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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환아, 잘가라 !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5464 작성일 2021-11-23 18:07 조회수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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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8 년 전인 1983 10 9 ,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전두환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박수를 치며 좋아했었다.

 

어제 이 시간 쯤 전두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은 그저 담담했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떠 오르긴 했다. 한국은 23 일이지만 여기는 22 일이어서 마침 JFK가 죽은 날이기도 한데, 한국보수 중 또 어떤 인간들이 죽은 날이 같다고 전두환이 한국의 JFK 라고 떠 벌이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전두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공과를 운운하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당시 아이들이 부르고 다니던 노래가 있었다.

 

대머리가 바람에 펄쩍 뜁니다. 대머리는 쉬운 말로 개새낍니다.   

주걱X이 바람에 펄쩍 뜁니다. 주걱X은 쉬운 말로 썅년입니다.

 

시대가 달라져 지금은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면 안된다. 용모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6 년 전인 2005 ,

씨엔드림 오프라인에 글을 하나 올린 게 있다.

기념으로 여기에 가져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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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나는 고등학교 2 학년이었다. 1979 년 봄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정치적 사건들은 26(지금은 42 )이 지난 오늘까지도 하나 하나의 장면들이 마치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처럼 뇌리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기억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건 아마 그 해와 그 이듬해 나와 비슷한 또래로 한국땅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대개 공통된 경험 일 것이다. 그만큼 그 두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의 신경을 온통 집중시킬 만큼 해괴하고 기이한 것들이었고, 마치 상식을 벗어난 주인공들이 벌이는 엽기행각을 다룬 드라마 같았다.

 

내가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그 해 5 30 일부터였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누르고 당선되던 그날 나 와 내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그로부터 두 달 반 이 지난 어느 여름날 밤 야당 당사에서 농성 중 이던 여공(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개처럼 끌려갔을 때 이 정권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느낌은 신통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줄곧 박정희 혼자 이 나라의 국가원수였기에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기 힘든 세대였기 때문이다.

 

그 해 9 , 멀쩡한 야당 총재를 밀어내고 정운갑 인가 뭔가 하는 듯도 보도 못한 이름이 총재직무대행이라는 직함으로 신문에 등장했다. 어떤 놈들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꾸몄을까 하는 게 나와 친구들의 관심사였을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치공작 이었다. 뉴욕 타임즈와 기자회견을 한 야당총재가 국회에서 제명되고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우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며칠 뒤 박정희가 죽었다. 여가수 와 여대생이 시중을 드는 각하 전용 비밀요정 에서 술을 마시다가 부하의 총에 피살됐다는 것이 후에 밝혀진 사실 이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나와 아무 애증관계도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기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거액의 외화 밀반출과 보석밀수로 이름을 드날린 적이 있는 우리 학교의 이사장만이 전교생이 모인 채플시간에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울먹이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1979 년 과 1980 년 은 예민한 틴에이저들의 관심을 일상에서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고, 이 후 이 세대를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전투적인 동지의식을 갖는 특이한 또래집단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1979 년 봄까지 나 와 친구들의 관심사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토요일마다 담배연기 자욱한 아지트에서 고 스톱을 쳤고 해변가요제와 일간스포츠 연재소설 ‘제 5 열’, ‘여명의 눈동자’ 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TBC ‘고전 유모어 극장’ 과 ‘서금옥의 밤의 데이트’를 빠짐없이 보고 들었고 정윤희를 보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몰려갔다가 경비에게 쫒겨 나기도 했다.

 

그러나 10.26을 기준으로 앞뒤 1 년 여 간에 걸쳐 벌어진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코미디는 우리를 전혀 다른 아이들로 바꾸어 놓았다. 1 년 여 동안 우리는 갑자기 10 년은 더 나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추리력과 감각으로 전개되는 ‘판’을 해석해 내기 시작했다.

 

전두환이 정승화를 잡아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이것이 쿠데타 라는 걸 단박에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시작부터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던 우리가 이 ‘반전’ 이 의미 하는 것을 놓칠 리 없었다. 우리는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고 이 작자들이 언젠가 반드시 대가리를 내밀고 다시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듬해 4 14(이 날 도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했다. 우리의 확신이 착착 현실로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권력의 공백기에 양대 정보기관을 한 사람이 장악한다는 게 어떤 의미라는 것까지 알기엔 우리가 너무 어렸지만 저 인간이 멀지 않은 장래에 대통령에 오를 것 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전두환 과 신군부의 집권은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이들의 시나리오는 만 18 세 고등학생들의 손바닥 안에서 조차 낱낱이 파악될 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 이었다. 우리에게는 5 18 일 조간신문에 난 경천동지할 내용의 비상조치 역시 올 것이 온 것에 불과했다.

