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 행정부가 캐나다와 한국, 조선에는 지루한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신호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조세프 바이든 대통령은 첫번째 외국정상통화상대인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수상에게 알버타 주와 일리노이 주를 연결하는 키스톤엑셀파이프라인에 대한 자신의 허가취소공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캐미 키스톤엑셀파이프라인은 싸르니아를 비롯한 400 만 알버타 주민들의 중요한 경제적 이해가 걸린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에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오늘 이야기는 왕년에 왔던 선수들이 다시 공격수로 들어온 코리아반도 정책이다.
공격수 세 명은 국무부 장관 앤터니 블링컨, 부장관 웬디 셔먼,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성 김이다. 세 명 모두 조선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반대하지만 강력한 고립압살정책으로 대조선협상의 주도권을 시종일관 장악해야한다는 강경매파들이다.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류 하고는 급과 격이 다른 빠꼼 엘리트들이다.
성 김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조선협상에 끼어들기는 했지만, 사실상의 협상주도권을 행사했던 앤드루 김을 옆에서 도운데 불과했던 당시와는 달리 실무 총책임자라는 전혀 다른 위상으로 선수단에 입성했다.
새 공격수들은 양국의 최고위급이 어떤 형태로든 직접 접촉하는 것을 가로막고 조선에 대한 가혹한 경제압살을 구사해 미국을 표적으로 하는 전략무기군축협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는 한편, 한국정부를 압박해 남북직접협상을 물리적으로 훼방하는 일방적 코리아반도정책을 밀고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Antony J. Blinken)은 유대계 헝가리 이민자의 외손자인데, 1962 년 생으로 올해 만 58 세다. 생일이 공교롭게도 세월호가 침몰한 날과 같은 4 월 16 일이다.
그는 2018 년 6 월 12 일 조미양국정상간에 합의된 문서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인내도 아니고 트럼프 행정부의 탑다운 합의도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선을 다루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시했다.
세 명의 공격수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물 두 명은 국무부 부장관 웬디 셔먼(Wendy R. Sherman)과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성 김(Sung Kim)이다.
웬디 셔먼은 유대계로 1949 년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71 세다. 버스떤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매릴랜드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social worker 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출신의 외교전략가다. 이란 핵협상과 대조선정책에서 자신의 협상전략을 “nothing less than appeasement”라고 비난하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좐 볼튼 전 유엔대사(트럼프 행정부 시절 NSC 보좌관) 등과 맞짱논쟁을 벌이며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갔던 당찬 여인이다.
부장관보다 더 주목해야 할 사람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다. 이 직책은 말 그대로 중국, 일본, 한국, 조선을 다루는 막중한 임무의 실세다.
한국정부는 과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에 의해 악몽같은 굴욕을 당한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은 1987 년 6 월에 벌어졌다. 그 때 굴욕을 당한 장본인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일국의 대통령 집무실에 제임스 릴리 당시 대사와 존 스타인 당시 CIA 서울지부장, 리처드 킴 당시 CIA 서울지부 부지부장을 차례로 들여보내 전두환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를 안겼던 장본인은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개스틴 시거였다. 당시 전두환은 자신의 경호원들로부터도 분리된 채 국무부와 미국대사관 직원들에 의해 청와대 집무실에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이른바 ‘위수령발동 포기각서’에 서명해야 했다.
그때와는 한미관계의 위상과 형식이 다소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한국을 방문한 스티브 비건을 비롯한 국무부 관리들의 행동은 안하무인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정부는 코비드-19 이 창궐한 초위험국가 미국에서 들어오는 관리들에 대해 제대로 방역조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늘 그랬던대로 국무부 특별기편으로 오산비행장으로 들어왔다. 입국 후 격리같은 기본방역의무조차 면제받은 그들은 마스크 한 장만 덜렁 쓴 채 오산비행장에서 전용헬리콥터 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후 스티브 비건의 단골식당이라는 ‘광화문 닭 한마리집’에 들어가 유유히 식사를 즐겼다.
이번에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된 김 성은 1960 년 생으로 올해 만 60 세다. 한국의 진보정권과는 코드조차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다. 이제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악연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김기완은 김재권이라는 가명으로 주일공사 시절이었던 1973 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공사는 중앙정보부의 파견국 책임자를 겸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김기완과 그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당시 도쿄에 있는 중학교 1 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성은 영문도 모른채 밤 비행기를 타고 야반도주를 하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선제공격만 반대할 뿐 철저한 대조선매파인 김 성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탑다운방식의 대조선정책에 따라 군소리없이 연락관 역할을 수행했지만 정책결정자가 된 지금은 그 위상과 역할이 전혀 달라졌다.
그는 한국말을 비교적 잘 구사하면서도 막상 한국정부의 카운터파트와 대화할 때는 영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가 대표하는 나라의 언어가 영어여서가 아니라, 언어구사의 우위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트럼프가 ‘힐러리의 복심’이었던 그를 신임했던 이유는 트럼프에게 그의 노선을 이해할만한 지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학교(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미국의 코리아반도 정책 주도권은 백악관 NSC에서 국무부로 넘어갔다.
앤터니 블링컨 – 웬디 셔먼 – 김 성 라인이 전면에서 코리아반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주도하게 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미국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경사스러운 일이나, 한국과 조선에게는 피곤한 질곡과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 1.23 1300 (MST) sarnia (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