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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80] “하느님의 말씀”이 어떻게 교회의 권위와 교리의 “시녀”가 되었나?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3583 작성일 2020-07-06 05:32 조회수 2365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 성서는 중보교회의 권위와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교리도그마시녀노릇을 충실하게 이행해왔다.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모독하고, 억압하고, 살해하는 죄악의 도구 노릇을 하는 성서가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하느님의 뜻이 될 수 있으며, 그 말씀이 어떻게 죄악정당화할 수 있나? 21세기에 그런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서는 대단히 위험하고 사회와 세계를 차별적이고 우월적으로 분단하고 혼돈에 빠트리고 있다. 그 극명한 예가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새롭게 다시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  

 

기원전 3500년에 설형문자가 발명되고, 기원전 1700년에 초기 알파벳이 창조된 이후에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문서들이 기록되었지만 그 중에 가장 희한하고 이기적인 주장은 그 내용이 절대적인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하느님이 특정한 사람들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인간적이고, 인간의 사소한 일까지 챙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믿지 못할 일은 기독교 교회의 성서에 대한 이런 주장과 전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수용되었다. 물론 다른 종교적 전통들의 신성한 경전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들의 주장은  미신으로 간단히 묵살해 버리고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인들은 오직 성서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가짜라는 말에 병적으로 세뇌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예배시간마다 자신들의 망상적인 주장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즉 성서를 읽은 후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면, 회중은 하느님께 감사를이란 말로 충실하게 응답한다.

 

또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인용하는 사람들은 성서가 실제로 하느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교회 내부에서 중요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최종적인 판단은 성서 구절의 인용으로 귀착된다. 기독교인들이 성서에 대해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할 때는 문자 그대로 그것이 하느님에 의해 쓰여졌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 틀림 없다고 무작정 믿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탐구해 본 적이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주장은 100여년 전 전세계를 복음화한다고 떠돌아다니던 성서근본주의 선교사들과 요즘도 활개치는 내세지향적인 부흥사들의 관점일뿐이다. 이 사람들이 성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읽기나 했는지 의문시된다. 성서를 수학공식 암기하듯이 글자 하나하나를 그대로 믿었을 것이 뻔하다. 순진한 기독교인들은 마치 이들의 주장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인 것으로 속아 넘어가서 하느님을 맹신하고 있다. 주류 기독교의 신학자들과 성서학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사람들을 혼돈에 빠트리지 않는다.

 

또한 하느님이 성서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성서 내용을 작성하도록 했다는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자면,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인간적 오류가 개입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성서의 모든 기록들을 하느님께 돌리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감추어진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상 성서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뒷받침해 주는 권위적인 성서 이외에는 그 신앙을 지탱시켜 주는 것이 없다고 착각한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은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성서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신화와 서사시라는 문학적 장르를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재해석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진실한 책이 된다. 성서 66의 책은 대략 1200년에 걸쳐 기록되었으며, 성서비평학에 의한 재해석 없이, 모든 글자 하나하나 그대로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은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수용될 수 없는 몰상식하고 무식한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괴상한 주장에 의해 너무나 병적으로 세뇌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스스로 그 성서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기독교 교회에서 그토록 자유롭게 피어난 죄악의 근원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망상이었다. 성서에 대한 이런 잘못된 정의가 편견을 초래하고,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였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의 젊은 세대에서 조차 성서근본주의 교회와 조부모님들의 악영향으로 성서를 우상으로 삼아 성서가 마치 최후의 권위인 척 하도록 생각하는 종교적 정신상태를 초래했다.

 

