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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좋은 일은 아니니 ...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4390 작성일 2021-01-23 13:19 조회수 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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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캐나다와 한국, 조선에는 지루한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신호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조세프 바이든 대통령은 첫번째 외국정상통화상대인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수상에게 알버타 주와 일리노이 주를 연결하는 키스톤엑셀파이프라인에 대한 자신의 허가취소공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캐미 키스톤엑셀파이프라인은 싸르니아를 비롯한 400 만 알버타 주민들의 중요한 경제적 이해가 걸린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에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오늘 이야기는 왕년에 왔던 선수들이 다시 공격수로 들어온 코리아반도 정책이다.  

 

공격수 세 명은 국무부 장관 앤터니 블링컨, 부장관 웬디 셔먼,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성 김이다. 세 명 모두 조선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반대하지만 강력한 고립압살정책으로 대조선협상의 주도권을 시종일관 장악해야한다는 강경매파들이다.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류 하고는 급과 격이 다른 빠꼼 엘리트들이다.

 

  김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조선협상에 끼어들기는 했지만, 사실상의 협상주도권을 행사했던 앤드루 김을 옆에서 도운데 불과했던 당시와는 달리 실무 총책임자라는 전혀 다른 위상으로 선수단에 입성했다.

 

새 공격수들은 양국의 최고위급이 어떤 형태로든 직접 접촉하는 것을 가로막고 조선에 대한 가혹한 경제압살을 구사해 미국을 표적으로 하는 전략무기군축협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는 한편, 한국정부를 압박해 남북직접협상을 물리적으로 훼방하는 일방적 코리아반도정책을 밀고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Antony J. Blinken)은 유대계 헝가리 이민자의 외손자인데, 1962 년 생으로 올해 만 58 세다. 생일이 공교롭게도 세월호가 침몰한 날과 같은 4 16 일이다.  

 

그는 2018 6 12 일 조미양국정상간에 합의된 문서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인내도 아니고 트럼프 행정부의 탑다운 합의도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선을 다루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시했다.

 

세 명의 공격수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물 두 명은 국무부 부장관 웬디 셔먼(Wendy R. Sherman)과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성 김(Sung Kim)이다.

 

웬디 셔먼은 유대계로 1949 년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71 세다. 버스떤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매릴랜드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social worker 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출신의 외교전략가다. 이란 핵협상과 대조선정책에서 자신의 협상전략을 “nothing less than appeasement”라고 비난하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좐 볼튼 전 유엔대사(트럼프 행정부 시절 NSC 보좌관) 등과 맞짱논쟁을 벌이며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갔던 당찬 여인이다.     

 

부장관보다 더 주목해야 할 사람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다. 이 직책은 말 그대로 중국, 일본, 한국, 조선을 다루는 막중한 임무의 실세다.

 

한국정부는 과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에 의해 악몽같은 굴욕을 당한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은 1987 6 월에 벌어졌다. 그 때 굴욕을 당한 장본인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일국의 대통령 집무실에 제임스 릴리 당시 대사와 존 스타인 당시 CIA 서울지부장,  리처드 킴  당시 CIA 서울지부 부지부장을 차례로 들여보내 전두환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를 안겼던 장본인은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개스틴 시거였다. 당시 전두환은 자신의 경호원들로부터도 분리된 채 국무부와 미국대사관 직원들에 의해 청와대 집무실에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이른바 위수령발동 포기각서에 서명해야 했다.

 

그때와는  한미관계의 위상과 형식이 다소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한국을 방문한 스티브 비건을 비롯한 국무부 관리들의 행동은 안하무인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정부는 코비드-19 이 창궐한 초위험국가 미국에서 들어오는 관리들에 대해 제대로 방역조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늘 그랬던대로 국무부 특별기편으로 오산비행장으로 들어왔다. 입국 후 격리같은 기본방역의무조차 면제받은 그들은 마스크 한 장만 덜렁 쓴 채 오산비행장에서 전용헬리콥터 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후 스티브 비건의 단골식당이라는  광화문 닭 한마리집에 들어가 유유히 식사를 즐겼다.

 

이번에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된 김 성은 1960 년 생으로 올해 만 60 세다. 한국의 진보정권과는 코드조차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다. 이제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악연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김기완은 김재권이라는 가명으로 주일공사 시절이었던 1973 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공사는 중앙정보부의 파견국 책임자를 겸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김기완과 그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당시 도쿄에 있는 중학교 1 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성은 영문도 모른채 밤 비행기를 타고 야반도주를 하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선제공격만 반대할 뿐 철저한 대조선매파인 김 성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탑다운방식의 대조선정책에 따라 군소리없이 연락관 역할을 수행했지만 정책결정자가 된 지금은 그 위상과 역할이 전혀 달라졌다.

