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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깨끗한가?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2197 작성일 2010-01-13 22:31 조회수 3562
아래 clipboard의 글을 보면서, 몇가지 책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히브리성서 (또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난해한 책이 레위기인데, 이 레위기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연구서가 나왔는데, 영국의 여성 사회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순수와 위험] (Purity and Danger)입니다. 더글라스의 이 책은 성서 연구는 아니고 사회구조를 인류학적으로 풀어 낸 것인데, 이후 사회학자들과 성서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douglas.gifPurity.jpg&usg=AFQjCNFvtCTRQLZmblBCatxCzjosZEmkyg 더글라스의 또 다른 중요한 책으로는 [자연상징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0203426622_bg.jpg&usg=AFQjCNFRcHG7KpK23SlVsGo6qitrzffsbg 더글라스는 이 책에서 네가지 형태의 사회를 분류하면서 각각의 사회가 갖는 상징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령, 군대라는 집단과 캘리포니아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만드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의 삶의 행태는 틀리다는 것이죠. 또는 한인들의 이민사회에서 교회의 기능도 이 더글라스의 책을 통해서 분석해 낼 수 있습니다. 책 값 때문에 아직 사보지는 않았지만, 더글라스의 레위기 연구서가 흥미를 끕니다. 별로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책 구입에 밀려서 미뤄둔 상태입니다. 0199244197.01.LZZZZZZZ.jpg 이러한 더글라스의 아이디어를 정치이념이나 체제에 적용시키고 발전시킨 책은 Barrington Moore, Jr의 [Moral Purity and Persecution in History)가 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교보문고에서 샀습니다. k6799.gif&usg=AFQjCNHTXN79fWMV9L7K1sOCmxx-tC9HUg 아래 글은 저희 교회 교우들과 나눈 내용인데, 좀 깁니다. 그러니까 이번 포스팅의 목적이 책 소객하는 것이니 아래 글은 읽어 보실 필요는 없지만, 메리 더글라스의 레위기에 대한 입장을 약간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보고 인용한다고 짜집기니 독창성이 없느니 하는 것은 어쩌면 섭섭한 이야깁니다. 이 세상에 순수한 아이디어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빚을 지고 삽니다. 남의 글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노동이기도 하지요. 아래 글을 성서해설로 보기 보다는 인간이해를 위한 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신학적인 것이니 저와 동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전에 여기서 언급했듯이 저는 진보적인 복음주의자입니다 -아프리카 올림 누가 더 깨끗한가? -아프리카 성경의 레위기는 구약 학자들의 골치거리였습니다. 레위기는 성경 중에서 가장 매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1장-15장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다양하게 시도를 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해석을 해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러 해석들 중에서 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 바로 위생 (hygiene)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레위기는 중동 사람들의 식생활과 깊이 연관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동의 더운 날씨에 돼지고기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안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종교적 의례가 위생과 관련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는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타난 식생활 (dietary)을 문자 그대로 지금도 따르는 기독교 종파도 있습니다. 실제로 레위기를 읽어 그대로 지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전염병 같은데 덜 걸릴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왜 비슷한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방인들은 돼지 고기를 먹었을까요? 꼭 위생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것을 위생을 위한 규례로만 보거나 그 반대로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 다 일리가 있기도 하고 일리가 없기도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 해석의 다양성에 종지부를 찍은 학자가 나타났는데, 구약 학자가 아닌 Mary Douglas라는 여성 인류학자에게서 나왔습니다. 메리 더글라스는 카톨릭 신자이자 영국 출신으로서 중앙 아프리카에서 fieldwork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녀의 책 [순수와 위험] (Purity and Danger)은 바로 인간이 왜 어떤 사물을 더럽다거나 깨끗하다고 할까? 즉 왜 사물을 분류할까 (classify) 하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깨끗하다” 또는 “더럽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더글라스는 이 책 한 권으로 구약 성서 학계에 획을 긋습니다. 그래서 이제 레위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더글라스를 모르는 구약성서 학자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총각이 사는 집에 가면 집이 온통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하고 발 냄새로 악취가 나며, 처녀가 사는 집에 가면 방이 잘 정돈되어 분위기가 깔끔합니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이 것은 여자와 남자가 깨끗하다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총각은 자기 집이 좀 너저분하기는 하지만, 돼지우리와 같지는 않고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친구의 자취 방에 가서 참치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거기에서 굵은 동태 뼈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연유를 물어 보았더니 지난 번에 동태 찌개를 끓여 먹었는데 냄비를 씻기 싫어서 그대로 거기에다 물만 더 부어 참치 찌개를 끓였다고 합니다. 제가 친한 형의 집에 가면 서재가 완전히 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방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견하는 한가지 사실은 그 많은 책이 빈틈없이 너무나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책은 내용별로 분류를 했지만, 일단 분류된 칸의 책은 크기에 따라 차례로 가지런히 그리고 빈틈없이 꽂혀 있습니다. 게다가 책을 펼치면 그냥 손으로 그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로 반듯하게 밑줄이 깔끔하게 그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 형을 좋아하지만 책 정돈하는 방법과 줄긋는 방법은 따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날까요? 깨끗함에 대한 차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책을 분류하는 취미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어질러진 것보다는 정돈이 잘되고 질서 잡힌 것을 분명히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 질서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보시면 세상이 혼돈에서 질서가 잡혀 가는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옛날 농부들이 경작된 땅을 질서로 보고 경작되지 않은 땅을 혼돈으로 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러한 혼돈이니 질서니 하는 것은 상대적이고 전체 체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신발 자체는 더럽지 않습니다. 