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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전쟁으로 계엄령? 글쎄......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0296 작성일 2017-08-17 20:31 조회수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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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지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극우난동분자의 살인폭력사태는 미국의 이념전선구도를 일거에 뒤바꾸어 놓았다. 부통령에서부터 티파티 소속 공화당 우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오늘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Fox News 는 '트럼프의 이상한 발언을 지지해 줄 단 한 사람의 논객도 찾지 못했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저서 'Art of the Deal' 이라는 책을 써 준 대필작가 Tony Schwartz 는 오늘 트윗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곧 사임할 거라는 전망을 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생명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는 선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나치집단과 쿠 클럭스 클랜이 가장 증오하는 유대인 사위와 유대교인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도널드 트럼프는 "Jews will not replace us" 를 외치는 나치분자들을 가리켜 '그들도 알고보면 착하고 평범한 시민 (fine people)이라는 망언을 함으로써 자기 자식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자부심이 강했던 전통적인 다문화 국가 미국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욕적인 상처를 남기게 됐다.       


대혼란의 와중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백악관 수석전략가 (Chief Strategist) 스티브 배넌의 인터뷰 발언이었다.


배넌은 극우매체 CEO 출신 이념가로 트럼프의 반이민과 반자유무역정책 멘토로 알려진 인물이다. 전국에서 모인 극우분자들이 평화로웠던 소도시 샬러츠빌에 처들어가 난동을 부린 사태에 대해 트럼프가 잘못된 발언을 하도록 부추킨 인물로 지목되어 해임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이 작자가 갑자기 어제 트럼프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발언을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샬러츠빌에서 난동을 부린 신나치와 쿠 클럭스 클랜을 가리켜 쓸모없는 낙오자 집단 (collection of clowns), 변두리 양아치들 (fringe element, losers)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벼랑끝에 몰린 대통령을 살려놓고자 한 말이었다면 이런 말은 참모인 자기가 할 게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직접했어야 했다.


정작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남부연함군 장군들 동상이 아름다운 유산이라느니, 역사는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느니 샬러츠빌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린 극우분자들도 알고보면 착하고 평범한 시민이라느니 하면서 한 시간이 멀다하고 미국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뚱딴지같은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마당에 수석전략가 혼자 이런 발언을 단독언론인터뷰를 통해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같은 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각군 참모총장 및 사령관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반인종주의 성명을 발표하고, 명백한 비난발언을 하지 않고 이말했다 저말했다 하고 있는 트럼프를 일제히 성토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스티브 배넌의 인터뷰 발언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이 작자야말로 의미심장한 야심을 품고 멀리 내다보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넌은 극우인종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기의 사상은 ethno-nationalism 이 아닌 economic-nationalism' 이라는 청사진 까지 제시했다. 앞의 단어는 부족적 민족주의 (인종주의) 로 해석할 수 있고, 뒤의 단어는 경제국가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임기 초에 배넌이 인터뷰 할 때도 economic nationalism 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의 언론들이 이 단어를 일제히 경제민족주의라고 변역을 한 기사를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nationalism 이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라고 번역해야 맞다.


지금까지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 쿠슈너 및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권력투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트럼프를 조기에 몰락시키고 자신이 대안보수의 명실상부한 새 상징리더로 등극하기 위해 그 싸움을 벌여온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는 드러난 것만 해도 두 번 씩이나 트럼프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한 번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기밀고급정보들을 언론에 순차적으로 흘린 것이었고, 다른 한 번은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와 북코리아 문제에 대해 트럼프의 말과는 전혀 상반되는 자기 입장을 개진함으로써 트럼프를 '졸지붕신'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가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는 신나치나 쿠 클럭스 클랜과 같은 역사의 쓰레기 앞에서도 지지표나 날아갈것을 걱정하며 횡설수설하는 팔푼이지만, 자기는 destructive 하기만한 인종주의는 거부하고 미국이라는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경제국가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명확히 했다.


