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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교육의 선구자 문동환 목사 소천--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11646 작성일 2019-03-09 16:00 조회수 274
칼날이 시퍼런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 시대에 
민주화와 민중교육에 온 힘을  쏟으셨던
문동환 목사님께서
한국시간으로 3월 9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생전의 문동환 목사.
<한겨레신문>

안치환님의 "마른잎 다시 살아나"는 모친인 김신묵여사께서 돌아가셨을 때 수유리 419 탑 노제에서 안치환님이 직접 부른 민중가요이기도 합니다. 당시 형님인 문익환 목사께서 방북 후 구치소에 계셨고 하루 가석방되어 당신 모친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에 대한 한겨레 신문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85240.html?_fr=mt2

만주 북간도 용정에서 시작된 부친 문재린 목사, 아들 문익환, 문동환 목사, 그리고 막내아들 문영환 선생의 삶의 여정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여정을 많이 닮았습니다. 

[문동환 자서전]은 바로 그러한 경험의 기록입니다. 
Image result for 문동환 자서전

문동환 목사님의 저서 [아리랑 고개의 교육]처럼
우리 민족의 삶은 바로 아리랑 고개의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아리랑 고개밑으로 굽이 굽이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의 산증인이셨던 
문동환 목사님, 평안 하시길 빕니다. 

두손모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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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팀  |  2019-03-09 18:3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지난 2008년 캘거리에서 강연회를 가지신바 있습니다.
https://cndreams.com/news/news_read.php?code1=2345&code2=0&code3=210&idx=699&page=0


문동환 목사님의 위로는 문익환 목사님이 있구요. 밑으로는 문영환 교수가 있는데 문영환 교수는 캘거리에 현재 거주하고 있으십니다. 문영환님께도 삼가 위로의 맘을 전합니다.

2003년 가진 문영환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https://cndreams.com/news/news_read.php?code1=2345&code2=1&code3=270&idx=4604&page=0

그외 문영환 교수께서는 CN드림에 여러편의 좋은 글을 기고해 주신바 있으며 그분 이름으로 기사검색을 해서 찾아보실수 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9-03-09 23:53     

문목사님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북미 원주민 관련 교육자료 찾는다고 하셔서 5-6년 전 CBC book sale에서 책 여러 권을 구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캘거리 강연에서는 "떠돌이의 신학"에 대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떠돌이였듯이 현대도 여전히 문서없는 이민자들의 시대이니 이 "떠돌이"이라는 말에 목사님의 혜안이 잘 드러납니다.

2310lsy  |  2019-03-10 01:08     

마음속 깊이 존경해온 고 문동환 목사님의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동안 해오신 모든 수고에 깊은 감사와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 문동환 목사님의 뜻과 사상은 후배들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으며 이제 우리가 그 뜻을 이어가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삼가 고 문동환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clipboard  |  2019-03-10 07:2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혜림 여사와 문영미 작가를 비롯한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뵌게 1995 년 그 분이 캘거리에 오셨을 때니 벌써 24 년이 훌쩍 지났군요.

내사랑아프리카  |  2019-03-10 13:24     

혹시 오해하실까 봐 몇 말씀 적습니다. 제가 위의 추모글을 올린 것은 문동환 목사님을 특별히 알아서 올린 것은 아닙니다. 그냥 먼발치로만 뵌 분이었구요. 가까이 뵌 것은 문익환목사님께서 모친 김신묵여사의 장례식을 치르고 저녁에 다시 구치소로 가시던 날 댁을 친구들과 방문했었습니다. 그 때 형사들이 문익환 목사님을 잠시 더 머물게 할 수 있었는데 바로 구치소로 모셔가려고 할 때 너무 하지 않느냐고 문동환 목사님께서 꾸짖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석방된 이후 경기도 구리에서 제가 다니던 교인이 20명도 안되는 작은 민중교회 창립기념일에 설교차 오신 때 또 뵐 수 있었습니다. 이 민중교회의 목사님은 문목사님을 비서처럼 또는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던 분이었고 현장에서 다른 어른들과 비교해서 문목사님은 어른으로 대접받기 보다는 정말 노동자들과 함께 하려는 분이라고 자주 토로하시더군요. 그리고 몇개월 후 제가 아는 분 병문안 갔을 때 오셔서 진짜 가까이 뵈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캘거리에서 가까이 뵙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생 문영환 선생님이 캘거리에 계셔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문동환 목사님의 신학사상과 실천에 깊은 이해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재린목사/김신묵 권사님의 [구술 회고록], 문익환 목사님의 [전기], 문동환 목사님의 [자서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족이 겪은 역사의 격동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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