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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12] 부족적이고 이기적인 유치한 짓 그만두고, 민주적이고 우주적인 삶의 철학을 살아내자!.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4389 작성일 2021-01-23 08:57 조회수 2414

2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고정된 삼층천의 무대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이 초자연적인 신이 만든 믿음체계의 이분법적 진리와 가치의 영원한 규범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138억 년 동안 지속되어온 우주진화의 자연적인 과정에 따라서 인류사회는 과학혁명 계몽주의 운동을 거쳐 새로운 의식인간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한편으로 기독교 신학플라톤주의, 실재론, 이원론(몸과 영혼의 분리), 형이상학 이라는 낡은 세계관에 악영향을 받았으며 오늘까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이성적인 시각에서 볼 때, 삼층 세계와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존재와 이 세계 밖에 다른 세계 즉 내세를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비상식적인 짓이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을 거부하고 배척한 교회 기독교가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꼭두각시처럼 수동적인 인간이 되도록 강요한 만행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세계 전체와 개체들은 모두가 우연적이고 자연적이며, 초자연적인 힘의 예정된 설계는 없었다. 우리의 세계는 언어에 의해 인간적으로 가정되고 중재되며, 역사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 자연적인 흐름을 하늘 위에서 멋대로 간섭하고 조정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없다. 모든 의미와 진리와 가치를 결정하는 인간 너머의 어떤 영원한 질서라는 것은 없다. 언어는 언제나 새롭게 변하는 것이다. 우주세계는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이 세계 밖에 다른 세계에 어떤 확실한 것 또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오늘날 동료 인간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관을 따라야만 하는 민주주의적실용주의자들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어느 특정 민족이나 국가나 인종이나 종교가 인류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조정할 수 없다.

 

우리의 가장 확고한 근거와 출발점은 예를 들자면, 소설이나 신문이나 소셜미디어같은 현대 매체에 표현되는 세속적인 일상 언어와 일상생활의 어휘들과 과학에 기초한 우주진화 세계관이다. 종교의 특별한 어휘들과 세계관들은 삶의 세계로부터 나온 것들에 의해 세워진 것들의 연장 혹은 보충으로 보아야 하며, 과학에 의해 다시 검토되어야만 한다. 과학은 삶의 세계를 분화시키고, 인과관계 이론을 발전시키고, 수학적 관계를 확립하고, 기술문명을 발전시킴으로써 목적을 더욱 진전시킨다.

 

종교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추구하며,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종교 안에서 우리는 공유된 의미들과 목적, 이야기들을 발전시키기를 추구한다. 종교는 하느님을 믿는 믿음(belief)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온전함(wholeness)상호관계론적(life)에 대한 것이다.

 

우주적이고 통합적이며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살아내는 역사적 예수 정신을 따르는 예수 기독교와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믿는 내세적인 교회 기독교는 상호공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1700년 전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진 이래로 지금까지 교회는 참 사람 예수를 배척하고 하느님 예수를 맹신해왔다. 참 사람 예수하느님 나라 가르침은 비실재론적이며 지금 여기 이 세계의 현세적인 종교에 대한 기독교적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예수의 생애로부터 지금까지 이 세계적이고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신학은 항상  사회적 개혁을 주창해왔다. 복음서 안에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구절이 100개 이상인 반면, 교회와 관련된 것은 단지 두 군데뿐이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어떤 교리나 제도나 규칙도 없다. 예수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설교는 믿어야만 하는 내세의 천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에 대한 선언이다. 예수는 우리로 하여금 백합화처럼 살기를, 등불처럼 비추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렬한 자기비판 정신을 요구한다. 예수는 아낌없이 조건없이 사심없이 나누어 주는 삶에 초청하면서 우리에게는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낡은 형태 도덕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를 거부한다. 예수종교는 대단히 불편한 진리이며,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개혁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종교적 자선과 교회생활과 기도의 삶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며, 죽은 후 천국에서의 보상의 필수조건도 아니다. 예수는 이러한 내세적인 구원과 영생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가 봉착한 딜레마는 어떻게 참 사람 예수의 하느님 나라 종교를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1700년 동안 역사적 예수를 모른체하고 만들어진 예수에 대한 실재론적이며 이분법적인 형이상학의 믿음을 지속할 것인가이다. 교회 기독교는 예수의 신성과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인 교리와 신조에 굴복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제도화하고 죽음 후의 다른 세계로 전락시켰다. 따라서 교회는 삶과 생명이 없이 지루하고 따분한 믿음에 메어달려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교회는 예배에서 주기도문을 열심히 되풀이하면서 하느님 나라 도래를 기도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교회 종말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교회는 참 사람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복음서들이 예수의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신학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하느님 나라 신학을 거부하거나 못본체하는 것은 위선과 거짓이다. 교회 신학 하느님 나라 신학은 공존할 수 없다. 교회 신학은 항상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 교회신학은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대행자도 아니고, 모든 권력과 권위를 갖고 교인들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수단도 아니다. 교회 신학은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안전장치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분리대가 될 수 없다.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던 하느님 나라 종교는 경계가 없으며, 이분법적이고 우월적인 차별도 없으며, 다만 지금 여기 현세에서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이다. 교회는 부족적이고 이기적인 몰상식한 짓 그만두고, 예수의 민주적인 삶의 철학을 실천하고, 먼저 교회 안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신학을 살아내어야 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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