 

그는 한국말을 비교적 잘 구사하면서도 막상 한국정부의 카운터파트와 대화할 때는 영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가 대표하는 나라의 언어가 영어여서가 아니라, 언어구사의 우위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트럼프가 힐러리의 복심이었던 그를 신임했던 이유는 트럼프에게 그의 노선을 이해할만한 지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학교(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미국의 코리아반도 정책 주도권은 백악관 NSC에서 국무부로 넘어갔다. 

 

앤터니 블링컨 웬디 셔먼 김 성 라인이 전면에서 코리아반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주도하게 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미국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경사스러운 일이나, 한국과 조선에게는 피곤한 질곡과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 1.23 1300 (MST) sarnia (clipboard) 


5           4
 
Utata  |  2021-0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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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마조마 했던 긴장된 순간에서 한숨 돌려도 되나요?

다시 세상은 이성적으로 돌아 가겠네요.

이번 NSA의 수장 제잌 설리반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안심이 됩니다. 눈을 보니 "오 마이 갇"!

다행히 존 바이든의 다른건 몰라도 그를 선택한것은 미국을 위해서도,
한국을 위해서도 다행입니다.

아마, 동맹인 한국의 입장도 이미 알고 있단 생각입니다.

그의 입김이 어느 정도 일진 몰라도, 세계 평화를 잘 이끌어 가리란 생각입니다.

로즈 장학생 출신... 제2의 키신저...


이제 무서운 조폭하나가 점점 떠오르네요.

21세기 깡폐를...



믿습니다. 신뢰의 미국이 새로운 건설과
신 마피아를 조각조각내서,

좀 맘편히 대한민국이 살수 있기를...

clipboard  |  2021-01-23 15:16         
0     0    

바이든 외교안보라인 인선의 특이한 점은 무게있는 인사들을 백악관이 아닌 국무부에 포진했다는 점 입니다.
Jake Sullivan 은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Director of Policy Planning 을 역임한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국무부 3 두 마차에 비하면 아직 ‘아이small fish’ 라고 할 수 있죠.
말 그대로 보스의 advisor 역할은 잘 할 겁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직책상 청와대 안보실장하고 서로 카운터파트이긴 하지만 그 위상과 역할은 전혀 다릅니다.
말빨과 실력에 따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안보실장이 외교부와 국방부, 국정원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구조는 전혀 아니고, 안보실 차장이 외교부장관에게 기어오르는 사태같은 건 일어나지 않지요.

난 사실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하는 정보들을 토대로 느낀 점을 정직하게 글에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정파적 의견같은 건 가급적 배제하구요.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저는 언제부턴가 제 정치적 주장을 피력하는 글은 잘 쓰지 않아요.
누구나 다 자기 마음이 정해져 있는터에, 그런 글을 쓰는 건 노력에 비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Utata  |  2021-01-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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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전 한국식으로 큰 위치였단 생각과 또 그런 바람 이였는데요.

클립보드님은 개관적이란 면에서 최고입니다.

망원경처럼 자세히는 보이지만, 색깔의 왜곡은 없으세요.

대체 중국과 어떻게 지네야 되는지 저로선 모르겟네요.

어떻하던 내분을 이용해서 다수의 국가로 나누고 싶지만요.






philby  |  2021-01-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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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타님하고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처럼 몇개로 갈라져야 한다는겁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대륙이 몇개로 갈라졌을 때 동아시아는 평화로웠거든요.

모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멀리할 수 없는게 현실이니 정경분리 원칙을 세워 잘 대처하기를 바랄뿐이지요.

clipboard  |  2021-0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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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실 2 차장에서 물러나게 했던 김현종을 외교안보특보로 롤백시킨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현재 한국정부에서 외교부를 통틀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고위직이 별로 많지 않은데다, 김현종이 새로 지명된 국무장관 앤터니 불링컨의 컬럼비아 로스쿨 3 년 선배입니다.
미국이 한국처럼 학맥으로 통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컬럼비아 패밀리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동문들간의 끈끈한 면이 비교적 강하다고 합니다. 뉴욕에는 원래 꼴레오네 패밀리 등 5 대 조직이 있었는데 컬럼비아 패밀리가 추가되어 조직이 6 개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김현종 vs 강경화의 영어 옐링맷치를 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심심해 할 것 같습니다.