 

단 한가지 광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돌발사태였다. 광주항쟁의 비극은 우리의 확신을 이 어리석고 무모한 자들에 대한 증오와 결합시켰다.

 

1981 3 3 일에 있었던 전두환의 12 대 대통령 취임식은 확신 과 증오로 무장한 신세대와 신군부 집권세력간에 벌어질 격렬한 7 년 전쟁의 막을 올리는 신호탄 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그들의 흉계 와 행보를 미리부터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런 우리와 전두환 정권은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철 천지 원수나 다름 없었다.

 

내가 허화평 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대학 2 학년 때인 1982 년 봄 이었다. 증권가와 대학가에 집권세력 내부의 심각한 균열로 인한 쿠데타 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을 때였다. 우리는 그들 내부 갈등의 원인이 정치자금조성을 위한 금융부정을 둘러 싼 것 이라는 정보까지 입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갈등의 두 축이 생뚱맞게도 이순자 와 허화평 이라는 것이다. 장영자 사건이 공식 발표되기 직전의 일이다. 육사(陸士) 위에 여사(女史)가 있다는 말은 2.12 총선 때 민한당 후보로 나온 정대철이 처음 한 게 아니라 그보다 3 년 앞서 허화평이 최초로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이 허화평 이라는 자가 우리에게 DDD (두환이 대머리 돌대가리) 라는 놀림을 받고 있던 전두환의 브레인 이며 쿠데타 정권의 사실상의 기획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하 생략)

 

==========

 

2005 년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을 모르는 세대를 대상으로 12.12 쿠데타와 신군부 집권과정의 정당성을 교활하게 설파하고 다니던 허화평 (육사 17 , 쿠데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대령)에게  너희가 한 짓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의미로 쓴 글이었다.

 

그건 그렇고,

 

윤석열은 참 웃기는 인간이다.

조문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냥 가면 되지 쭈삣거리더니 안 가겠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게 아니라,

 

도대체 죽은 자를 조문할지 말지 이런 사소한 일 조차 스스로 결정하지못하고 좌고우면 우왕좌왕하는 인간이 무슨 대통령이 되어 한 국가의 위기관리 총책임자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주 딱하기 짝이 없다.

 

DDD. 두환아 잘가라!

혼자 가지말고 몇 넘 잡아 같이 가라.

멀어서 조문은 못간다.

 


17           10
 
philby  |  2021-11-23 18:36         
6     5    

군사반란으로 총살형 당하던가 민간인 학살로 교수형 당해야 할 자가 자연사 하다니... 이런 자가 영겁의 고통을 당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못 보고 지혜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야 하다니... "죽은 의인이 살아 있는 악인들을, 일찍 죽은 젊은이가 불의하게 오래 산 자들을 단죄한다."

댓글 달려는데 반대가 하나 눌러져 있어요, 내가 그런 건 아니에요.

clipboard  |  2021-11-23 18:58         
0     3    

살아서 좋은 일 못했으면 귀신이 되서 일부라도 갚아야 하는 법
두환귀신이 저 대선판 몇몇 허접한 넘들 함께 데려가주면 대한민국에 좋은 일일텐데요.

영안실에 나타난 면면들보니, 장세동, 김진영, 고명승, 민병돈,신윤희,, 다들 살아 있었군요.
민병돈은 6 월 항쟁 당시 특전사령관이었고 위수령 발동에 반대했던 인물인데, 노태우 정권때는 육사교장하면서 졸업식 때 축사하고 노태우에게 경례도 안하고 자리에 앉은 사건으로 유명하죠.
신윤희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12.12 당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으로 당시 육본에 모여있던 자신의 직속상관 장태완 등 육군본부 정식지휘계통상의 장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체포한 인물입니다.

philby  |  2021-11-23 19:34         
0     1    

민병돈이는 노태우 북방정책에 불만을 품고 육사 졸업식에서 임석상관에게 경례를 안하고 들어갔다 짤렸는데 북방정책은 노태우가 잘한 것 중에 하나지요.

