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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놀라운 기사가 떴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이 탈세혐의로 국세청의 긴급요청에 의해 출국금지된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놀라운 기사냐고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분명히 놀라운 기사다. 조석래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단에 그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와대가 깜깜하게 몰랐던 일을 국세청만 몰래 알고 느닷없이 뒤통수를 쳤다는 이야기다. 베트남 방문은 7 일 토요일 예정되어 있었는데 출국금지는 그 이틀 전인 5 일 내려졌다. 대한민국 보수정치집단과 그 권력핵심부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헤프님인지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 뉴스를 접하고 즉시 지난 달 8 월 충순 발생했던 금강산 실무회담 일정 뒤집기 사건이 떠 올랐다. 며칠 전 내가 올렸던 글 <이석기 프로젝트> 에서 밝혔듯이 그 사건은 권력내부에 노선과 관련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호였다.
이번 사건은 일종의 반격처럼 보인다. 즉, 금강산 실무회담 헤프님이 일어난 며칠 즈음에 권력 내부에서 쿠데타에 준하는 핵심세력 교체가 일어났다면, 이번 사건은 그 사건의 일련선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간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이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숨돌릴 사이도 없이 바로 그 날,
황당한 기사가 또 나왔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는 보도였다. 채동욱 총장의 걸프랜드와 숨겨놓은 아이는 미국에 있다는 소리도 덧붙여졌다. 채동욱 총장은 즉시 반박했다.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짤막한 해명과 함께 ‘지금 어떤 세력이 검찰을 흔들고 있다’는 미묘한 소리도 했다.
채동욱 총장이 거론한 ‘검찰을 흔들고 있는 음해세력’이란 두 말할 것도 없이 국정원과 청와대의 극우강경파다.
이쯤되면 박근혜 정권 내부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만한 사람은 모두 짐작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국정원과 검찰의 싸움같아 보이지만, 크게보면 박근혜 정부내에서 그동안 경제민주화와 대북혐상을 추진해 온 온건주류를 밀어내기 위한 극우-공안 세력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 칼바람의 배후에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새침하게 앉아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이석기 사건은 극우-공안 세력이 우선 검찰을 비롯한 정권 내부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한 비장의 히든카드로 활용됐다. 부정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공안세력에게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검찰은 일격을 맞고 휘청거렸다.
기고만장해진 국정원은 어제 검찰총장을 향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요구를 했다. 진보당 압수수색을 방해한 20 여 명을 너희들이 수사하라고 대검찰창에 공문을 보낸 것이다. 그것은 공문이라기보다 조롱이 담긴 협박에 가까웠다. 자기들이 '전쟁' 에서 이겼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석기 사건은 처음부터 국정원이 극우-공안세력의 사주를 받아 정권 내부의 적을 타격하기 위해 기획한 사건인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석기는 이석기 대로 천추에 씻을 수 없는 바보짓을 한 게 사실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이석기 한 명이 조갑제 백 명의 몫을 해냈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말인즉슨 사실이다. 녹취록 전체내용이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의 형태로 공개되면 문제의 발언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판명이 될테지만,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앵무새처럼 공안탄압 주장만 되뇌이고 있는 진보진영 일부를 보면 한심하고 답답해 보인다.
버릴 패는 빨리 버릴 수록 좋다.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그런 건 나중에 따져도 된다. 진담이었다면 이미 버린 패니 책임 질 일 없을테고 농담이었다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편집조작한 전과자들이 재범을 저지른 것이니 두고두고 그들의 짐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석기 사건과 박근혜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을 하나의 사건의 각각의 부분으로 파악하되, 하루라도 빨리 철저하게 분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 더 중요한 고리인지, 어느 집단이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위력적인 집단인지를 차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서적 여건을 빨리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잠깐씩 잊고 있는 게 잊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23 세 때부터 무려 38 년 간 조직의 정상권에서 정치를 해 온 인물이다. 1979 년 부터 1998 년까지 무려 19 년간 와신상담하는 기간도 가졌다. 자기 아버지조차 경험하지 못한 경험들을 골고루 갖춘 정치의 달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내년이면 그가 자기 아버지가 죽을 때 나이인 만 62 세가 된다. 그가 모자라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모자라다는거지, 마케아벨리적 감각과 실천력이 모자라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에 대항했던 시기나 ‘순진한’ 이병박 정권을 비판하던 감각으로 박근혜 정권에 맞서려 했다가는 진보진영이 자멸하고 말 것이라는 게 싸르니아의 불길한 예감이다.
이번 사건을 공안탄압으로 밖에 볼 시야가 없는 고루한 인물들은 제 2 선으로 후퇴하고, 새로 개편되고 있는 중인 박근혜 정권의 권력구조를 파악하면서 이에 걸맞는 어젠다를 구사할 수 있는 '고수' 들이 앞에 나서주길 바란다.
2013. 9. 8 13:45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