이 신발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으면 더러운 것입니다. 음식이 식탁이 아닌 침대에 있으면 불쾌합니다. 옷이 옷장에 걸려 있지 않고 의자에 널려 있으면 지저분합니다. 왜 우리가 이런 것을 불결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가 사물을 분류하는 기대치와 다르게 나타날 때 일어납니다. 이런 불쾌감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날 때 일어납니다. 더 심하게는 우리가 사물을 분류하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현재의 모든 것을 판단해서, 그것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불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습성 (habitus; 프랑스 사회학자 Pierre Bourdieu)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우리에게 맞추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는 역할 (filtering mechanism, p. 37)을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분류나 습성에 맞지 않은 것을 다 비정상적이다라고 정죄하는데 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가 선거권이 없었는데,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다가 여성운동가들이 선거권 획득 운동을 할 때, 남성들이 이 제안을 쉽게 받아 들이지 않은 예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물을 분류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구약성서의 레위기와 신명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는 정결 의례라는 형식을 빌려서 이런 질서 또는 분류가 가장 정교하게 드러난 책입니다. 레위기를 읽어 보시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새 이름이나 짐승 이름이 정결법에 따라 매우 정교하게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장에 보면, 하나님이 정결하다고 하는 동물은 하늘, 땅, 바다 세 형태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 중에서 정결하다고 한 것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입니다. 야생동물은 정결한 동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질서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레위기에 따르면 야생동물은 하나님의 축복의 계약의 관계에 없고 인간이 기르는 가축은 인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축복의 계약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세부적으로 분류합니다. 다리가 네 개여야 하고,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육지 동물만 먹을 수 있고,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기준이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분류가 당시 사람들에겐 익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히 불변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자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팽귄이 알려졌다면 팽귄의 생김새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겐 거의 불결한 동물로 분류되었을 것입니다. 육지와 바다 양쪽에 지내면서 날개가 있는데 날지 못하고,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동물이지요. 레위기에 따른다면 손만 대도 하루 종일 부정타는 동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레위기나 신명기에 나오는 이런 규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두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우리 중에 정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 규례는 바로 인간의 질서를 향한 소망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벽을 향한 추구입니다. 이런 질서를 바로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질서를 만드신 분이고, 우리는 그 질서 속에서 살 때, 복된 삶을 누립니다. 구약의 기본 성격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계약관계를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이런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레위기의 수많은 규례를 지금 그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 다시 말하자면, 완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서를 교회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복의 실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내어 주셨습니다. 그 원리는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스스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틴 루터가 발견한 율법과 복음의 문제입니다. 법으로는 우리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복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justification).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새로운 질서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완벽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 완벽함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레위기의 계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새로운 계명,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질서입니다. 새로운 율법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우리가 추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 축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완벽함의 추구 또는 순수의 추구는 우리의 분류에 맞지 않은 타인을 더럽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리 하에 그들을 포용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 날 병을 고치시면서, 즉 율법을 어기시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되물어셨던 것입니다 (눅13:11-17).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원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는 바로 율법과 관습을 어긴 사람들, 불결하다고 정죄당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말을 건넨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더불어 사는 정신입니다. 관용의 정신입니다. 나의 것만이 최고가 아닌 남의 것도 가치가 있다는 다원주의 정신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런 정신을 잃는다면 교회는 존재가치가 없이 사라져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날 병자를 고친 일을 망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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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10-01-13 23:2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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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아프리카님의 교회는 참 학구적일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자는 왜 깨끗하고 남자는 왜 지저분한지, 그리고 인간은 왜 불쾌감을 갖는지가 진화적 의미에서 \"적응\"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요.) 즉 깨끗한건 남자보다 여자한테 더 중요했고, 불쾌감을 갖는것도 우리 인류에게 중요했던거지요 (중요했단 의미는 개체의 생존과 재생산에서 중요했다는... 그레서 유전자의 프로파게이션에 도움이 됐다 그말이고, 딴뜻은 없습니다.)

