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 김광규
오늘은 주차장이 텅 비었다
관리인도 나오지 않았다
오일 자국으로 얼룩진 광장에
온종일 햇볕이 내려쪼이고
가끔 비둘기가 모이를 찾고
바람이 지나간다
일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널려진 물건들 하나도 없이
하늘 아래 비어있는 땅
부당한 온갖 점거를 벗어나
잠시 제자리를 찾아
쉬고 있는 이 빈 터를
오늘은 주차장이라고 부르지 말자
金光圭 시인
1975 <문학과 지성>에 '시론'으로 등단
1979 첫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1981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1984 김수영 문학상
2008 이미륵상 受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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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勞動節 ......
서양에선 이 날을 [May Day]라고 한다지
우리나라에서 요즈음은 이 날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던가
아무튼, 한때 4월 며칠인가 그랬다 (기억이 가물)
그러다가 나중에 명칭도 바뀌고, 90년대 어느 날엔가는
그 날짜마저 5월 1일로 바뀐 이른바 근로자의 휴일
지금은 직장 근로자들만을 위한 휴일이지만,
시인이 이 詩를 썼을 땐 그 명칭도 노동절이고
全국민의 평안한 휴식을 위한 법정공휴일이었나 보다
시인의 시편들을 대하면 대체로 일상적 감각의 심화라는
특징을 느끼지만, 동시에 언어의 일상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시어의 자유로움 같은 게 있다 (이런 점이 참 좋다)
또한 인위적으로 왜곡된 의미들까지 그대로 詩에 원용하면서
그 의미의 외면적 형상과 내면의 본질을 동시에 파악하는,
시적 긴장감도 돋보이고
오늘의 詩에서도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詩題인 <노동절>은 노동자(근로자)의 권익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공휴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따라서 이 詩에 있어 시제는 공휴일의 한 상징으로 차용하고 있을 뿐,
그게 굳이 노동절이 아니라도 좋겠다
(어버이 날, 사월 초파일이라면 어떠하랴)
한편으로, 그 시적 對象은 詩에서 보여지듯이 공휴일의 텅 빈 주차장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부당한 온갖 점거를 벗어나/ 잠시 제 자리를 찾아/ 쉬고 있는" 이란 표현에서
주차장이란 인위적 공간으로부터 일시나마 자연의 상태로 돌아와 있다고
바라보는 시적 認識, 바로 그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자연으로서 체험하는 해방된 존재감 같은 것이 환하고 편안하다
이게 어디, 공휴일의 주차장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온갖 제도적 삶에서 요란한 가면을 쓰고 너덜하니 傷한 영혼을 품고 살아가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알뜰하게 해당되리라
제발 (아주) 잠시만이라도 인간 본연의 自然人(그 심성)으로 돌아가,
제도적 삶의 늪에 빠져있는 답답한 日常에의 은혜로운 구원이 있기를 !
감정의 지극한 절제와 함께 담담하게 말해지는, 시인의 詩語에서
삶의 지혜로 승화되는 知的 성찰을 느낀다
물론 아이러니를 말하는 비판의 정신, 또한 초월과 반성의 추동력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은 두 말 할 것 없겠고 ......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