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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1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느닷없이 미국의 반중동맹 핵심파트너로 등장했다. 한국의 갑작스런 외교노선 급변침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외신은 역대 정상회담 공동성명 중 최장편전문 중 하나로 기록될 5. 21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서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 주목했다.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 유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모든 국가들이 미얀마 국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고 미얀마로의 무기판매를 금지 (미얀마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는 중국을 정조준), 세계보건기구(WHO)의 투명성 증진 및 독립성 보장, 세계보건기구를 강화하고 개혁하는 데 협력 (WHO 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 정조준), 코비드19 발병의 기원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평가・분석 (중국 영향력 아래 있는 WHO 를 배제하고 미국주도로 코비드-19 의 중국기원을 정설로 확립하는 작업 공동추진)
해양세력의 대중국 포위공격연대는 남중국해와 양안문제 뿐 아니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같은 전략첨단기술동맹을 포함한 다중-전방위 중국타격작전에 한국을 끌어들이는데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대단원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평소에는 눈에 졸음이 가득한 슬리피 조가 행사 내내 싱글벙글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첨단산업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회귀시키려는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반도체, 배터리 같은 첨단산업은 설계보다 제조분야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 미국으로서는 첨단소재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자국의 전략산업과 군사분야를 안정적으로 보위하게 된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반도체 제조는 더이상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기술 자체를 한국과 대만에 각각 본사를 둔 투탑 기업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mRNA 백신처럼 제조기술을 확보하고 실제로 공장을 돌리는 나라가 수퍼갑질을 할 수 있는 분야다.
이론적으로 대만과 한국이 의기투합하면 순식간에 미국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미국과 한국이 전략기술동맹으로 연대하고 여기에 대만이 가세하면 중국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건 시간 문제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국이 미국의 손을 번쩍 들어 준 것이다.
미국의 손을 들어 준 게 문재인 정부의 자발적 의사인가 여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강도 압박이 병행되었을 거라는 게 내 짐작이다.
한국의 국내사정과 남북관계를 소상하고 꿰고 있고, 한국 의사결정권자들과 통역없이 자유자재로 소통하면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동원해 협박하고 설득할만한 미국의 관료는 누구일까?
우리는 여기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 마자 긴급특채한 인물 한 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인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내가 지난 1 월 30 일 여기에 쓴 글의 서두부분을 가져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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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에 조용히 비상이 걸렸다. 지난 주 (2021 년1 월 28 일을 지칭함: 필자주) 국무부 고위관료에 임명된 한 인물 때문이다.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자리에 임명된 그 인물은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어떤 자세로 한국과 조선을 상대할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대조선강경인사들을 대거 포진시킨 바이든행정부의 심상치않은 코리아반도 정책기류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맘이 불편했던 청와대는 대통령인수위를 거쳐 미 행정부에 등장한 그 인물로 인해 긴장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인물의 이름은 Jung H. Pak 이다. 성이 박가고 이름이 정(Jung)이다. 한국 이름은 박정현이다. 나이는 올해 47 세. 맨하튼 양품점 집 딸로 태어나 줄곧 뉴욕에서 자랐다. 학부는 Colgate 를 다녔다. Colgate는 치약만드는 회사 Colgate가 아니라 뉴욕주 해밀턴에 있는 아트칼리지다. 컬럼비아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므로 컬럼비아 패밀리에 속한다.
정 박은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태평양 특작본부(East Asia & Pacific Mission Center) 책임자를 지냈다. 국내 16 개 정보기관을 총괄지휘하는 국가정보국(DNI)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부책임자도 역임한 첩보전문가다.
청와대가 긴장에 휩싸인 이유는 정 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 박은 조선의 리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립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2018 년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학 석좌로 재임했을 당시 그는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하면서 조선의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가능성을 일축한 적이 있다.
그가 한국정부의 사고방식과 정책전반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가 최근 기고한 글 ‘North Korea’s Long Shadow on South Korea’s Democracy’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기고문에서 문재인 정권을 가리켜 ‘군사정권이 사용하던 대본을 뒤집어 반대자를 찍어누르고 있는 (flipped the script, aiming to squelch opposition) 독재유산의 상속자’라는 식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기고문의 문맥과 용어를 살펴보면 노선 차이에 대한 비판을 넘어 한국정부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감정적 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감정적 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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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제를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자리에 임명된 정 박에게 부여되었던 특명은 당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곡예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줄에서 끌어내려 미국편으로 확실하게 돌려세우라는 것이었다.
정 박 부차관보가 이 특명을 지난 4 개월 간 어떤 식으로 추진해 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첩보기관 특작본부 책임자 출신답게 작전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는 이번에 나온 공동성명서의 놀랄만한 문장들이 그대로 말해준다.
5. 21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부, 국가정보원,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들이 지난 두 달 동안 뻔질나게 미국을 들락거렸다고 고백을 했는데, 그들이 뻔질나게 미국을 들락거리면서 가장 빈번하게 만났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십중팔구 정 박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였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그의 성향으로 보아 그가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취급했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한국의 기자들이 ‘지난 두 달 간 미국에 뻔질나게 들락거렸다’고 고백한 관료들을 수배해 ‘미국에서 저 사람 만나서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고 집중추궁하다보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사거리를 건질 수 있고, 특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21 한국 급변침 사건’은 나중에 미중패권경쟁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만일 이 주제로 특종을 날린다면 기레기 명찰 정도는 쉽게 뗄 수도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