신윤희가 부단장이었고 조홍이가 단장이었는데 소문에 듣자니 조홍이는 토론토에서 숨 죽이며 살고 있다던데요. 모두 군사반란으로 총살 당해야 할 인간들인데...

clipboard  |  2021-11-23 19:54         
0     1    

조홍이 준장진급 한 거 축하한다는 핑계로 연희동 민마담 요정에 수도권 실병력 지휘관들인 특전사령관 정병주와 수경사령관 장태완 등을 불러 발을 묶어놓고 쿠데타를 진행하려고 했지요. 그 조홍이 토론토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어요.
12.12 가 성공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은 제 1 공수여단장 박희도입니다. 최후의 순간에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고 지휘부를 무력화시켰으니까요.
하지만 불법반란의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낸 부대이동은 뭐니뭐니해도 9 사단 29 연대의 중앙청 포위일 겁니다. 특전사 소속인 공수여단과는 달리 이 부대는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는 부대이고 수도권 방어의 핵심부대인데 이 부대를 서울로 진격시켰다는 것은 이 쿠데타가 얼마나 불법적이었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당시 9 사단장은 노태우..
야전군 보병부대가 청와대인근을 포위했는데도 당시 수경사는 모른척했는데, 수경사에서 실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부대인 30 단 (장세동) 33 단 (김진영) 헌병단 (조홍)이 모두 전두환 보안사 편에 섰으니 그럴 수 밖에요.

philby  |  2021-11-23 20:28         
0     2    

그때 그 황당했던 일들이 새삼 생각나네요. 계엄업무에 수도권 지휘관들 수고 한다고 정병주 특전 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헌병감을 연희동 요정으로 불러냈지요. 이 세명 모두 정승화 총장 편이었고. 나중에 장태완 사령관 통화에서도 나오는데 정병주 사령관에게 우리 둘이 꼬임에 빠졌다면서...

1공수가 김포에서 행주대교 건너는데 행주대교는 30사 관할인데 30 사단장 박희모도 전두환이랑 한패라 군사령관 명령 안 듣고,, 9사단 29연대 30연대가 출동했는데 군사령관에게 출동 지시 없었다고 허위보고 하고, 이상규 기갑여단장은 군사령관 명령 대신 같은 하나회원 백운택이 말 듣고 부대 출동 시키고. 33경비단장 김진영이는 수경사 탱크부대 명령 무력화 시키고, 정식 지휘계통을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뭉게버린 당나라 군대 비극이지요. 이것도 하나회를 키워준 박정희 공로인지...

clipboard  |  2021-11-23 20:45         
1     1    

6 월 항쟁이 절정에 이르던 1987 년 6 월 19 일 두환이는 국민을 두 번 째 학살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는 증거가 당시 육군참모총장 박희도 명의의 작전명령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새끼라는 욕도 아까운 놈 입니다. 혼비백산한 레이건 행정부가 주한미국대사 릴리에게 친서를 들려보내고 이어 존 스타인 CIA 서울지부장이 직원들을 이끌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전두환을 연금하다시피하고 압박하지 않았으면 그 해 6 월 서울이 피바다가 되었을 겁니다. 전두환으로서는 천만뜻밖에도 군부가 반대하고 (당시 특전사령관 민병돈과 보안사령관 고명승이 가장 강력하게 계엄선포를 반대) 미국이 군부의 계엄선포반대를 뒷받침하는 등 정권의 위기가 도래했기 때문에 직선제 수용이라는 플랜B로 급회전한 것인데,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전두환 공과 운운하는 분들은 ...... ... 하고 있거니 생각하시면 됩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요. 오죽하면 수구보수조차 정치를 한다는 넘들은 단 한 명도 조문소에 코빼기도 안 보이겠습니까?
아직도 긴가민가한가요? 그렇다면 그런 줄 아세요.

더바보  |  2021-11-23 21:00         
3     1    

규정위반이라 판단되어 내용 삭제했으며 글쓴분께도 이메일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_운영팀

Utata  |  2021-11-25 11:36         
1     5    


혼란 스럽습니다. 비교의 기준이 선진국 이면요.
유투부에 많은 영상들이 있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에 대한것 들이요.
한 영상은 폴리스라인을 경고 하였지만, 넘은 여성분을 기마병이 바로 밟더군요.

참 이상합니다. 자꾸 광주민주화의 운동의 상징성을 희석되는 지요. 가능하면
순수한 학생과 지식인들의 비폭력 저항와
공권력을 정면으로 저항한 반정부 세력은 분리해야 되지 않을까요?

LA 폭동 사태도 두가지면으로 분리해 생각하는게 맞을꺼 같습니다.

억압된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 인권 문제와
그당시 기회를 이용한 범법적인 사람들을 구분하는것 처럼요.

얼마전까지도 폭동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처벌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범법자고, 인권을 이야기 하는 사람과 혼합할순 없을꺼 같습니다.

한국은 언젠가는 광주의 희생을 주도한 범법자들을 구분하지 않는 이상,
순수한 의인들의 희생을 모욕하는거지요.

정말 광주에서 대 정부를 상대로 총과, 각종무기로 군인들을 살해한 사람들을
의인으로 보시는지요.

그분들이 지금 광주 유공자에 섞여 있습니다. 가치관의 논리적인 정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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