 탐구가 아니라 자기의 깨달음을 타자에게 강요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은 교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란 현상과 사회라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고자 하는 필사적 노력입니다. 반면에 종교는 과학이 될 수 없고 신화, 의례, 상징이 주는 힘에 사람들이 힘과 용기, 그리고 사랑을 얻기 때문에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도 교조주의가 되면 그런 힘, 용기, 사랑 대신 윽박지르는 권력이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종교는 과학적 이상과 다른 차원에서 교조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종교의 종교다움은 탈교교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때 은유, 상징, 신화는 살아있는 또다른 실재가 됩니다. 은유가 제대로 음미(metaphors we live by) 되지 않으면, 은유는 cliché가 되어 버립니다. 상징이 제대로 음미(symbols we live be)되지 않으면 상징은 화석화되어 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힘을 발산하지 못합니다. 신화가 제대로 음미되지 않으면(myths we live by) 신화는 죽어 버려서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적이기도 합니다. 종교가 내 삶의 공간과 시간의 한올한올에 스며들 때 내 삶의 궁극성을 주는 것이며 나 혼자만 아니라 너와 더불어 의례(ritual)에 참여할 때 깊은 연대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일신론이든, 늘봄님의 이신론이든 뭐든 종교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하려면, 신화라는 이야기가 있고, 그러한 이야기가 의례를 통해서 음미되고, 이러한 의례적 반복을 통해서 깊은 경험적 차원을 드러내고 또 함께 하니 윤리적, 사회적 차원까지 확대됩니다.

제 소박한 생각에 늘봄님은 종교 보다는 어떤 특정한 실재에 빠져서 그것에 기쁨을 갖는 것 같습니다. 늘봄님은 신이라는 개념에 paranoid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어떤 트로마를 겪으셨는지 모르지만 신에 대한 적대적 감정과 전투태세가 늘봄님의 삶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겪은 트로마 때문에 철저 무신론자가 되거나 철저 무신론자 집안에서 보수복음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듯이 개종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이러한 전향 또는 개종 후에도 다시 돌아봐서 과거의 무신론을 수용하는 여유, 반대로 과거의 유신론을 수용하는 여유를 갖게 될 때 트로마에서 벗어나거나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유신론, 무신론, 다신론, 이신론, 탈유신론 등등이 서로 우월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즘을 우리가 갖던 그것이 어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서 meaningful하면 되는 것입니다. “늘봄 종교”에서 기쁨을 가지고 계시다면 다행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밤새 잠깐 내린 비로 아침에 커튼을 걷어내니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내린 아침 햇발이 작년 제가 심은 Swedish aspen trees의 나뭇잎 사이로 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함께 하는 종교적 봉헌을 통해서 신화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런 이야기의 플롯마다 흘러 넘치는 은유의 물결에 가슴이 벅차며, 또 그 은유가 당신(thou)과 나눌 때 상징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이러한 신화, 은유, 상징의 의미를 평생 탐구하는 사람이 바로 폴 리꾀르입니다. 좋을 주말 보내시길 빕니다. 두손모아 합장---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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