또 말이 샜습니다. 요즘 제가 예수의 인생을 더 알아보구 싶은 맘이 들었었는데... 그게 참 쉽진 않더군요. 제가 워낙 무식했던데다가, 관련책들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재미를 못붙이겠더라구요. 아프리카님이 읽기 어려울거라고 경고햇던 그책은 용기를 가지고 사긴 샀는데 몇칠만에... \"제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구나\" 그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한건 아니구 나중에 좀 덜 바빠지면 정신차리고 다시 함 읽어볼라구요.)

덧글을 달려고 로그인한 이유는 사실 위의 말들을 적을라고 한건 아니고. \"복음주의\"가 정확히 몬지 궁금해서 여쭈어 볼라구 그랬습니다. 아프리카님이 \"진보적인\"건 예전에 눈치챘는데, \"복음주의자\"라고 하셔서 \"복음주의\"의 정의는 무었인가 궁금해 져서요. 구글을 했더니, 그 의미가 사람마다 다 갖지 않다고 그래서, 특히 아프리카님의 정의를 알고 싶었습니다. (안바쁘시면...)

존밤되셔요. 토마 올림

내사랑아프리카  |  2010-01-13 23:4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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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의 취지는 하이진의 문제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구성물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회적 은유나 상징이 인간의 \"몸\"의 문화적 사회적 연장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사회를 이해하는데 진화론적 틀을 갖고 연구하는 분들을 아직 저는 잘 몰라서 현재로선 사회구조나 기능론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종교학에서는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분석에 대해 과민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진화론적으로 종교를 분석한 초창기 학자들이 지금은 별로 인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예수 문제는 워낙 방대한 일인데, 종교 개론에 대한 책을 출발점으로 서서히 발전시키시면 좋을듯 합니다.

복음주의 (Evangelicalism)은 현재 근본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복음주의는 점 더 광의적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패러다임인 창조-타락-구원이 여전히 저의 신앙의 핵심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세계 종교 (World Religions)에 관련 책을 보시면, 각 종교의 핵심적인 틀과 구조를 설명하는데, 기독교 항목을 보시면 매우 전통적인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저의 기독교 신앙은 이런 전통적인 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그것이 제 삶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구태여 \"복음주의\"라는 틀에 담아놓는 것은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과 만나서 대화할 때, 제 마음 속에 적대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또 보수복음주의자들도 저와 대화를 하면 서로 통하는 면이 많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그 끈을 연결시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토마  |  2010-01-14 00:1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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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저두 복음주의는 조지 부쉬같은 사람한테 쓰는 건지 알고 여쭈어 본거였습니다.

하이진에 대한 아프리카님의 취지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위생, 불쾌감이 생물학적인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땜에 인간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것은 자연선택의 영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져.

종교와 진화에 대해서는... 왜 인간이 미신/초자연적 현상을 믿는 선천적 경향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라면, 그것은 역시 생물학적인 문제고 진화론적으로 당연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화론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생물체를 이해할려고 하는것입니다.

물론 종교사회현상으로서 (예 왜 몰몬교가 그렇게 번성하는가?) 진화론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선택을 \"유추\"로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얘기하는 진화하고는 전혀 다른 얘기지요. 아프리카님은 후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전자를 포함한것이라면, \"생물학적\"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를 다른 많은 과학자들과 달리 하시는듯 보입니다.

