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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 교회 동창회의 신앙과 비전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525 작성일 2019-01-12 10:36 조회수 1433

<교회 동창회>(Church Alumni Association)는 영국 성공회의 존 로빈슨 신부가 자신의 저서 하느님에게 솔직히”(Honest to God)에서 언급한 말인데 즉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반복하고, 이분법적 교리와 믿음에 수동적이고 강압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교회생활에 식상하고 지쳐서 교회 다니기를 중단한 기독교인들 즉 교회를 졸업한 사람들을 <교회 동창회>에 속한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직 교회에 다니면서도 몸은 교회 내부에 있지만 이미 마음은 교회를 떠나 밖에서 자신의 신앙과 영성을 탐구하는 사람들도 <교회 동창회>라고 본다. 로빈슨은 자신의 책에서 성서의 비신화화를 주장했던 루돌프 볼트만과 종교 없는 기독교를 주장했던 본훼퍼, 그리고 하느님을 더 이상 인격적인 존재로 정의할 수 없으며 대신 비인격적인 모든 존재의 근원(The Ground of All Being)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폴 틸리히의 신학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소개했다. 다시 말해, 교회 동창회는 이러한 신학과 신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앞으로 <교회 동창회>에서 어떻게 성서를 새롭게 다시 읽고, 인간 예수를 하느님으로 숭상하기 보다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탐구하고, 또한 세상 속에서 교회기독교가 만든 이분법적 교리들을 입술로 인정하는 수동적이고 관념적인 믿음 보다는 역사적 예수의 정신과 예수가 깨달은 하느님의 의미를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자율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신앙에 대해 밝히려고 한다. 따라서 교회 동창회는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기 위해 성서문맹퇴치를 통해 종교계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할 것이다.

 

<교회 동창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원죄론, 차별적이고 우월적인 이분법적 구원론, 그리고 예수의 신성을 옹호하는 삼위일체를 거부한다. 예수는 이러한 부족적인 교리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것들은 예수가 죽은지 300년이 지난 후에 교회기독교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공식들이다. 성서는 이러한 공식들을 암송하고 믿는 교리책이 아니다. 예수를 따르는 신앙은 이런 공식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교회가 죽어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이 교리적 공식들 때문이다.

 

<교회 동창회>는 교회에서 상식적인 말, 이성적인 말, 양심적인 말, 말이 되는 말을 듣기 원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종교, 육체와 영혼, 이 세상과 저 세상, 지옥과 천국,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한국인과 이방인, 여자와 남자, 축복(구원)과 징벌(심판), 인간과 다른 생물들의 이분법적인 분리를 반대하며,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거부한다.

 

<교회 동창회>는 세속적인 세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성서근본주의적인 믿음으로 은폐하고 외면하고 부인하는 것을 규탄한다. 따라서 교회 동창회는 신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식한다:  

 

* 신앙과 믿음은 동일한 말이 아니다. 어원적으로 신앙(faith)은 관계론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고,

   믿음(belief)은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 신앙은 교회 다니고, 성서를 읽고,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 신앙이란 양적으로 크다거나 작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교회에 다닌 햇수와 십일조를 바친 액수와

   성서를 나이 숫자만큼 읽은 것으로 측정하는 것도 아니다

* 신앙은 교회의 직분이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즉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권사가 신앙의 측정기준이

   아니다.

* 신앙은 은행구좌처럼 많은 분량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안전하게 지켰다가 죽은 후에 내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 신앙이란 수학공식을 암기하듯이 머리 속에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즉 신앙은 성경지식이나

   신학적인 학문을 쌓는 것이 아니며, 믿음이나 확신을 머리 속에 쌓는 것이 아니며, 가슴으로 느끼고

   깨닫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 신앙은 화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 신앙은 아무리 작고 연약하게 보일지라도 가슴이 터지는듯한 힘을 가지고 있다.

* 신앙은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온 몸으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 신앙은 홀로 사는 존재론이 아니라, 관계를 의식하고, 관계를 맺고 사는 관계론이다. 다른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 다른 생명체들과 나의 관계, 자연의 생태계와 나와의 관계를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다.

   이러한 관계가 없으면 신앙은 죽은 것이며, 관계가 살아 있으면 신앙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신앙은 다른 종교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 신앙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역사적 예수가 깨달은 하느님의 의미를 용감하게

   정의롭게 살아내는 것이다.

* 신앙은 성전이나 교회처럼 거룩한 곳에만 있는 보물단지 같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느끼고 듣고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이다따라서 예수는 기존 종교체계가 주장하는대로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더럽고 세속적인 곳에도 하느님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신앙은 하느님이

   징벌했다는 더러운 죄인들(the uncleaned) 즉 창녀와 병자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사람에게도

   하느님 즉 평화와 정의와 사랑이 구현되는 것이다.

* 신앙은 반드시 확실하고 정확한 대답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불확실성(uncertainty)

   속에서 급진적인 질문과 의심과 번민을 통해서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신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신앙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작과 변화와 희망과 비전을 갖는 것이다.

신앙은 내세의 천국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삶의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다

* 신앙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 신앙은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다

* 신앙은 매일매일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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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9-0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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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글 잘 읽었습니다. 로빈슨의 글에 대한 루돌프 불트만의 response로 참고하시면 좋을 거예요. 갖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그의 글은 John A. T. Robinson과 David L. Edwards가 편집한 [The Honest God to Debate](1963)에 있습니다. 불트만 선생에 따르면, 로빈슨이 초자연주의도 거부하지만 자연주의도 거부한다는 거예요. 대신에 그는 “초월”(the Transcendent)자를 제시합니다.

불트만과 본 회퍼 그리고 틸리히를 이해하려면 당시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이라기보다는 한계를 인식한 학자군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이 세사람들이에요. 즉 불트만, 본 회퍼, 그리고 틸리히죠. 한국신학의 전통으로 보자면요. 불트만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사회학적 신학으로 발전시킨 안병무 교수가 있고, 틸리히를 스승으로 삼은 김경재 교수가 있고, 본회퍼와 우파적 바르트(좌파적)를 발전시킨 박봉랑 교수가 있으며, 좌파적 바르트의 발전은 박순경 교수가 했죠. 미국으로 보면, 바르트와 틸리히의 중간에 있는 라인홀드 니버와 리챠드 니버가 있습니다.

늘봄님께서 틸리히를 언급하셔서 그런데요. 틸리히는 제 석사논문 주제였으니 거의 다 읽었습니다. 틸리히의 [조직신학], [존재에의 용기], [문화의 신학], [그리스도교 사상사], [신앙의 역학]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요.

성서를 은유적으로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은유적 읽기에 멈추면 그것은 문학이지 종교는 아닙니다. 성서 해석자 마크스 보그가 성서를 은유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성서 독해방법이지 종교적 현실에서는 종교적 언어의 상징의 힘을 간과하면 결국 종교성 또는 영성을 상실한 겁니다. 그런 면에서 틸리히의 상징론을 다시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로빈슨의 종교동창생이라는 말은 상당히 misleading 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로빈슨이 나중에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은 그가 틸리히, 본회퍼, 불트만의 사상을 자기식으로 요약한 것이지 독창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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