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 월 29 일 한국경제신문에 재미있는 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박정희 시대의 오독(誤讀).
한국경제신문은 대표적인 우파매체다. 칼럼집필자 역시 우파진영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극우논객이다.
이 칼럼의 논지는 간단하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폄훼하려는 진영이나, 반대로 성공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데만 열을 올리는 우파진영이나, 둘 다 모두 그 시대의 본질을 잘못 읽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극우논객은 이렇게 솔직한 고해성사를 했다.
“……(박정희를 무작정 미화하는 사람들은) 새벽마다 확성기를 통해 귀가 따갑도록 새마을 노래를 틀어대는 것이 지금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국가주의적, 정부중심적, 관료주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이 칼럼은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작성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같은 보수진영안에 있으면서 말도 안되는 고집과 주장으로 망신을 떨고 있는 아첨꾼과 무식꾼들을 구분해냄으로써 ‘박정희 개발독재’를 그야말로 완전한 난공불락의 이론으로 재확립하겠다는 의도로 작성한 글임에 분명하다.
박정희 개발독재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세력은 그 이론화 과정에 있어서 눈부신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지지부진하다. 이대로 가다간 완패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이념적 경도에서 한발짝 벗어나 반대편의 논리에 일단 주목해보자.
민족문제연구소의‘백년전쟁-프레이져보고서’ 처럼 사실관계 자체를 부정하려다 황당한 헛발질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동이 가져온 결과’ 만을 이유로 그 행동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 행동에 대해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건 역사논쟁이라기보다는 철학논쟁이다.
쉽게 말하면, 히틀러의 개발독재가 1 차 대전 이후 피폐해 진 독일 경제를 재부흥시켰다고해서 오늘의 독일국민들이 히틀러의 독재가 함유하고 있는 철학과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기왕에 이야기 나왔으니 좀 따져보기로 하자.
박정희는 무슨 생각을 가진 인간이었을까? 도대체 그 시대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마커스 보그와 도미닉 크로싼이 함께 쓴 The First Christmas 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사건에는 전주곡이 있다”
박정희 개발독재는 1972년 10 월 17 일 선포된 유신부터 시작됐다. (참고로 제 1 차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은 1962 년 부터 시작됐다)
유신선포 두 달 전인 그 해 8 월 3 일, 엄청나게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날 밤인 8 월 2 일 자정 무렵 소집된 긴급임시국무회의에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조치’가 의결된 것이다.
흔히 ‘사채동결령’ 또는 8.3 조치로 알려진 이 긴급조치야말로 앞으로 두 달 후 도래할 유신독재의 본질적 성격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자 신호탄이었다. (싸르니아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8.3 조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기업을 운영했던 선친께서 이 조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친은 이 조치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이다)
8.3 조치로 예고된 유신독재의 목적은 분명했다. 폭력적이고 강제적으로 국내자본을 끌어모아 어디엔가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박정희는 이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박정희는 이 돈으로 도박을 했다.
박정희라는 인간의 인생역정을 보면 도박과 승부수의 연속이라는 점이 금방 드러난다. 너무나도 막강해 보이는 제국 일본의 군인으로 출세해보고자 던진 승부수가 신경군관학교 입학이었다면, 8.15 종전 이후 남조선노동당 입당 역시 같은 맥락의 도박이었다. 아마 그는 해방정국의 남한에서 좌익의 최종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도박과 승부수는 그 결과의 영향이 박정희 개인 자신에게로 국한해서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세 번 째 도박인 5.16 과 그의 마지막 도박인 1972 년 여름 이후의 개발독재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개인이 아닌 국가 전체의 운명을 판돈으로 건 위험한 대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약탈과 시장개척을 통해 본원적 자본을 축적해 나갔다면 유신시대 개발독재는 국내의 저임금 노동자군이라는 절대다수 국민을 내부 식민지로 삼아 시장개척을 위한 본원적 자본과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우파논객들 조차도 좀 정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인정한다. 즉, 당시 강제동원된 자본으로 철강-중공업-석유화학, 이 세가지 대규모 인더스트리 인프라를 기반으로 조선과 자동차산업까지를 박정희가 구상했을 때, 박정희 스스로도 이것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전혀 가지지 않았을거라고 판단한다.
5 대 heavy industries 투자계획에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반대했다. 재벌들 역시 뒤로 주춤거리고 물러났다. 미국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는 자명했다.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박정희의 위험한 도박이 실패할 경우 남한이 결국 기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공산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정희는 도박꾼의 근성으로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제왕적 권력을 동원하여 전부가 아니면 전무를 택하는 사무라이의 정신으로 게임처럼 밀어부쳤다. 그가 제일 존경한다는 사이고 다카모리 역시 도박과 승부수에 생명 걸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치유신을 주도했고 세이난 전쟁에서 실패하자 자결했다.
이런 종류의 인간형은 대체로 개인적인 치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박정희의 생각과 행동을 작동했던 동력은 무언가에 전부를 거는 승부사 기질이었을 것이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집에만 오면 부인과 아이들을 개패듯 패던 노름꾼 아버지는 어느 날 운 좋게도 노름판에서 돈을 많이 따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 갑자기 죽어버렸다.
유신시대 개발독재가 경제부문에서 가져 온 소정의 성과는 어느 누구도 예측을 못한 지극히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성공사례다. 이건 싸르니아의 말도 아니고 진보진영 사람들이 하는 말도 아니다. 개중 식견이 있는 보수우파논객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좌든 우든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괜히 개코도 모르면서 좌와 우의 언저리에 붙어 의미없는 아부성 찬양이나 역시 무의미한 비난만 남발하는 부류를 제외하면 그렇다는거다.
그렇다면 개발독재집단의 지극히 위험한 도박이 비교적 좋은 결과를 가져와, 역사적 산물로서 오늘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민주적 가치가 지배하는 21 세기 오늘에 와서 그 시대의 개발독재자를 은인이라며 찬양하는 것도 더 없이 바보같은 짓이다.
서구 나라 그 누구도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도래하게 한 중세와 근대의 식민지 침략사를 찬양하지 않고, 미국의 그 누구도 19 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노예노동력 약탈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비록 과거 그 비극의 역사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부당했던 행위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늘의 가치로 추앙하자고 주장하는 얼빠진 인간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짓은,,,,,,정말 멍충이같은 짓이다. 단세포 해골구조를 가진 사람만이 그런 단순한 주장을 한다.
근데 얼마 전 “한국은 독재해야 돼, 박정희 대통령같은 분이 다시 나와야 돼” 라며, 어떤 목사라는 작자가 이 멍충이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고 다시 옛날 이야기를 하게됐다.
이제,,,,,,아주 짜증이난다.
2012.11.2 17:30 sarnia (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