에구 또 12가 넘었습니다.

clipboard  |  2010-01-14 00:3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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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핵심이 후반부에 있어서 따라잡는데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보적 복음주의자인 아프리카님의 의견이니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알겠구요. 레위기 율법과 그 시대에 접근하는 방법과 시각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글이었습니다.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일관된 축복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유대경전과 기독교경전을 함께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님의 그 시대 나름대로의 ‘질서를 위한 소망’ 으로서의 레위기 율법에 대한 설명은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아프리카 님의 말씀대로 현대교회의 사명은 레위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선포한 새로운 사명을 지키는 것임을 부정할 사람 또한 근본주의자들외에는 별로 많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원리’ 즉 하나님의 질서추구의 원리가 레위기 시대와 예수 이후 시대에 함께 적용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따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라는 것을 창조하고 운영해 온 각 시대의 계급주체가 누구였으며 그 사상형성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소외 당해 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또한 빼 놀을 수가 없습니다.

옛 시대와 새 시대가 사상적 소통조차 불가능하게 완전히 단절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시대는 그것이 최선이었듯이 이 시대에는 새로운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명제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과거시대는 현대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상호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영향인 셈이고 그런 영향이란 주로 반동적인 사상을 가진 이념가들이나 그들과 결탁한 권력자들에 의해 발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사례를 읽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가 80 대 노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인용하면서 이런 말을 한 걸 읽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국민이었다\'는 것의 의미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을 세상으로 알고 살았던 세대를 빛 속에서 태어나 빛을 세상으로 알고 사는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 아버지 세대의 아픔과 눈물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가슴이 막막해왔다.”

이 칼럼은 이어서 그 노인의 말을 인용해 “6•25전쟁 중에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백척간두에서 지켜낸 국민적 영웅을 일본군 하급장교였다는 이유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지은 것은 마치 그가 한때 로마의 관리였다는 전력을 들어 저 위대한 성자인 바울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른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군요.

이 칼럼의 목적은 백선엽을 친일파로 분류한 친일인명사전을 공격하기 위한 것 이지만 두 시대의 기본가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교묘한 상대론에 설득 당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논리에서 레위기 율법시대와 예수사상에서 각각 나타나는 하나님의 질서란 인간존엄과 관련해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즉 저는 하나님의 질서 완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두 시대가 갖는 인간존엄에 대한 사상적 차이를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수사상이 지적하는 율법시대의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소외돼 있다는 것이고 인간이 소외된 그 자리에 그 하나님의 질서의 수호자들이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시대가 현대에 가까울수록 반드시 진보적이고 인간적이라는 법은 없지만 저는 항상 다양성과 평화적 공존이라는, 즉 현재로서는 최선의 가치를 준거로 동시대와 과거시대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레위기 율법의 시대가 어둠의 시대였다면 그 어둠의 시대 나름의 완벽을 추구하는 사상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 어둠의 시대를 평가하는 기준은 내가 살고 있는 오늘에 둘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올리신 글을 보는 바람에 문장에 제대로 정리나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좀 보태려다 본의 아니게 딴지를 거는 말을 늘어놓은 것 같아 미안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0-01-14 00:3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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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토론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몇 말씀 첨언합니다. 교회가 학구적인 것은 아니고, 저는 신학이나 종교학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교회나 사회 현장에서 활동할 때, 최선을 다해 그 배운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회피에 기초한 믿음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깊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이진의 문제는 생물학적인 것일 수 있겠지만, 저는 좀 더 문화적인 접근을 취하는 편입니다. 저는 현 원시 부족사회나 하이텍에 익숙한 현대 문명의 도시인이나 하이진의 본질적 이해는 차이가 나질 않는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종교 진화론에 대한 연구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종교학계에서는 종교 진화론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페티쉬즘=>애니미즘=>토테미즘=>다신론=>유일신론 등의 틀로 종교의 발전을 연구하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거의 폐기된 이론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것인데, 이른바 가장 진보적인 캐나다 연합교회에서조차 healing touch니 하여, 주술적인 종교적 연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료는 대략 모으고 그런 모임에도 가봤는데 아직 이론적 발전은 못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흥행하는 Neo-Paganism이나 New Age movements의 주요 멤버들은 거의 대졸 이상인데, 이들에게서 주술적인 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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