오늘날 세상에서 분명히 악한 것으로 인식되는 행동을 기독교 역사에서는 오히려 정당화하고자 인용했던 성서의 잔혹한 구절들을 성서가 저지른 죄악이라고 한다. 은유적으로 기록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그대로 무작정 믿기 때문에 성서 죄악 근원이 된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이분법적이고 제도적인 성전종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것이다.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거나 혹은 문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은 인류 역사에서 너무나 파괴적이고 잔혹한 죄악의 근원이 되었다. 필자는 이미 그런 낡고 추악한 기독교교회를 떠났으며, 이제 새롭게 탄생한 기독교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삼층 세계관에서 지식과 정보도 부족하고, 인종과 민족과 성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성서 저자들의 고대 가설들을 21세기의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수용할 수 없다. 성서에 나타나는 그런 원시적인 인식이 정당하다고 말하면 그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한 민족만하느님 백성으로 선택하고 다른 민족들을 무시하는 그런 옹졸한 하느님을 진정 예배할 수 없으며, 그런 하느님은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선택받은 민족이 증오하는 모든 사람을 성서의 하느님도 역시 증오한다면 그 하느님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이 아니다. 인간이 너무도 타락하여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노아의 가족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물에 빠져 죽도록 기후를 조절하여 대홍수를 내리는 하느님을 오늘 현대인의 의식으로 수용할 수 없다. 그 선택받은 민족의 해방을 쉽게 하기 위해 이집트에 죽음 사자를 보내어 집집마다 맏아들을 살해하는 성서 속의 그런 잔인하고 편협한 하느님은 현대인들의 하느님이 아니다. 여호수아로 하여금 그의 적인 아모리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태양을 중천에 머무르도록 했다는 성서는 진정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사무엘사울 왕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하여 너는 이제 가서 아말렉을 쳐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모두 전멸시켜라. 사정을 보아 주어서는 안된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 등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죽여라”(사무엘상 15:3)라고 기록한 성서가 진정 하느님의 말씀인가?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가 인종차별과 여성차별과 성적본능차별과 종교차별과 빈부차별이란 죄악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은 성서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잔인한 정신상태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의 하늘 위에 천국이 있지도 않다는 것은 과학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수준에서도 보편적인 사실이다. 즉 우주 세계에는 상중하 층이 없다. 따라서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성서 저자들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천체에 괸한 이런 사실을 하느님이 몰랐을까, 아니면 성서 저자들에게 일부러 안 알렸을까? 어쨌든 지구 중심삼층 세계관은 바벨탑 이야기(창세기 11),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이야기(출애굽기 16:4), 베들레헴의 별을 찾아가는 동방박사 이야기(마가복음서 2), 심지어는 하늘로 승천하는 예수 이야기(누가복음서 24:5) 등에 등장한다. 현대과학의 자연의 법칙 138억 년의 우주 이야기를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운 현대인들은 결코 하지 않을 억측성서는 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이야기 또는 공상의 세계 이야기로 전락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적 영웅들은 예수처럼 초자연적인 탄생으로 묘사되었다. 21세기에 이런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사실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고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을 보여주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신화의 공통적인 요소다.        

 

교회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 성서구절들을 문자적으로 인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모독하고, 억압하고, 심지어는 살해하는 죄악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죄악의 근원이 되었던 성서구절들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낯낯히 밝혀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서새로운 렌즈로 다시 새롭게 신중하게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서의 무섭고 잔혹한 구절들에 내재된 성서의 죄악을 넘어서, 성서가 궁극적으로 인간성의 핵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참된 인간이 되는 삶의 을 탐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만들어진 예수를 떠나 보내고, 참 사람 예수역사적 예수를 되찾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초자연적인 예수는 더 이상 설득력과 효력이 없다. 예수의 신성은 오늘 사람들에게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만을 조장해 왔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인식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참된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인식하고 새로운 삶의 지평과 새로운 비전을 본다. 이들은 적어도 두려움과 공포와 이기심을 넘어 자유하게 심층적인 삶을 살아낸다. 역사적 예수가 이러한 삶을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권위와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교리의 시녀노릇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역사적 예수정신을 깨달아 알고, 예수가 살았던 것처럼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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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ball  |  2020-07-0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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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가 어떻게 기독교인이라 할수 있으며 역사적인 예수로 믿고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면 무슬림이나 여호와의 증인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전체를 받치고 있는 성삼위를 부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주장은 무신론자나 타 종교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늘봄  |  2020-07-0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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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성과 기독교라는 공식은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북미와 유럽의 주류 신학계에서 이미 폐기처분한 신학을 아직도 일부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회에서 주장할 따름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초자연적인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Zzzvst  |  2020-07-0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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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주장 대로라면 죽으면 끝나는 것인데

이렇게 살던 저렇게 살던 무슨 상관입니까? 종교의 탈을 내려놓고

무신론이라는 본색을 드러내세요.

늘봄  |  2020-07-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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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근본주의자들은 저를 무신론자 목사라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저는 초자연적인 하느님과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맥길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그런 하느님과 예수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저는 중보교회에서 맹신하는 하느님을 믿기 보다는 역사적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내는 “무신론자 기독교인 목사”입니다.

fireball  |  2020-07-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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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가 초자연적인 인물이 아니였다는 주장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부활이라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충분한 역사적 예수의 부활의 증거앞에 불신을 정당화하기위한 변명일 뿐입니다. 무신론자라면 우주의 태초도 부정할뿐더러 우주의 창조뒤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마져도 부정하는 것이므로 역사적 예수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의미조차도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watchdog  |  2020-07-07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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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ball님 사실은 저도 부활한 사람입니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제 얘기도 믿어주실 건가요?

