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뭐 그냥 일이죠. 커리어는 라이프스타일을 얘기하는 거고, 대부분 우리 같은 노동자들은 잡을 갖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가 없으면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도 5년 동안 그랬고요. 그런데 자식을 갖고 나면 애가 집을 나갈 때까지는 커리어는 포기를 해야하거나, 강제로 포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커플이 둘 다 일을 하는 상황이면, 부모가 둘 다 칼퇴근하고 집으로 와야합니다. 제 와이프는 코빗19 격리 중에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고 지금은 주중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아침에 맡기고 오후 4시30분에서 5시 사이에 저나 와이프나 둘 중에 먼저 일 끝나고 돌아오는 사람이 아이를 픽업해서 옵니다. 한 사람만 일 하고 배우자가 아이 돌보기를 100% 전담하는 상황이면 일하는 사람이 늦게까지 일 할 수도 있겠지만, 몇 개월 이상 이런 생활패턴이 유지되긴 어렵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됩니다. 직접 경험으로 많이 아실 겁니다.
아이가 하나면 그래도 엄마 아빠가 돌아가면서 교대로 아이를 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집니다. 저는 지금 토요일 오전인데, 와이프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저는 이 시간에 YMCA 가서 운동을 하거나 온라인 코스 들을 여유도 조금 생겼습니다.
그런데 애가 둘 이상 생기면 이런 여유는 없어집니다. 와이프도 워낙 대학졸업하고 지금까지 계속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집에만 있는 건 1년 동안 육아휴직 동안 경험하면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몸소 깨우쳤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다들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의 와이프도 애가 없을 땐 셋은 낳아야지! 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미리 간접경험으로 얼마나 스트레스풀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뭐 어쨌든 하나만 키우는 거라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일하다 와이프가 요청하면 언제든지 집에서 아이를 픽업하러 갈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하나니까 차가 클 필요도 없고, 집도 작은 집에 살아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에 애가 셋인 지인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첫째 낳고 둘째를 원하는 와이프 때문에 임신을 했는데 쌍둥이가 나와 셋이 된 케이스인데, 애가 많아지니 일단 집이 작아져 더 크고 비싼 집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중형 세단 타고 다니다가, 와이프가 애들 태우고 다닐 혼다 오딧세이 새로 사고 자기는 출퇴근용으로 소형 세단을 따로 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돈 많이 깨졌죠. 그리고 와이프도 일을 하니까 애들 셋 다 데이케어를 보내느라 한 달에 3천불가까이 쓰면서 탈탈 털리는(?) 생활을 몇 년 했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지금은 커서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다니는데, 스케쥴이 셋 다 달라서 하루에 몇 번을 축구장으로 차를 태워 왕복을 한다더군요.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는 셔틀버스 운전하고. 이 친구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 여름입니다. 날씨 따뜻해지면 만나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으려나요. 이렇게 애들 셋을 키우니까 이 친구도 커리어 욕심이 있었고 회사에서 relocate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다 포기하고 같은 직장에서 지금 10년을 넘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능력 인정받아 디렉터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자기 커리어는 여기서 사실상 끝난 거라고 받아들인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고등학교 때 울 학교에서 성적 제일 좋았던 친구고, 대학도 4년 전액 장학금 받아 다닐 정도로 수재였던 사람이니 포텐셜이 많았죠. 지금은 와이프랑 둘이 열심히 벌어 몰게지도 다 갚았고, 먹고 사는 데에 불편한 건 없지만 같이 앉아 얘기를 하다 보면 육아에 치여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내려놓아야 했던 것에 대한 넋두리는 아직도 간간히 맥주 한 잔 하면서 합니다. 앞으로 15년 정도만 존버하면 뭐 자유가 오겠지 하는 실같은 희망 하나 갖고 있습니다.
어쨌든, 자식을 갖기로 결정을 한다면 동시에 내 일이나 커리어도 포기한다는 결정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가정과 커리어 둘 다 지키는 건 무자식 라이프스타일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껏 깨닳은 것입니다.
육아
아이가 둘 이상이면 여자가 혼자서 아이들을 돌 보는 가정이 많은데, 그렇다고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육아환경이라고 생각하면 주양육자의 정신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영화 Tully를 보면 샬리즈 테론이 애 셋을 혼자 키우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 연기를 기가막히게 했는데,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커플들에게 꼭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동상이몽에 정조국, 김성은 커플이 나온 것을 보면서 정조국씨가 애를 셋 낳아 키우면서도 싱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런 커플들이 얼마나 많고, 아빠랑 같이 놀 수 없어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유아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지배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들 중 하나가, 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게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인데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엄마 아빠가 가장 필요한 시기가 태어나서 학교 들어가기 전인 6-7년 정도인데, 왜냐하면 학교 다니기 시작 할 때부터는 친구들과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뭐 아빠하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가 전부고요. 모든 부모가 같은 선택을 할 의무는 없지만, 그런 선택을 따르는 결과가 어떤지 잘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빠가 가족들 위해 (자기 생각엔) 밥도 안 먹고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다 줬더니, 자식들은 고마운 것 모르고 아빠는 그냥 ATM이고, 애들 다 크고 다니 이혼하고 뭐 이런 커플들이 우리 친척들 중에만 세 커플이 넘습니다. 이혼하고 나서 친아빠는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다 트럭에 치여 돌아가시고. 그렇게 의미없는 가족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느니, 자식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남기지 않고 childless로 사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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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가 싱글일 때 읽었던 책인데, 일과 가정 사이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요즘도 calgary public library에서 ebook이나 audiobook으로 빌려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요. 크리스텐슨 교수가 많은 연구로 입증한 근거들을 가지고 가르친 내용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옳은 결정은 없을 지 모르지만, 중대한 상황에 놓여 나와 배우자에게 맞는 결정을 해야할 때는 서로 가지고 있는 원칙과 가치관을 재확인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