clipboard  |  2021-01-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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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의 인생스토리에 대해서는 그가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기 전인 2011 년 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 년 전 아주 자세하게 적어놓은 게 있습니다. 여기도 올렸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그냥 여기에 제 글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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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중학생이었다. 소년은 은석초등학교 3 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닌 뒤로는 그때까지 줄곧 일본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왔기 때문이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 했으며 성격이 원만하고 온순해서 친구들도 많았다.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던 소년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온 가족이 당장 일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직장을 그만뒀고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형과 함께 엄마를 따라 미국 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두 형제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다시는 우리나라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단다…… “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소년은 밤새도록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로부터 37 년이 지난 2011 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무부 차관급 대북특사 겸 6자 회담 수석대표 Kim, Sung 을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내정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아그레망을 요청했다. 형식적인 절차인 아그레망이 수락되면 의회의 인준절차를 거쳐 캐서린 스티븐슨 대사의 뒤를 이어 오는 8 월 제 22 대 주한 미국대사로 정식으로 부임하게 된다. 사상 최초의 한국계 미국대사이기도 한 Kim, Sung 은 1974 년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던 그 소년이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원래 공군 장교 출신이었다. 김재권이라는 가명으로 중앙정보부에 오래 재직했는데 본명은 김기완이다. 소년이 도쿄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김재권은 주일 한국대사관의 공사였다.

소년이 미국으로 떠나기 1 년 전인 1973 년 8 월 8 일에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로 구성된 범죄조직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므로 사건개요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이 사건 당시 무슨 역할을 했길래, 그렇게 갑자기 온 가족이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해야 했을까?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료들의 교차점검이 반드시 필요한데, 우선 정독해야 할 첫 번째 자료가 국가정보원의 자체진상조사보고서이고, 교차점검을 위해 필요한 두 번 째 자료가 김형욱 회고록과 그의 미국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록이다.

국가정보원의 공식자료 외에 김형욱 회고록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정보원 자료가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있는 사항, 즉 과거 김형욱의 부하들이었던 김기완과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8 국 공작요원 유춘국이 뉴저지에 있는 김형욱의 자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진술한 내용 중 중요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공식자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수행되기는 했지만 단순한 납치 사건이며 김대중을 한국에 강제로 데려오기 위해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납치공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유춘국의 증언은 전혀 다르다.

김대중 납치의 목표는 한국송환이 아닌 그를 살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만일 그를 현지에서 살해하지 않고 한국으로 데려 올 경우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들이 노정될 수 있다는 상부 견해 때문이라는 진술을 한 것이다. 이미 중앙정보부는 1968 년 서독에서 유학생들을 비롯한 교민들을 대거 납치해서 서울로 끌고 온 적이 있는데 이 사건 때문에 서독과 심각한 외교문제가 야기됐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유춘국이 김형욱에게 털어 놓은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김대중을 납치 현장인 그랜드 팰리스 호텔 객실 욕조에서 살해해 시체를 토막 낸 다음 유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침 룸 메이드가 방청소를 위해 문을 따고 들어와 방안에 있던 공작요원들을 목격하는 바람에 이 계획을 취소하고 실신한 김대중을 끌고 나와 차에 태운 뒤 일단 오사카에 있는 중앙정보부 안가까지 데려갔다는 것이다.

거꾸로 김형욱 회고록의 신빙성을 점검하고 걸러서 읽기 위해서는 국가정보원의 공식자료가 필요한데 가령 이런 것이다.

김형욱은 자기 회고록에서 이 납치살해공작의 지휘계통을 박정희-이후락-김치열-이철희-김기완-윤진원-실무조직 순으로 기술했다. 여기서 김치열 (1979.12,12 당시 법무장관 역임)은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는데 중앙정보부 특성상 차장은 거의 명예직이므로 이런 종류의 비밀공작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중앙정보부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형욱이 김치열을 이 지휘계통에 끼워 넣은 이유는 실수로 그런 것이 아니라 깐깐한 김치열과 개인적인 마찰이 잦았던 그가 사감으로 그를 끼워 넣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자료들을 서로 교차점검 하다 보면 비고적 어렵지 않게 사건의 본질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소년의 아버지 김기완의 역할을 살펴보자.

그는 이 납치살해(미수)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행동을 차례로 수행한 매우 특이하고도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다.

첫째, 김기완은 그의 직속상관인 이철희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1 차장보의 지령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무모한 계획이라며 반대했었다. 참고로 김기완의 직속상관 이철희는 1982 년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의 주인공 장영자의 남편, 그 이철희를 말한다. 장영자의 형부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이다.

