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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열개
작성자 어진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43 작성일 2008-05-16 10:20 조회수 1113
사과 열개

오늘은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아들 셋 중에 큰 아들 진이는 다른 아들들과 아주 다릅니다. 다른 아들 둘은 저와 비슷한데가 조금은 있는데, 진이는 저와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생긴 것도 동생들은 저를 많이 닮았는데, 진이는 외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진이가 사춘기에 저와 다툴 때는 순진이가 방패막이로 나서서 저를 아주 힘들게 했습니다. 아주 손발이 척척 잘 맞는 연합군이었습니다. 진이는 Hair Style, 옷입는 것, 공부하는 것 등등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가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는 데, 운동을 잘 해서 축구장이나 Hockey Arena에서 저의 목에 힘이 들어가게 해 주었습니다.

진이는 고등학교 때 Part-time을 해서 쥐꼬리만 한 돈을 벌면 아주 비싼 명품(?)만 사입었고, 그 옷의 가격을 본 저는 뒤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리곤 그 비싼 옷을 얼마 입지도 않고 동생들에게 주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 덕에 동생들은 신나했습니다. 제가 한 실수 중에 아주 큰 실수 하나는 진이가 대학 2학년 때, 세 아들을 데리고 Auto Show에 간 것이었습니다. 진이는 Auto Show에서 멋진 Sport car를 보고 나서 하는 말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 Dark Suit에 Sunglasses를 끼고, 까만 가방을 들고 Sport Car를 운전할꺼야”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놈아, 그렇게 하고 싶으면  열심이 공부나 해라” 했습니다.

진이의 대학교 때 성적은 중간을 겨우 넘을 정도였습니다. 축구를 하고 놀기에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꽤 좋은 직장을 잡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을 하고 노는데 빠져있었지만 대인관계가 좋았고 인맥(?)이 좋았나 봅니다. 자기말로 Interview하는 것 하나는 자신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Canada에서는 학교 성적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나 과외활동이 아주 중요합니다. 새 직장에서 석달 일을 하더니, 자동차를 사겠다고 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차를 살건데?”
“Auto Show에서 봐둔 차가 있어요”
“무슨 차인데?”
“Honda Prelude!”
“Prelude 말고 Accord는 어때?”
“아빠, 그건 아저씨가 타는 차예요”

진이는 Prelude가 자기의 Dream Car라고 했습니다. 저는 Sport Car가 아닌 실용적인 Accord를 권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Sport Car는 값도 비싸고, 보험료도 비싸고, 도난의 위험도 크고, Two door는 불편하고 등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여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진이는 한술 더 떠서 Prelude에다 이것 저것 Option을 붙이고 나니까, 차값은 입이 벌어지게 비싸졌습니다.

“진아, 자동차는 너를 “A지점”에서 “B지점” 까지 안전하게만 가게 해주면 되는거야!”
“아빠, 이건 제 차예요. 아빠 차가 아니예요. 제가 알아서 해요”
“알아…… 아빠는 네가 좀 더 실용적인 차를 샀으면 좋겠어”
아마 제 얼굴이 붉어 지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순진이가 제 옷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보, 그만 해! 그만~하면 됐어!”
“아니~ ……”
“알아, 당신이 무슨 말을 할려는지”
“……”
“진이가 당신더러 차값을 내라는 게 아니잖아?”
“나도 내 아들이 아니면 아무 소리 안해. 내 아들이니까 그러는거야!”
“여보, 그 차가 진이의 Dream Car라고 하잖아”
“……”
“진이가 그렇게 비싼 차를 굴릴 수 있다는 걸 감사하자구!”

“감사? 감사 좋아하고 있네! 에구~ 그 에미에 그 아들이로구나!” 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 오려는 것을 꾸~욱 눌려 참았습니다. 저는 사실 진이가 차를 사기 전에는 Spoiler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에 Skirt를 입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차 뒤에 Spoiler를 달고 치마를 입히고, 멀쩡한 Back Lights 모두 떼내고 Custom made Back lights를 거금(?)을 주고 달았습니다. 열은 뻗쳤지만, 막상 번쩍번쩍하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진이가 멋져 보이긴 했습니다.

그 때 오래 전에 읽은 사과 열개의 질문이 생각 났습니다.
“인생은 사과를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주 좋은 사과부터 시작해서 아주 나쁜 사과까지 열개가 있습니다. 열개의 사과를 모두 먹어야 한다는 가정하에 사과를 먹는다면 어떤 사과부터 먹겠습니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쁜 것부터 먹기 시작해서 좋은 것은 아꼈다가 나중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었으니까요! 반면에 서양인들은 제일 좋은 것부터 먹는답니다. 이것이 인생을 사는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아마 저도 나쁜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민와 고생해서 번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쪼개고 또 쪼개서 저축을 했고, 남들이 보며 웃었던 Hyundai Pony를 타면서 아이들을 길렸고, 꽁쳐 놓았던 돈을 털어서 작은 집을 샀고, 그 걸 팔아서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겼고, 순진이는 세탁소에서 때묻은 옷을 가지고 씨름을 했고, 이젠 아들들이 대학공부를 끝냈고, 모두 결혼했습다. 그렇다면 열개의 사과 중에 일곱 개를 먹은 셈입다. 이젠 좋은 사과(?)가 세개가 남았으니, 그걸 먹으면서 삶을 즐겨야 할 때인가? ㅎㅎㅎ

어느 날, 제가 진이한테 같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어떤 사과부터 먹을래?”
“제일 좋은 것부터!”
“그럼 나중에 벌레먹은 사과를 먹을꺼야?”
“아빠, 내 사과는 열개가 모두 좋은 것 뿐이예요! ㅎㅎㅎ”
“뭐라구~?”
“아빠, 왜 사과 열개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
“아빠, 열개가 모두 좋은 것이라구 생각하세요”
“??????”

진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왜 사과 열개가 모두 좋은 것만 있다”라고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생각의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이는 번쩍번쩍하는 Sport car를 탔고, 저는 돌돌거리는 Pony에 다섯 명의 가족을 태우고 다녔나봅니다. 부모들은 100불, 150불을 손에 들고 이민와서 썩은 사과, 벌레먹는 사과를 먹으면서 키워 놓았더니, 아들 놈(?)은 혼자서 큰 것처럼 꺼떡거리면서 제일 좋은 사과부터 먹고 있었습니다. 자식 입에 좋고 맛있는 사과가 들어가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습니까?

진이는 3년 후에 Prelude를 팔면서 약 4000불을 손해봤습니다. Option으로 넣었던 spoiler, Skirt, Back lights, alarm system은 차값으로 쳐주지도 않았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또 Sports car를 살꺼야?” 했더니
“아니요. Four door 짜리 Accord” 하면서 웃었습니다.
자기 사과는 좋은 것만 있다고 하더니, 썩은 사과를 하나 맛본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사람을 바꾸어 놓는가 봅니다. 이젠 진이도 많이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이민의 삶은 나쁜 사과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벌레먹은 사과 중에서 벌레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으면, 그 어떤 사과보다도 더 맛있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사과가 벌레먹었다고 불평하면서 집어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민의 삶 속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딛고 일어셨을 때의 기쁨은 벌레먹은 사과라고 불평을 하면서 집어던질려고 하다가, 벌레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맛본 사과의 맛이 그 어떤 사과보다도 더 맛있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바라기는 저의 아들들이 먹어야 하는 사과 열개가 모두 맛있고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벌레먹은 사과를 먹게 될 때, 불평하지 말고 벌레먹은 사과가 더 달고 맛있는 것을 발견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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