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자유게시판
절대로 아내 앞에서 흰 셔츠와 검은 멜빵 반바지를 입으면 안된다.
작성자 심심해     게시물번호 15812 작성일 2022-03-11 04:43 조회수 2048

마지막 소원 2

 

사춘기 딸을 둔 사이좋은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자축해 중학생인 딸을 일본에 남겨두고 유럽을 여행중이었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즉흥적으로 독일 전통 의상을 파는 의상실에 들러 민속의상을 사기로 했다. 시착실에서 남편이 독일 민속의상을 입고 나왔다. 흰 셔츠에 굵은 멜빵이 달린 검은 반바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독일 민속의상을 입은 남편을 본 아내의 표정이 순간 웃음기가 사라지고 싸늘해졌다. 그리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백을 챙기고 아무런 말도 없이 의상실을 나가서 사라졌다. 아내는 이후 다시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 부부는 그대로 이혼했다.

 

이상은 이 부부의 딸이었던 여자가 남자주인공에게 10여년전 자기 부모가 이혼한 경위를 설명한 내용이다.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나온 에피소드다. 너무 오래 전이라 소설의 제목이나 전체적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위 에피소드만 마치 대뇌 피질에 문신을 새긴 것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후에 엄마는 딸에게 그 때가 바로 자신이 남편을 그동안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 때 아내의 남편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여자의 아빠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별로 다뤄지지 않은걸로 기억된다.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정말 호러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 한마디 없이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버림받은 것이다. 단지 하얀색 셔츠에 검정색 멜빵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만약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내와 결혼한지 25년이 훨씬 넘었다. 아내는 여전히 나만의 치어리더다. 항상 나를 응원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와 결혼한 아내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이 나이에 지금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부모형제복 없고 키작고 못생기고 가난한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다.

 

만약 이 여자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삭막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젊었을 때보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좋아진다. 아직도 난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트럭운전을 하며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과거에 했던 못난짓, 흑역사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심사숙고한 결과 나는 참 못난 놈이다. 전혀 아내에게 사랑받을만한 놈이 못된다. 때문에 위 내용이 불현듯 떠오르면 어느날 갑자기 아내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벌벌 떠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아내 앞에서 흰 셔츠와 검은 멜빵 반바지를 입으면 안된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은 나보다 먼저 죽는거다. 나의 죽음과, 그리고 그 후의 혼자 살아가는 삶이 싫다는 거다. 말도 안되는 소원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산다. 또한 아내의 집안은 장수혈통이다. 아직 장인장모가 한국에서 정정하시다. 나는 이미 형제자매 부모없는 천애고아다. 통계적으로, 혈통적으로 고려할 때 내 사후에 아내는 홀로 30년 이상을 살아갈 거다.

 

10여년 후에 나의 마지막 날이 찾아올 것이다. 나의 임종에는 아내가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을거고 의사가 나의 죽음을 선포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그 때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화장실로 갈거다. 그리고 천장에 숨겨놓은 흰 셔츠와 멜빵달린 검정 반바지를 꺼내서 갈아입을 거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를 보고 의사는 어안이 벙벙하겠지. 아내는 잠깐 놀랐다가 이내 내가 이런 형편없는 놈이랑 지금까지 살아온건가? 하는 깨달음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갈 것이다. 천천히 침대에 몸을 누이며 좀 슬퍼질 것이다. 마지막에 보는 아내의 얼굴이 나에 대한 경멸이 가득찬 표정이라니…

 

하지만 이걸로 아내는 홀로 30년 이상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나의 죽음 따위는 아내의 남은 생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걸로 족하다. 의사만이 지켜보는 속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겠지. 눈물 한방울이 또르르 얼굴 옆으로 흘러 베개를 적실 때 내 입꼬리는 살짝 올라갈거다. 의사는 빈 방에서 내 죽음을 선포하겠지.

 

훌륭해! 완벽한 계획이다. 이제 아내의 흰 셔츠와 검은 멜빵 반바지가 뭔지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4           0
 
다음글 한국보수와 캐나다 보수의 차이
이전글 정치보복이란 ?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식료품, 주류, 식당 식..
  드라이브 쓰루, 경적 울렸다고 ..
  앞 트럭에서 떨어진 소파 의자 .. +1
  (CN 주말 단신) 앨버타 실업..
  (CN 주말 단신) 우체국 파업..
  “나는 피해자이지 범죄자가 아니..
  RCMP, 경찰 합동 작전, 수..
  연말연시 우편대란 결국 현실화 ..
  캐나다 우편대란 오나…우체국 노..
  주정부, 시골 지자체 RCMP ..
  현충일 캘거리 각지 추모행사 진..
  캘거리 트랜짓, 내년 수익 3,..
자유게시판 조회건수 Top 90
  캘거리에 X 미용실 사장 XXX 어..
  쿠바여행 가실 분만 보세요 (몇 가..
  [oo치킨] 에이 X발, 누가 캘거리에..
  이곳 캘거리에서 상처뿐이네요. ..
  한국방송보는 tvpad2 구입후기 입니..
추천건수 Top 30
  [답글][re] 취업비자를 받기위해 준비..
  "천안함은 격침됐다" 그런데......
  1980 년 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답글][re] 토마님: 진화론은 "사실..
  [답글][re]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반대건수 Top 30
  재외동포분들께서도 뮤지컬 '박정희..
  설문조사) 씨엔 드림 운영에..
  [답글][답글]악플을 즐기는 분들은 이..
  설문조사... 자유게시판 글에 추천..
  한국 청년 실업률 사상 최고치 9...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