둘째. 자신이 직접 서울 이문동 본부에 가서 이후락 부장을 만난 후 180 도 입장을 바꾸어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이 공작을 적극적으로 진두 지휘했다. 김기완은 납치작전명 KT공작계획안을 직접 작성했으며 서울에서 파견된 제 8 국 소속 공작요원들과 일본 대사관 및 영사관에 배치돼 있는 중앙정보부 공작원들을 모아 놓고 실행절차까지도 자세하게 지령했다. 김기완이 이처럼 태도를 바꾸어 적극적으로 이 작전에 임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 가서 김대중 납치살해 작전이 박정희에 의해 직접 내려진 <지상명령>임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김기완은 납치 현장인 호텔에서 살해하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요원들의 얼굴과 지문이 노출되자 마음을 바꾸어 당시 CIA 동경지부 공작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 (후에 주한 미국대사 역임) 에게 사건 전모와 자기가 작성한 KT 공작계획안을 보고했다. 지역 정보책임자로서 김기완과 그레그는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

넷째, 김기완은 사건 실패 후 가족들을 먼저 미국으로 보낸 후 자신도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김형욱을 만나 사건의 진상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때 김형욱은 박정희와 이후락 을 상대로 협상을 해 돈을 한 50 만 불쯤 뜯어내라고 조언을 했다. 실제로 김기완은 이철희를 통해 이후락을 협박했고 결국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뜯어냈다.

김기완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김대중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 한 동시에 살려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사회생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다름아닌 CIA 동경지부의 도널드 그레그였다.

그 사연은 이렇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가장 먼저 안 미국측 인사는 하버드대 교수인 제롬 코헨이다. 마침 도쿄에 있다가 소식을 들은 제자 임창영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도 잠결에 전화를 받은 제롬 코헨은 곧바로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를 두들겨 깨웠고, 코헨 교수로부터 사건 전말을 전해 들은 키신저는 혼비백산해서 전화통을 붙잡고 주한 미국대사 필립 하비브를 불러냈다.

키신저의 추궁을 듣고 기절초픙을 한 하비브는 당연히 정보 책임자인 도널드 그레그를 찾아 정보제공을 닥달했다, 아슬아슬하게 같은 시간 김기완이 KT공작계획서를 비롯한 정보 자료들을 그레그에게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이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을 것이고, 김대중은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 바다에서 수장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김기완의 변덕 덕분에 도널드 그레그는 이 구체적인 정보자료를 바탕으로 필립 하비브 대사를 통해 박정희와 이후락을 직접 압박할 수 있었는데, 김기완과의 이런 각별하고도 끈끈한 인연으로 그 아들인 Kim, Sung을 국무부의 대북정보라인으로 추천해서 차관급 고위직으로 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연과는 별도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무슨 마음을 먹고 이런 묘한 인맥과 사연이 있는 복잡한 인물을 대한민국을 <통제>할 새 대사로 보내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나중에 시간 나면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대한민국과 이 슬픈 소년의 기구한 팔자를 생각하면서 여기까지만 하자.

참, 김기완의 두 번 째 부인 임현자가 이 소년의 생모인데, 임현자는 유신시대와 5공시대 문화방송 경향신문 전무와 사장직무대리를 지낸 독재나팔수 임택근의 누나다. 임택근은 다른 두 여자에게서 아들을 각각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은 가수 임재범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탤런트 손지창(탤런트 오연수의 남편)이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본말을 전도한 채 이런 이야기들을 주로 늘어놓고 있으니 나도 부화뇌동 좀 해 봤다. 암튼 두 가문 모두 요란한 선친들 덕에 죄 없는 자식들이 고생하는 경우라고나 해야 할까.

다음은 ‘그 때 그 사건’ 범행가담자 명단이다.

범행교사주범-박정희-대통령
범행교사공범-이후락-중앙정보부장
범행교사공범-이철희-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1 차장보
범행교사공범-김기완(김재권)-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범행주범-윤진원- 중앙정보부 제 8 국 공작단장
범행종범-윤영로- 주일 한국대사관 참사관
범행종범-김동운- 주일 한국대사관 일등서기관
범행종범-유영복- 주일 요코하마 영사관 영사
범행종범-홍성채- 주일 한국대사관 참사관
범행종범-유춘국- 중앙정보부 제 8 국 공작요원
범행종범-백철현- 주일 한국대사관 서기관

2011. 06.05.2300 <MST> sarnia

clipboard  |  2021-01-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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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거지만,, 한국매체에서 국무장관 이름을 앤서니 블링컨이라고 쓴 매체가 있던데(중앙일보, 서울신문, 머니투데이), 그의 given name은 Anthony (앤서니)가 아니라 Antony (앤터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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