둘째, 미국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패권경쟁 상대는 중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트럼프는 코리아반도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화염과 분노'와 같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미국을 북코리아와 동등한 수준의 나라로 만들어 세계망을 떨어댔지만, 자기는 앞으로 (갈 길은 멀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북코리아가 핵동결에 동의한다면 미국도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과 평화협정을 맺으며 주한미군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넌지시 밝히기도 했다.


기사에는 안 나왔지만 배넌은 중국과의 패권경쟁 전선에서 전략무기 신흥강국으로 등장한 북코리아와 더이상 적대적 관계를 계속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생각을 줄곧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7 월 말부터 고조된 북과의 전쟁위기국면에서 스티브 배넌은 줄곧 온건론을 펴며 백악관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선제공격론을 제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심만 많았지 그 야심을 뒷받침할만한 능력도 참을성도 없는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뛰어난 감각과 지력을 갖춘 스티브 배넌은 이제 그를 진짜 떠나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부통령은 아니니 일각의 확신에 찬 예견대로 트럼프가 올해 안에 실각한다고 해도 그의 세상이 곧바로 열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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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7-08-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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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보드님의 트럼프를 둘러싼 현 정치지형에 대한 깔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스티브 배넌이 오늘 백악관을 떠나는군요. 운전 중 들은 660 라디오에서는 fired 당했다고 하는군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트럼프 이야기 하는데, 서양인 친구한테 트럼프 언제까지 백악관에 머물 것 같냐고 물었더니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냥 제 개인생각을 확인차 물어 본 건데 미국이 살려면 트럼프가 빨리 떠날수록 좋죠. 박근혜 때 “us-and-them”라는 binary 지형을 조장해서 나라를 망쳐먹었듯이 트럼프는 더 악질적이라 무척 걱정됩니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하는 일베충들의 뻔뻔함보다 더 심한 것이 바로 KKK 놈들이죠. 문제는 박근혜/트럼프같은 정치지도자가 배출되면 그런 뻔뻔함이 일상화어 도덕성이 상실된다는 데 있습니다.

저도 해결안된 사족 하나 달겠습니다.
Nationalism을 “국가주의”로 번역하냐 “민족주의”로 번역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10년 전인가 “민족주의” 대신 “국가주의”로 썼다가 민족주의로 되돌아왔습니다. 아직까지 번역어 “민족주의”를 대체할 만한 한국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nationalism를 국가주의로 번역하면, statism이라는 말과 겹치게 됩니다. 보통 개념상 현실 국가를 state라고 하고 추상적/상징적 이념을 포괄하는 nation이라고 하죠. 현실적 국가이념을 말한다면 statism(국가주의)라고 하고 국가라는 외연과 내연을 넘는 경우는 민족주의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저는 봅니다. (어떤 경우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state와 nation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마구자비로 nationalism을 사용해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죠. patriotism과의 혼돈 때문에도 오해가 많이 일어나죠.) “Economic-nationalism”은 economic statism이란 말도 가능하기 때문에 전자를 “경제국가주의”로 사용한다면 혼돈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ethno-nationalism”라는 말도 참 번역하기 힘들죠. 이 말 역시 “부족적 민족주의”라고 하면, 아프리카적 상황에선 적합한 번역일 수 있는데, 북미나 유럽적 상황에서는 tribal nationalism으로 문자적으로 적용이 안돼서 힘들죠. 그래서 클립보드님께서 “부족적 민족주의 (인종주의)”로 번역을 제안하셨을 때 느꼈을 고심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학에서 ethnography라는 학문 분야를 한국말로 사용할 때, 보통 “민족지학”(民族誌學)이라고 하는데,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 ethnography)나 “민속지학”(民俗誌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번역의 어려움이 막 느껴집니다.

제 스스로 Nationalism과 ethnicity라는 등의 적합한 한국말이 아직도 정리가 안돼서 댓글을 달아 봤습니다. 번역어든 신조어든 제대로 찾고 사용하기 참 힘들죠. 중국불교 초기에 산스크리트로 된 불교 문헌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오는 어려움은 아마도 이루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사트바 같은 단어도 결국 번역은 못하고 음역(transliteration)으로 菩薩(보살)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경번역의 선구자 인도의 승 쿠마라지바 (구마라습)의 고뇌를 여전히 우리가 앓고 있습니다.