인생은 한 번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서도 또 다른 세상이 가서 산다면 죽음의 의미가 있나요. 만약 죽고난 세상이 더 좋은 곳이면, 왜 당장 목숨을 끊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 지 궁금합니다.

늘봄  |  2020-07-07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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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는 신자들은 세상을 큰 그림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서 책 한 권으로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138억년의 우주 역사와 260만년의 인류사와 4만년의 인류 언어발달사를 이해시킬 수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오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든 현안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성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서근본주의자들이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나처럼 믿지 않으면 너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위협은 더 이상 설득력과 효력이 없습니다.
너는 무신론자라는 말이 더 이상 저주나 경고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예수는 1700년 전에 콘르탄틴 황제의 위협적인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술책이기 때문에 그런 예수는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교회가 그 동안 그런데로 잘 써먹었지만 이젠 약효가 떨어져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 이외에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성서 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역사적 예수, 참 사람 예수, 참된 인간의 표상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성서의 원본은 실종되었고, 그대신 수백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본들이 제멋대로 복사되면서 역사적 예수는 실종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공부한 맥길대학의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저명한 신학자들이 역사적 예수 탐구에 온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100여년 전에 미국 남부의 깡보수 선교사들이 가져온 이분법적 구원론과 내세론에 세뇌되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주류 신학은 지난 100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하여 이제는 과학적인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서를 읽었던 렌즈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100년 전의 낡은 렌즈는 아낌없이 버려야 합니다. 지옥/천당은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내세적이고 이분법적이고 초자연적인 믿음은 사람들을 항상 두려움과 공포와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온전하게 자율적으로 사는 것이 영원함이고, 나 혼자 잘 살기 보다 이웃들과 함께 공평하게 나누며 공존하며 사는 것이 행복하고 기쁘고 보람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역사적 예수가 이렇게 가르치고 자신이 몸소 살았습니다.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고 초자연적인 하느님과 이분법적인 중보교회에게 의존하는 것은 시간과 돈 낭비입니다. 신자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도 성서근본주의자 시절에 누가 이런 말을 하면 마치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 20년 전문목회는 물론 은퇴 후 지난 7년 동안 저의 역사적 예수 탐구 여정을 설교와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fireball  |  2020-07-0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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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만약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는 인류 역사속 한명의 인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정말 죽음에서 부활하였다면 그는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아무런 편견없이 역사학적으로만 보았을때 예수의 부활의 증거는 세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번째, 비어있는 예수의 무덤의 발견.

역사학적으로 보았을때 어떤 사건이 두가지 이상의 독립적인 자료에서 기록이 되었다면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확률의 신뢰도는 급상승합니다. 뿐만아니라 기록시점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역사가들은 그 자료에 대한 확신을 갖습니다. 예수가 죽고난 뒤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한 사건의 기록은 무려 6개가 넘는 독립적인 출처 (눅24:1-12,고전15:3-5,마28:1-10,요20:1-8,막16:1-8, 행2:29-32) 에서 기록이 되었고 신약성서에서도 사건의 발생 시점에서 가장 가깝게 기록된 자료입니다. 또한 성서에서는 예수의 빈 무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자를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그 당시 유대교적 사회에서 여자의 증언에 아무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관습을 고려했을때 이 자료가 사실적으로 기록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예수를 옹호하는 유대인들이 후에 이 자료를 조작했다면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한 자를 여자로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예수의 죽음을 관할했던 유대인들과 로마 관료 또한 비어있는 무덤을 확인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증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비어있는 예수의 무덤의 발견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두번째, 부활한 예수의 출현

사도 바울은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자들을 순서대로 기록합니다.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열두 제자, 오백명의 형제들,야고보 그리고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에게 나타납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의 모습은 마가, 마태, 누가, 요한 네 복음서에 독립적으로 기록이 되었으며 그 기록에 따라 베드로와 제자들이 목격한 예수는 부활한 예수라는 것은 부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셋째, 제자들의 예수 부활에 대한 확신

