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을 통해 느낀 캐나다
업무차, 아니면 개인적인 일 때문이라도 매년 한 번 정도는 한국을 다녀오곤 했는었데 팬데믹으로 인하여 모든 계획은 일 년 반 넘게, 기약 없이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이젠 몇몇 국가는 “with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코로나의 창궐 초반엔 도시 전체가 확진자 한 명에 두려움에 떨었고, 누구보다 조심 또 조심하던 내가 수만 명 확진자가 매일 같이 쏟아지는 상황에 한국행을 결심하다니,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이 with 코로나 시대를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다.
캐나다에 온 지 20년이 다 되다 보니 이민 초반에 느꼈던 이방인이란 느낌은 어느덧 사라진지 오래다. 높은 캐나다 세금조차 감사한 마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자원봉사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캐나다 시민으로서 의무와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캐나다 시민권을 받았던 때가 까마득하게 오래 되었을 지 언정,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할 지라도 내게 “우리나라”는 한국이며, 나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칭한다. 내게 한국은 나고 자란 곳인 동시에 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곳이다. 부모 형제가 한국에 계신데, (아직 부모님댁에는 내 방도 있는데…) 몹쓸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행 비자 신청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넌지시 아려온다. F4 비자를 받아, 격리 면제 신청에 PCR 검사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약 2년 반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행 출발 며칠 전부터 출입국 관리소 웹사이트를 통해 거소증(국내 거소 신고증) 신청 예약을 미리 하려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날짜가 클릭이 되지 않았다. 일단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한국에 도착해서 전화로 이유를 확인해 보니 예약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약이 다 차서 클릭이 안 되었던 것이었다. 담당자에게 출국 일정이 빠듯하다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비행 일정표를 가지고 오늘이라도 방문하라고 하였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택시를 타고 출입국 관리소에 도착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 틈에 섞여 차례를 기다리니 이젠 한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기분에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얼마나 대기자가 많은지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려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니 구비 서류 리스트에는 없었던 거주증명에 대한 서류(렌트 계약서 등)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류 부족으로 당연히 접수가 안되어 헛걸음을 한 줄 알았는데 부족한 서류는 내일까지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완하면 된다며 접수를 해주었다. 접수 후 등록이 완료되는 것은 일주일쯤 걸렸고, 거소증을 받아보는 것은 2-3주가량 걸린다고 하니 생각보다 빠른 업무처리에 “역시 한국” 이란 생각이 들었다.
접수 후, 근무일 기준 4일이 지나자 등록이 완료되어 거소 확인서 발급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고, 정확히 2주 반 만에 거소증이 택배로 도착했다. 캐나다에서의 수속 시간은 평균적인 수속 시간일 뿐 그 안에 내 업무가 처리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반면, 한국에서 안내하는 수속 시간은 업무 처리를 보장하는 기간인 듯하다. 한국 출입국 관리소 업무는 캐나다 이민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런 서비스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에겐 캐나다 비자 수속이 얼마나 답답할지 고객들의 고충이 새삼 피부로 다가온다.
이전까지 한국을 방문할 땐 2주도 안되는 짧은 일정으로 방문하다 보니 거소증 신청을 해 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이번엔 비자도 준비하고 일정을 좀 길게 잡은 덕에 늘 바랬던 거소증 신청에 도전할 수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거소증을 받으니, 주민번호 뒷자리가 2가 아닌 6으로 시작했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동안 한국 신분증이 없어 불편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십 년 거래해온 신한 은행에 최우수 고객으로 되어 있으나, 주민등록 말소 이후로 신용카드는 고사하고 체크카드 하나 만들지 못했다. 또 정식 핸드폰은 신청하지 못해 선불폰만 사용했던 불편과 설움도 이제 끝이었다. 카카오택시를 등록하고 핸드폰 본인 인증으로 배달 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용한 한국 앱을 깔았다. 역시 한국은 IT선진국이자, 배달의 민족이었다. 배달이 안되는 메뉴가 없고, 주문이 안되는 시간도 없었다. 코비드 추적을 위해 가는 곳마다 하는 방문자 등록을 캐나다처럼 수기로 하는 것이 아닌 본인 핸드폰 QR코드로 스캔만 하면 끝이었다.
캐나다 국토 면적이 한국의 백 배인데 반해 인구는 약 3800만 명으로 인구 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한국과 캐나다의 라이프 스타일은 거의 정반대에 가깝다. 한국의 장점은 캐나다의 단점이 되고, 캐나다의 장점은 한국의 단점과 거의 흡사하다. 오랜만의 한국행은 그 장단점을 더욱 뚜렷이 느끼게 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학원을 전전하고, 졸업 후엔 취업난에 시달리며,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준생이란 이름으로 원치 않는 알바 생활을 수 년씩 하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퇴직 걱정을, 심지어 정년을 앞둔 이들의 노후에 대한 걱정은 캐나다보다는 한국이 확실히 무겁다. 너무나도 편리한 삶 속에서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반면 캐나다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다른 문화나 가치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 아마 그런 이유로 엘리트주의적이 사고가 없고, 인종 차별이 확실히 적다. 다양한 개인의 인생 목표와 가치가 존중받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겉으로는 모범생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반골 기질이 많았던 내게 캐나다는 뚜렷하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없음에도 사회적인 무언의 압박이 없어서 왠지 숨쉬기 편안한 곳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도 3시 반이면 수업이 끝나고, 직업의 귀천이 없어 도로 공사 현장에서 멈춤 표지판을 드는 삶에서도 만족을 느낀다. 나도, 아이들도 각자가 원하는 목표가 자연스럽게 생기다 보니 어떤 일을 하든지 동기 부여는 언제나 확실하다.
이민이란 새로운 삶과 목표를 위해 태어나고 자란 모국을 떠나는 것은 삶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이고, 더불어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낯선 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데 부단히 힘써야 한다. 매년 짧게나마 한국 방문을 하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조차 한국이 점점 불편해지고 어려워지는 상황인데, 심지어 언어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캐나다에 적응하려는 분들에겐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이 분명 엄청난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지라도, 적어도 나에게 캐나다 이민은 열 번을 물어봐도 “도전”을 외칠 가치 있는 목표임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대 표 허 인 령
· 캐나다 공인 이민 컨설턴트
· 알버타 주정부 지정 공증 법무사
· 해외 리크루팅 라이선스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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