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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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랜드캐년 가는 날.
근데 문제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몸살이 난 거 같다. 다행히 열은 없는 거 같다.
몸살같은 거 안 나는 체질인데,, 이상하다.
여행지에서 아프니까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어쨌든,,
오늘은 자동차여행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왕복 + 이동거리 1 천 km에 달하는 여정을 혼자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이머전시 플랜 B,,,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브런치버페에 갔다. (라스베가스 사전에는 브렉퍼스트라는 말이 없다)
오믈렛 한 개, 우크레인 소시지 한 개, 야채죽 한 그릇, 초밥 세 개, 진저피클 10 그램, 모듬과일 반접시, 슈크림빵 한 개, 요구르트 한 병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서 그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일정을 보니 점심식사는 두 시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샀다. 130 그램짜리 견과류 봉투와 바나나 한 개를 집었을 뿐 인데 5 불이나 나왔다.
가고오는 내내 잠을 잘 생각을 하고 투어버스에 올랐다.
더블덱 버스 2 층에 올라가 맨 앞에서 두 번 째 자리 두 개를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이어폰에서는 Celtic 음악 Lonely Traveler 가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전기사 제프에게 '나는 환자니까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흰머리가 많은 제프는 동유럽 엑센트가 강하게 배어있는 영어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더니, 오늘은 화요일이라 자리가 좀 비어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환자가 탑승했다는 소문이 투어버스 안에 빠르게 퍼졌다. 멋지게 나이먹은 티가 나는 노부인이 다가와서 어디가 어떻게 아프나고 물어보았다. 그 분은 자기가 은퇴한 RN 이라고 소개했다.
열도 안 나고 컨제스천도 없는데 자꾸 마른기침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도 웬만하면 타이레놀이나 코프시럽같은 건 안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은발 노부인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티백을 몇 개 가져다 주었다. 진저그린티였다.
싸우스림 첫 번 째 포인트에서 엉뚱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행 중 두 명이 길을 잃어먹었는지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왜 출발 안 하나’ 궁금해하고 있는데 운전기사 제프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제이. 당신 친구들 왜 안 와요?”
“내 친구들이라니? 누구?”
“어, 그 사람들 같은 일행 아니었어요? 아까 같이 다녔잖아요......”
그제서야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났다.
“뉴욕에서 왔다는 그 아가씨들이 아직 안 온 거예요?”
한 명은 일본 도쿄 출신, 이름은 아유미(마유미가 아니고), 또 한 명은 카쟉스탄 출신인데 이름은 모른다.
이 날 아침 후버댐에 도착했을 때 사진 찍어 달래서 사진 몇 장 찍어줬다. 공교롭게도 카메라 기종(나이큰 D5000)이 내꺼와 같아 버벅대지 않고 금방 몇 장 찍어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행이 있어서 함께 바쁘게 몰려다니는데, 나만 따로 떨어져서 양지바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니까 그런 부탁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운전기사 제프와 함께 소형차 주차장까지 내려가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거기서 어리버리하고 계신 두 분을 찾아냈다.
반가움과 짜증이 함께 몰려왔다. 근데 반가운 건 그 쪽이 더 한 모양이었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 처럼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마주 웃어주면 좋았을텐데, 아직 몸이 좀 불편해서 그랬는지 미소가 나오지 않았다.
"빨리와요. 10 시 쇼 예약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던데,,"
딱딱한 표정으로 엄청 부담주는 말까지 해서 그런지 금새 시무룩헤져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버스에 돌아오자 승객들이 미소를 보내며 박수를 쳐준다.
"웰컴백"
75 명의 시간을 40 분 씩 낭비하게 만든 두 여성동무는 의외의 환영무드에 감격을 했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쏘리'를 연발한다.
승객들 표정은,, '고의가 아니었으니까 괜찮아~' , 뭐 이런 종류의 관용이었다고나 할까?
몽고메리 (앨리바마주)에서 왔다는 미국인 노부부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먹은 키프트샵.
진저그린티백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했으니 한사코 자기들이 계산하고야 말았다.
참고로 몽고메리는 '로자파크 사건'으로 유명한 도시다.
라스베가스 도착 후, 헤어지면서도 '몸조리 잘 하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 분들은 싸르니아보다 먼저 MGM 그랜드호텔에서 내렸다.
아유미: “우리는 소호에 살아요. 미드타운 42 번가 에서 근무하구요.”
미드타운 42 번가는 맨하튼 브로드웨이 근처를 의미하는 말이다.
일본계와 카쟉스탄계, 보기 좋아 보이는 친구 한 쌍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두 시간이나 지체한 우리 투어버스는 거의 저녁 여섯 시가 가까워져서야 그랜드캐년을 출발했다.
운전기사 제프가 승객들의 국적을 소개했는데, 역시 다양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 홀랜드(네델란드), 중국, 말레이지아, 스위스...... 등등 기억도 다 나지 않는다.
우리 버스는 밤하늘에 유난히 별이 많은 모하비사막을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들의 베이스캠프,,,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내가 내려야 할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가방을 들고 로어덱으로 내려갔다.
“몸조리 잘해요, 제이” 운전기사 제프가 문을 열어주며 인사했다.
"수고했어요. 제프" 악수를 청하며 10 불 짜리 지폐 한 장을 제프의 손 위에 얹어주었다.
근무시간이 열 네 시간이 넘는 거 같은데,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친절하고 참을성있게 손님들을 캐어해 준 모범기사님이었다.
“몸조리 잘해요, 제이” 누가 뒤에서 똑 같은 인사를 하길래 돌아보니 길을 잃었던 어린 뉴요커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표준덕담 하나 골라서 작별인사도 건넸다.
“앞으로 잘 해요,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꼭 성공해요”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기억에 남을 자잘한 감동거리가 많았던 여행이기도 했다.
그룹투어를 하면 불편한 점도 많지만, 인연과 관련된 추억이 남는 경우가 있다.
밤 열 한 시,, 호텔로 바로 들어가긴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스트라토스피어타워에 올라가 보자.
야외덱으로 나가서 바람을 쏘이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이 세상에 그랜드캐년처럼 사진빨이 안 받는 곳도 없을 것이다.
직접 가서 보는 수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