예수를 따라다니던 무리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공포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숨어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구세주의 죽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을뿐만 아니라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던 그들에게 부활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구세주 예수는 적들에게 패배하고 하나님께 저주받아 십자가에 처형되어 자신들의 목숨조차 위태로워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그들이 갑자기 예수의 부활을 믿기 시작하고 확신에 가득 찬 나머지 핍박과 고난을 자처하고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며 한명도 자신의 믿음을 철회하지 않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처형하던 바울 스스로도 예수의 부활을 믿고 따르며 심지어 예수와 같이 자라며 예수의 가르침을 불신했던 그의 형제 야고보도 예수의 부활을 보고 믿게 되었으며 그 믿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급격하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강력한 전환적 경험없이는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기독교의 부흥을 설명할수 없습니다. 역사학적으로 보았을때 보수적인 유대사회에서 급작스런 새로운 종교의 부흥은 빈 무덤을 뒤로하고 부활한 예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출현하였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할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 세가지 역사적 사실은 후에 자연주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설명되기 위하여 수많은 가설들이 등장했습니다. 음모론이나 예수의 가짜죽음 가설, 부활한 예수의 환상설, 죽은 육체를 훔쳤다는 설 등 부활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나타난 여러 자연주의 가설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결국 이 세가지 역사적 사실은 자연주의 이론으로는 설명될수 없다라고 결론 지어졌습니다.

가장 처음 옆에서 이 세가지 사건을 지켜보았던 이들은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만약 이 모든 우주의 근원을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면 비어있는 예수의 무덤의 발견 그리고 부활한 예수의 출현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이들의 증거가 역사적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늘봄  |  2020-07-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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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에 기독교 국가들이 세계를 무력적으로 통제할 때에는 그런대로 통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서 이제는 그런 주장은 낡은 과거의 패러다임의 가설입니다. 요즘 인터넷의 활용으로 사람들의 지식과 정보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문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자연의 법칙 즉 과학에 기초한 우주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문자적인 성서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교회가 만든 하느님 예수를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람 예수가 가르치고 살았던 것 처럼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다니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며,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문자적으로 직역해서 믿으라는 교리가 아닙니다.

prosperity  |  2020-07-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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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2-3,000천년 여년전 고대 인간들이 당시의 인간의 지식에 바탕하여 쓰여진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개인적인 판단이 있습니다. 138억년의 우주 역사에 비하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너무나 짧고 "전지 저능"하신 하니님이시라면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아셔서 성경에도 기록이 되여야 되는데 인간이 달 까지 날라가서 달의 돌을 지구에 갖어온 우주 여행 이야기며 오늘날 누구나 사용하는 인터넷과 이메일 의사 소통 수단을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당시 인간들의 지식으로 성경이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중력의 법칙"도 이기지 못하는 가 봅니다. 세월호 참사 때에 어린 학생들과 부모 친지들이 가라 앉는 세월호를 가라 앉지 못하게 그렇게 울부짖어며 기도를 하였건만 하나님을 처참이 죽어가는 어린 학생들을 도와 주실 능력이 없엇습니다. 능력이 없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야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화이기에 세월호 참사를 막아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늘봄  |  2020-07-0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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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인종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등등의 이분법적 차별과 혐오가 없어야 합니다. 순진한 청소년들이 수백명이나 수장될 이유가 없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혐오가 존재하는 한 하느님은 없습니다.

watchdog  |  2020-07-0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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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예수의 출현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이들의 증거가 역사적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시인하셨지만, 예수가 부활한 게 사실인지는 peer review 된 적이 없고 그냥 믿고 싶은 사람만 믿는 상태죠. Coronavirus도 하느님의 뜻이면 이런 psychopath도 없을 듯..

fireball  |  2020-07-0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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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힘없이 고통받는 무고한 이들을 바라보며 가슴아파하는 인간의 감정을 하나님없이는 설명할수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또는 좋고 나쁜가를 판단하는 도덕적 가치관 또한 하나님 이외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불의,차별 고통을 바라보면서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통을 바라만 보고 있다는 주장 자체가 모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과 이 세상의 고통이 같이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존재하기때문에 하나님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선과 악이 존재하기때문에 하나님이 선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 위함이지 이 세상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를 되돌아 보았을때 핍박과 고통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더 번성했다는 사실은 세상의 고통또한 하나님의 섭리안에 속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이 우주를 설명하기 위하여 수많은 과학적 이론이 제시되고 현대에 들어서 끈 이론이나 엠 이론등 양자론을 통한 이론들도 등장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빅뱅이론을 지지합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초원자의 폭발에 의해 탄생하였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으며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점에 모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중요한 점은 우주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없으며 가장 근접한 양자론의 다차원론 또한 공간과 에너지를 전제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고 그리고 우주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라는 두가지 전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셨다라는 결론을 뒷받침 합니다. 우연이나 필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자연주의 가설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주장보다 더욱 터무니 없으며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늘봄  |  2020-07-0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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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모두 동일한 말입니다. 하느님/하나님(god)은 신의 이름이나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어쨌던 "하느님/하나님"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고대인들이 상상하고 만든 하늘 위에 존재하는 초자연적, 인격적, 전지전능한 하느님, 즉 요즘 내세적이고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종교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입니다. 이 하느님은 종교체제가 만든 믿음체계의 교리를 따라야 보호와 축복과 구원을 제공하는 편협하고 옹졸하고 소위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하느님입니다. 이 하느님은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통제하기 위해 교묘하게 만들었는데, 교리를 믿고, 교회에 다니고, 성서를 읽고, 십일조를 바치고,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는 규칙사항들을 엄수해야 보상을 내리고, 그렇지않으면 심판과 징벌이 내립니다. 과거에 과학적 지식과 정보와 사람의 의식이 깨어나지 못했을 때에는 순진한 사람들이 믿음체계의 위협과 강요에 못이겨 억지로 이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학의 발달과 의식의 진화로 특히 인터넷의 보편화로 현대인들의 지식과 정보 수준은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속임수가 약효를 잃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실상 인류사에서 이런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여전히 이 하느님을 강매하고 있습니다. 동학혁명에서 ‘사람이 하느님이다’ ‘밥이 하느님이다’라는 선언이 새삼스럽게 들려옵니다.

