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없는 의견에 귀중한 답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함에 앞서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대중은 무척 똑똑합니다. 대부분의 독자들께서는 제 글이 상대집단에 대한 공세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황을 해석하고 진단하는데 있어 일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롱과 폄하를 통해 상대사상의 가치를 삭감시키려는 데 있다는 것도 아실 겁니다(조롱과 폄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토론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 장르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님의 답글을 보니 제가 과장을 너무 심하게 했나 싶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 걱정 마시라는 뜻에서 ‘안 해도 될 말’을 했습니다.
님이 하신 비슷한 진단이 나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1995 년 뉴 햄프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 팻 뷰캐넌이 선두 지지율을 올렸을 때일 겁니다. 1990 년 대 중반 반동의 약진은 그 직전까지의 장기불황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 반동의 약진으로 저 유명한 깅그리치 반동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20 년 대 이래 기도실에 줄곧 처박혀 있던 기독교 근본주의가 갑자기 speak out 하며 여기 저기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Bible 에 나오는 예언을 실현 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능력과 계시를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그 동안 처박혀 있던 기도실 에서 조차 쫒겨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판사판 죽기살기로 나섰던 것인데, 원래 세상사라는게 죽기살기로 하면 안 될 일도 되는 법이라 여기 저기 자기들 입맛에 맞는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기는 했습니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밥그릇이 안전할 때는 식민지 통치건 부패 정권이건 군사독재건 "권력은 하나님이 내는 것"이라며 쥐 죽은 듯이 자빠져 있다가 약간 진보적인 정권들이 등장하면서 사회분위기가 다원화되고 관용도가 높아지니까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한국의 보수 기독교를 보면 그 답이 보일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알카에다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들의 천적은 화해와 관용 그리고 평화 등의 인류보편적인 선한 가치들이라는 것입니다.
허꺼비의 유세장에 모여 "미국은 하나님이 세운 나라다" 라고 외치는 군중이나, 서울 시청앞에 모여 인공기를 불태우는 군중이나 '단순무식'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적은 무슬림도 아니요, 김정일 위원장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의 적은 바로 두 나라의 문화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주의자들이요, 에큐메니즘을 구현하려는 같은 기독교인들 이라는 것 입니다. 제 눈에는 그들이 Malcolm X 의 어린 시절 그의 집을 불지르고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KKK 단원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직업상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길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습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 알버타, 캐나다 판 바이블 벨트, 주민의 절대다수가 보수당을 지지하는 곳. 그런데 제가 느끼는 건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참을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인데 온화하고 합리적입니다. 자기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진심으로 믿고 일요일 마다 교회에 가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보면서 일반적인 보수 기독교인들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저 자신을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교육받은 사람들 일수록 그리고 젊은 사람들 일수록 종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종교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 곳곳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는 극단주의자들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주류입니다. 그들은 불관용과 불합리, 편견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의외로 대부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허꺼비고 라칭어고 로버트슨이고 플랭클린 그레이엄이고 또 제임스 답슨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기에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똑똑하다는 것입니다. 똑똑한 이 세상은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여, 그들이 또 밖에서 괴이한 언행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다시는 쫒겨나지 않을 그들만의 안전한 기도실을 마련해 주지 않을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답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추신: 지금까지 네 번 글을 올리셨는데, 주님강림님의 일관된 사상이 무엇인지 그 고리를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님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님의 글을 관찰하면서 님의 사상의 '일관된 매개'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무척 드믄 경운데 제가 틀리지 않다면 님은 답글 상대와 토론 주제에 따라 여러가지 입장을 배경삼아 논리를 전개하시는 것 같습니다. 속으로 무척 깊은 뜻을 가지신듯 합니다.
예를 들어 토마님에게 진화론의 확률적 허구를 물으시면서 창조과학회의 홈피를 링크하셨는데, 그건 주님강림님이 그들의 논리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토마님에게 반론을 편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그런 주장을 했는데 그러면 이런 반론에 당신이 한 번 재반론을 해보라는 악동취미를 가진 레프리의 심정으로 토론 게임을 하신 것인가요?
무례한 질문인줄은 알지만 궁금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