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 1
여러해전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여러가지 검사 결과, 담석에 의한 급성 담낭염이란다. 당장 입원하고 수술하는걸로 결정됐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응급실에서 헤롱거리다가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병실을 배정받았다.
그때까지 내 옆을 지키던 아내와 함께 배정된 병실로 가니 간호사가 악수를 청하며 밝게 맞아주었다. 정해진 침상에 자리잡은 후 간호사가 아내에게 이제 집에 가라고 했다. 아내는 병실에서 나와 함께 지내길 원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단호히 말했다.
'안돼! 네 남편은 이제 내꺼야. 넌 집에 가!'
캐나다에선 한국처럼 간병인이 병실에 같이 지내는 시스템이 아니라는걸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간호사의 단호한 말에 분노의 기색이 잠깐 지나간후, 체념한 표정으로 아내는 집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난 어벙벙한 표정으로 이 어색한 삼각관계의 원치 않았던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내는 내 속옷등 몇몇가지를 챙겨 병실에 찾아왔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얼굴은 웃고있지만 반쪽이 되버렸다. 남들이 보면 환자와 보호자가 바뀐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날 오후 늦게 수술받았고 다음날 오후에 퇴원했다. 수술 자체는 전신마취 후에 배에 구멍을 네 개 뚫어서 복강경으로 담낭을 제거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시야 확보와 복강경 조작을 위해 얼마나 공기를 내 뱃속에 불어넣었는지 죽을만큼 아팠다.
빠른 회복을 위해 자주 가벼운 산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독한 수술후 통증 때문에 누워있고만 싶은데 아내의 닦달 때문에 자주 끌려나가 산책을 하곤 했다. 그 때 집 근처에 CO-OP 슈퍼마켓이 있었다. 산책삼아 자주 그곳에 가서 간단히 이것저것 사서 돌아오곤 했다.
어느날 저녁 쇼핑한걸 담은 몇개의 비닐봉다리를 덜렁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내가 쓸개빠진 놈이 되다니, 흑흑…' 주접을 떨어 아내를 웃기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내게 말했다.
'자기보다 먼저 죽는거야.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자기가 죽는걸 상상하고 나 혼자 사는걸 떠올리니까 무섭고 못견디겠더라. 그래서 난 자기보다 먼저 죽을거야. 내 마지막 소원이야.'
이 여자, 나에 대한 애정 표현을 참 섬뜩 하게도 한다. 여튼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소원을 이뤄줄 숙제가 생겼다.
여자는 보통 남자보다 평균수명이 많이 길다. 열심히 건강을 유지해서 여성 평균 수명 이상을 살아내야 할까? 아서라. 나처럼 게으른 놈에겐 불가능 할꺼다.
아내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어야 할까? 안된다. 내가 죽은 후에도 아내의 생물학적 생존 시간은 무척 길 것인데 포기할 수는 없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