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여, 너는 얼마나 거룩한가.
연탄재와 먼지와 지친 얼굴들의 행진 속에서
사랑없이 바라보는 거리여,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성당과 공원과 시장길을 가득 메우며
몰려나와 다시 흩어지는
물고기 같이 푸른 젊은 아이들이
그들이 남긴 일상의 부피가
계절을 잃은 햇빛이 되어
쏟아질 때.
--- 노혜경의 '상뚜스'
* 상뚜스: [거룩하시다]라는 뜻의 라틴어
盧惠京
1991년 '현대시사상'에 '상뚜스'외 4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부산언론운동시민연합 부의장, 부산민예총 정책위원,
부산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금요일의 시인들 동인
시집으로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1995,
<뜯어먹기 좋은 빵> 1999,
<캣츠 아이> 2006 等을 펴냈으며,
前 열음사 외국문학 편집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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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앞에서 가난한 사랑은 무슨 의미일까. 먹을 것 밖에는 기쁨이 없는 이 우울한 시대에, 찬란하게 쏟아지는 저 햇빛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은 있는 자들에겐 흥겨웁지만, 삶의 차가운 흔적은 언제나 녹지 않는다. 지지리도 못난,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가혹한 삶, 저 아무 뜻없는 햇빛만이 꿈 같은 사랑보다 오직 거룩하다. 계절은 바뀌고, 또 쓸쓸하게 바뀌고, 사람들은 각자 무언 가를 바라고 그렇게들 살아가지만... - 희선,
<사족>
그녀의 첫 시집인『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감명 깊게 읽었고.
어쩌면. 빈사의 늪에 빠진 한국의 시단에 <영양제 링거> 같은
시집이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편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감도 있다.
또한, 그녀가 택했던 정치적 행보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故 노통을 위해서 노사모를 했었던, 노흠모를 했었던,
그건 그녀의 정치적 소신이니까)
문학의 소산所産은 어디까지나 그 자체로 평가 받아야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치적 . 사회적 시류時流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눈치와 잔머리를
엄청난 속도로 굴렸던 일부 문학 비평가들과 대학교수들, 그리고
글쟁이 문인들은 손들고 한참 반성해야 할 것임을.
늘, 말하지만... 문학 안에서 시는 시일 뿐인 것이다.
각설하고.
위의 시에서 말해지는,
<무관심>은 <비非관심>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데.
쓰잘데 없는 관심을 비운 자리에 비로소, 새로운 관심이 자리한다.
왜곡되지 않은 삶의 실상實相을 만나게 된다.
기름진 돈과 안락한 삶을 위한 하루살이에 급급한, 우리들의 모습.
(아니라 할 者, 누가 있을까 --- 또, 아는가? 이런 말을 하면
자기만은 절대로 아니라고 극구 우기는 者는 꼭 있기에)
어쨌거나, 우기던 안 우기던 간에...
그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참담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텅 빈 깨끗한 마음으로 지켜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누구보다도, 이런 말을 주절대는 나 부터가)
Prel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