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야기인데 사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동네 이야기다.
이곳에서 일한지가 정확하게 10년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곳은 별로 변한 게 없다. 길 건너에 노인들 사는 4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선 게 변화라면 변화다.
노인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지평선 위로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이젠 노인 아파트가 그 모습을 가려 일출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
일출을 막는 노인 아파트
내가 일하는 건물은 110년 되었다. 보일러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는데 석탄으로 시작해 벙커 C유, 경유를 거쳐 지금은 가스로 돌아간다. 얼굴도 모르는 까마득한 선배가 석탄 하차해 저장 관리하는 걸 생각하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정년퇴직하면 누군가 와서 내가 하던 일을 하겠지
이곳은 프랑스 문화권이다. French Quarter라고 부른다. 일단 정지 표시도 영어와 불어로 써 있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백합문장의 깃발이 이곳이 프랑스 문화권임을 말해주고 있다.
백합문장은 카페왕조의 문장이다. 카페왕조(Capet)는 커피를 뜻하는 Café가 아니니 오해 마시라.
프랑스 혁명 때 사형당한 루이16세는 재판정에서 루이 카페라고 불렀다. 루이16세라는 왕의 신분이 아니라 루이 카페라는 개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프랑크 왕국의 카룰로스 왕조가 대가 끊어지고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프랑크 왕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앨버타 대학교 불어 캠퍼스도 이곳에 있다. 딸이 여기서 공부했다. 여기를 졸업하고 지금은 시골에서 선생 노릇하고 있다.
길 건너에는 코너 스토어가 있다. 나는 도시락을 갖고 다니는데 도시락 안 가져오는 날은 이 가게에서 감자 칩과 커피를 사서 점심으로 때우곤 했다. 손바닥만 한 코너 스토어는 대형 가게들과 경쟁을 이길 수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잔뜩 약해진 체력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강타당해 KO 패 당했다.
자전거 카페는 직원들과 자주 가는데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간다. 프랑스 풍의 카페는 대학생들이 도서관 대용으로 이용하는데 푸틴 생각나면 찾는 곳이다. 코비드-19 때문에 문을 닫았는데 내년 1월에나 다시 문을 연다. 겨울에는 화덕을 밖에 내놓는데 화덕에 둘러앉아 커피 마시며 세상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다.
자전거 카페 푸틴이 비싸긴 하지만 맛이 있다. 분위기도 좋고.
그러나 푸틴이라면 이 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Frencheese.
40대 초, 중반 아줌마가 혼자 주인 겸 종업원 겸 일하는데 바로 옆집이 치즈공장이라 직송되는 신선한 치즈 커드가 이집의 자랑이다. 커드의 식감 만큼은 이집을 따라올 곳이 없다. 토핑에 따라 여러가지 맛의 푸틴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