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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난 1953 년부터 작년까지 해외에 입양된 아이들은 약 20 만 명이다.
한국에서 양육을 거부당한 20 여 만 명의 아이들은 이들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외국의 어떤 사람들에 의해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
같은 시기 세계해외입양 총수는 약 50 여 만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전세계해외입양 총수의 약 40 퍼센트가 한국이라는 단 한 개의 나라로부터 내쫒긴 아이들로부터 발생한 셈이다.
지금의 유엔난민기구는 한국전쟁 중인 1951 년 1 월, 이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을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그들을 구호하기 위해서 구성된 국제조직에서부터 출발했다.
그 이전에도 국제난민기구가 존재했지만 UN 이 창설되고나서 처음 만들어진 난민구호조직의 중심에는 1958 년까지 운영된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가 있었다.
한국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1970 년대 초반까지 전쟁당시의 군수물자를 제외하고 미국 한 나라로부터만 약 44 억 달러에 달하는 무상원조를 받았다.
미국이 무상원조를 해 준 최초의 동기에 대해 어러 말들이 많았다.
한국을 미래의 경제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음흉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거나, 과잉생산된 잉여농산물을 생색내며 내다버릴 훌륭한 쓰레기장으로 한국을 활용했다는 주장들이 그런 것들이다.
미국이 설령 그런 계략과 의도에서 한국에 원조물자를 쏟아부었다해도,,
적어도 그것을 받아 기아로 인한 떼죽음을 모면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비판은 제삼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싸르니아는 미국의 최초 원조동기를 그런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종전 초반에 대규모 무상원조 없이는 적게는 수 백 만 명에서 많게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극심한 기아상태에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와 민간기구들의 긴급보고서가 미국 각계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고 합리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규모는 약 6 백 여 만 명이었다.
적지 않은 수의 전쟁난민들이 미국, 캐나다, 유럽 각국, 호주, 남미, 심지어 인도와 같은 제 3 세계국가로 흘러들어갔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일본에 정착한 난민 또는 탈출민들도 많았다.
오사카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전부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한국에 오는 동남아 노동자들처럼 더 나은 생활조건을 찾기위해 유학생이나 이주민으로 가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고,
지금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인들처럼 한국전쟁 당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탈출한 난민들도 많았다.
4.3 항쟁 당시에는, 지금 섬에 도착한 500 여 명의 난민들을 보고 기절초풍하여 게거품을 물고 있는 어느 제주도민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 시절 난민이 되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패전한지 얼마안되어 살림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일본은 적어도 이들을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았다.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전쟁난민을 수송한 배는 미국상선 매러디스 빅토리호다.
이 배는 세계 전쟁사에서 마치 난민수호천사처럼 우뚝 서 있는 상징적 존재들 중 하나다.
이 배가 수송한 전쟁난민은 물론 한국난민들이었다.
이 배는 1950 년 12 월 22 일 죽음의 흥남항을 출발했다.
유엔군에 징발된 상선이었던 이 배는 장진호 전투에서 대패한 미국군 패잔병들을 싣고떠날 마지막 철수선이기도 했다.
이 배는 원래 21 일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출항이 하루 연기됐다.
수 천 톤에 달하는 군수물자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대신 피난민을 승선시켜 함께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장의 결단과 미국군 수뇌부의 양해로 이 배에 승선할 수 있었던 피난민은 1 만 4 천 여 명이었다.
이 배에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부모도 승선하고 있었다.
경상남도 장승포에 이 배가 도착했을 때 이 배의 승객수가 다섯 명 늘어나 있었다.
항해하는 3 일 동안 그 배 안에서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약 800 만 명에 달하는 한인인구 중 1960 년대 이후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등으로 이주한 이른바 이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 모두 난민과 그 후손들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있던 시절에 세계 여러나라들이 한국에 도움을 많이 준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당시 한국에 도움을 준 나라들 중에는 부자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형편이 여의치 않은 나라들도 많았다.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같은 나라들도 한국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었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난민들도 기꺼이 받아주었다.
광화문에 가면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있다.
이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약 50 여 년 전 그 옆에 있는 미국대사관 건물과 함께 미국과 필리핀이 지어준 건물이다.
원조자금 대부분은 미국이 제공했지만 시공은 필리핀 건설기술자들이 도왔다.
토요일 그 광화문에서 대규모 반난민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며칠 전 이 나라 인구의 10 만 분의 1 에 해당하는 숫자의 예멘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하면서 이 나라가 갑자기 난민문제로 시끄러워졌다.
어느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주도민의 90 퍼센트, 제주도를 제외한 본토 한국인들의 85 퍼센트가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당장 내쫒아야한다는 청와대 청원에는 순식간에 50 여 만 명이 몰려들었고, 난민에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네 집에 난민들 데려다 먹여살리라'는 조롱과 함께 욕설과 저주가 퍼부어지고 있는 중이다.
반난민 파시즘의 광풍이라기보다는, 수치스럽기 짝이없는 배은망덕의 개아우성이라 부르면 적당할 것 같은 이같은 현상은 한편으론 믿어지지가 않으면서, 또 다른 현편으로는 치솟는 혐오감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이하기까지하다.
토요일 반난민 대규모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릴 때, 과연 그 파시스트 집회에 항의하는 counterdemonstration 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열리는지,
과연 카운터집회가 열리기는 하려는지,, 일단은 좀 더 지켜보고나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자신이 구조를 받은 전쟁난민부부의 아들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이 감기몸살에서 회복되는대로 다른 모든 것 제쳐두고,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시각과 입장을 밝혀줄 것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