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목회할 때나 은퇴 후에나 항상 나에게 따라다니는 호칭이 “무신론자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설교와 교육프로그램과 칼럼 등의 내용에서 “믿음”(belief) “성령” “천국” “죽음 후의 영생” “최후심판과 구원” “불치병이 낫는 기적” 등의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행동에 대해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곧 유신론적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신론자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목회지에 도착하면 그곳이 영어교회이던 한인교회이던 나의 첫 일성은 “이제부터 믿는 이야기 그만하고, 사는 이야기를 합시다. 나는 예수가 물 위로 걸어갔다는 것과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 이야기들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메시지를 탐구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사심없이 삽시다. 하느님의 기적적인 축복에 의존하지 말고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삽시다.” 아마도 이러한 나의 말이 무신론자의 변명으로 들렸는지 사람들은 나를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신학과 신앙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정신이었으며, 오늘 주류 신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신학입니다.
나는 1998년에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더욱 나의 신학의 지평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물론 그보다 10년 전에 멕길대학 종교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에 나의 교수들은 역사적 예수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부터 나는 유신론적 하느님을 떠나보내고 완전한 인간성의 예수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스승 예수는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종교제도를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나는 이 참 사람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입니다. 이 예수는 유신론자가 아닙니다. 불행하게 참 사람 예수, 역사적 예수는 325년에 로마제국의 황제의 정치적인 야욕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지면서 하느님 예수로 변질되었으며 오늘까지 교회는 예수의 신성을 맹신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서 숨겨온 이러한 사실도 신학교에서 새롭게 배웠습니다. 나는 성서가 증거하는 반유신론적 예수를 따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