훌륭한 분석 글 잘 읽었습니다. 아프리카 올림

clipboard  |  2017-08-1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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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네. 스티브 배넌 오늘 잘렸습니다. 트럼프로서는 자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배넌으로서는 잘릴 각오를 하고 목요일 기자회견을 했을 겁니다. 1982 년 봄 하화평 허삼수를 자른 전두롼의 심정에 비견할 수 있을라나요? ㅎㅎ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무엇으로 살아갈지 걱정까지 되는군요.

저는 우선 이 사태를 해석하는 한국언론의 무식과 우물안 개구리식 시야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예를들어 배넌의 주한미군 철수발언이 문정인 특보 발언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나왔다는 주장에는 하도 기차차서 말이 안 나올지경이더군요. 배넌은 아마 문정인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인물인지 그가 어떤 발언을 해왔는지 백악관 주류와 어떤 식으로 헤게모니 쟁탈전을 별여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The American Prospect 회견에서 그가 트럼프에게 날린 결정타는 코리아반도 문제가 아니라 미국내 극우분자들에 대한 확실한 비난입장표명이었습니다.

사실 코리아반도 문제는 며칠 전 트럼프가 ‘김정은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화답을 해 준 것으로 배넌의 입장을 지지했다고 보는 것이 옳으므로 배넌이 주한미군철수와 같은 좀 더 나간 주장을 폈다고 해서 트럼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아니지만, 배넌이 극우에 대해 원색비난을 한 것에 대해서는 황당한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가 극우지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대통령이 극우친화적인 입장을 피력하도록 바람을 잡아왔는데, 샬로츠빌 사태라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전혀 엉뚱한 발언으로 대통령을 시궁창이 처박아놓고 자기만 쏙 빠져나갔으니 얼마나 괘씸하겠어요?

Economic-nationalism 은 배넌이 사용한 말이고, 미국우선주의를 배경으로 나온 용어라고 봤을때 경제민족주의라는 해석으로는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국가주의라고 했습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스티브 배넌 스스로 이 개념에 대해서 인종(백인)우선주의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 우선주의라는 설명을 했었기 때문에 그렇다먼 저 단어를 경제국가주의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8-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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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도 아닌데 실례가 많습니다. 클립보드님, 댓글 보고 검색해 보니, 이런 문구가 나오는군요. "Unlike Mr Trump, Mr Bannon himself has not talked in explicitly racist terms and he claims he is not a “white nationalist”. Yet Mr Bannon plainly has a “nativist” view of America.
http://www.independent.co.uk/news/business/news/steve-bannon-economic-nationalism-what-is-it-explained-donald-trump-cpac-2017-a7598181.html

배넌의 위의 용어 사용과 관련된 그의 멘탈러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적 민족주의의 한 변종을 잘 활용하는 것 같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이런 미국적 민족주의 정서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겠죠.한 개념이 현실을 제대로 담을 수는 없죠. 개념은 ideal type에 불과합니다.

위의 유투브 흥미롭군요. 다문화의 미국을 이념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미국적 신(God)으로 구축된 civil religion인데, 911 이후 무슬림들이 이 시민종교 군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Islamophobia의 결과죠.

흥미로운 여러가지 이슈를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clipboard  |  2017-08-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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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배넌의 입장에서는 샬러츠빌에서 사고를 일으킨 white nationalists 를 가리켜 fringe element 라고 공격할 수 있었을 겁니다. 대안보수란 공화당 주류를 대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무 비전이 없는 전통적 인종주의를 다문화 국가인 미국적 환경으로 변형시킨 ‘American neo-nativism’ 으로 재창조한다는 의미도 있을 겁니다. 대안보수와 traditional white nationalism 의 사고의 간격에서 벌어지는 극우분자들간의 내부투쟁 역시 흥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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