(2) 21세기의 우주진화 세계관을 인식하고 살아내는 현대인들의 하느님은 믿어야만하는 교리적이고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즉 이 하느님은 믿어야만 하는 객체적이고 상대적이고 타자적인 하늘 위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이고 온전하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희망과 비전과 의미와 표현과 방식으로써의 하느님입니다. 교회에서 이 하느님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보다 참된 인간이 되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가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깨달음의 참된 인간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교회는 참 사람 예수를 추방하고, 하느님 예수를 만들어 장사를 벌렸습니다. 한때 이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2세기 동안에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놀랍게 성숙해졌습니다. 아마도 다음 세기에는 인간의 지능과 인식능력이 얼마나 더 진화할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애당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하느님을 그동안에 교회가 잘 팔아먹었지만 더 이상 그 사업이 폭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21세기 과학시대에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와 인간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면 교회는 멸망하고 맙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의 신앙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나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로운 행위가 된다면 그 믿음은 추방되어야 합니다. 나는 죽은 후에 천국에 올라가 이미 죽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날 것이라는 꿈은 소중하겠지만, 나의 꿈이 다른 사람의 삶에 독이 된다면 이 꿈은 이기적인 욕심에 불과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믿는대로 믿어야 구원받고 축복받는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으로 위협하는 믿음은 폐기처분되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무엇이든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일은 절대로 잘못된 일입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종차별, 종교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빈부차별, 생태계파괴라는 죄악을 저질른다면 그 믿음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늘봄  |  2020-07-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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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이미 어떤 힘이 있었는지에 대해 과학자들도 모릅니다. 또한 그 초자연적인 힘이 설계한대로 우주를 창조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광활한 우주가 계속해 팽창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십억년 후에는 폭발해서 없어지고 다시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과학의 발견입니다.

우주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어떤 힘(신, 하느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있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없었다고 주장한들 누구에게 나무랄 권리가 있습니까?

문제는 믿던 안믿던 간에 모든 가설들과 주장들이 온 인류에게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믿는대로 안믿으면 너는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협이 죄악입니다.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분법적으로 또한 이기적으로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우주세계를 계획대로 창조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전쟁과 테러와 빈곤과 질병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이 먼지만도 못하게 작은 별 지구 위의 인간들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또한 인간들이 믿지 않는다고 그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천연재해와 전쟁과 기근를 일으키면서 인간을 고통과 절망에 빠트린다면 그런 하느님은 절대로 불필요하고 죄악의 근원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안믿고는 개인의 권리이지만, 나의 믿음으로 나의 가정과 이웃과 온 인류사회가 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믿음은 권리를 넘어서 책임입니다.

watchdog  |  2020-07-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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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 위함이지' 라는 얘기의 근거는 뭔가요? 성서에 나오는 얘기? 자기를 알고 믿으라고 뭐 이렇게 복잡한 우주를 창조한 건지 세상 피곤하게 사시는 분이네요. ㅎㅎ

늘봄  |  2020-07-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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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기록한 사람이 1인2역으로 마치 방송국의 성우처럼 하느님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 아닐까요? “하느님의 말씀”이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으면 잘 안되면 문제투성이고 잘되면 우스개 소리가 되는 것이 인류사에서 수없이 많이 흔하게 드러난 현상들이였습니다.

락팬  |  2020-07-0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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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칼럼 내용과 유사한 칼럼이네요.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한번쯤 귀 기울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http://www.hani.co.kr/arti/well/mind/952654.html?_fr=mb2

늘봄  |  2020-07-10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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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팬 님, 좋은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요즘 세상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정직성과 이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지않아도 요즘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대한 종교칼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쯤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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