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에서 절대 열세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항전의지를 불태우며 대통령 이하 전 국민이 조국 방어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문득 6.25 동란이 생각 났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문산 방면 방어 부대 1사단은 장병들을 농번기 휴가 보내 전투병력이 거의 없어 개전 초기 개성을 빼앗기고 일방적으로 밀렸다. 1사단장 백선엽 대령(당시)이 수색에 있는 사단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습 불능 상태였다.
중부전선 (의정부 동두천)을 지키는 수도사단(현재 7사단)도 장병 대부분을 휴가 보내고 4,500명이 남아 있었는데 불과 몇시간 만에 북한군에 돌파 당했다.
춘천 홍천을 방어하는 동부전선의 6사단(사단장 김종오 대령)만이 사단 편제를 제대로 갖추고 북한군의 남하를 막았다. 김종오 사단장은 장병들 휴가 보내지 않아 93%가 남아 있었고 북한군 남침에 대비해 군의관까지 포 사격 능력을 갖추게 했다.
6사단은 북한군 2사단, 7사단, 106 전차연대를 상대로 동부전선을 훌륭하게 지켜냈으나 서부전전 중부전선이 괴멸되자 육군본부 명령대로 후퇴하였다. 후퇴하면서도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해 국군은 패전하고 내려오는 부대를 시흥에서 재편성할 시간을 벌었다. 당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은 김홍일 장군이었다. 김홍일 장군은 장개석의 국민혁명군 소속 장군으로 중국에서 사단장을 지냈고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에도 헌신했다.
6사단은 그 후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 8사단을 괴멸시킬 정도로 큰 타격을 주었다. 김일성도 “남조선에 제대로 된 부대는 6사단 밖에 없으니 그 부대를 까부수라”고 명령을 했다 한다.
6사단의 가장 큰 공적은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점이다. 6사단의 영웅적 투혼이 없었으면 “너무 늦었다” 면서 유엔이 참전을 포기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의지나 6사단의 분투를 생각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진부한 속담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크라이나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악마 같은 푸틴의 침략을 막아 내기 바란다. 전투경험이 있는 국제의용군 2만명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뱀다리 1: 6사단은 초산까지 진격해 중대장 이대용 대위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주었다. 이대용은 베트남 전쟁 때 주월 공사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포로가 되기도 했다.
뱀다리2: 해방 후 군 간부들은 일본군, 광복군 출신들이 대부분으로 김종오 장군도 일본군 출신이다. 그런데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소위로 진급 후 해방이 되어, 황군에 충성을 맹세하고 입대한 박정희나 백선엽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