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민 기자) 앨버타주가 오는 10월부터 65세 이상 근로자의 의료혜택 비용을 정부가 아닌 기업이 계속 부담하도록 제도를 변경하면서 기업과 보험업계,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보험 비용이 증가하면서 고령자 채용이 위축되고 직원 의료보험료가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조치는 지난 5월 통과된 보건법 개정안(Bill 11) 에 따른 것으로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은 기업이 65세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원의 단체 의료보험을 종료하지 못하도록 하고, 약제비와 의료비 지급 순서도 정부보다 민간 직장보험이 먼저 부담하도록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는 기업이 65세 이상 직원의 단체 의료보험을 종료하면 해당 근로자는 앨버타주의 노인 의료혜택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새 제도가 시행되면 고용 중인 직원은 나이에 관계없이 기존 직장 의료보험을 계속 유지해야 하며, 약제비와 추가 의료비도 기업 보험이 우선 지급하게 된다.
앨버타 보건부는 "정부 의료혜택은 다른 보장이 없을 때 제공되는 안전망이지 기업 보험보다 우선 적용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65세 이상 근로자도 기존 직장 의료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기업 보험료 최대 5% 인상 전망보험업계는 이번 제도 변경으로 기업들의 보험료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앨버타 블루크로스(Alberta Blue Cross)는 기업 의료보험의 약제비와 의료비 청구액이 평균 2~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일반 의료서비스 비용까지 포함하면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은퇴자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기업은 이보다 더 큰 비용 증가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험사 NFP의 자넷 마카드 부사장은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이 법안이 10월부터 시행된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비용 증가에 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서부 캐나다 기업들의 상당수는 이미 연령 제한 없이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실제 청구액 증가는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도 "정부가 부담하던 비용을 민간 보험이 먼저 지급하게 되는 구조 변화는 분명한 부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고령 근로자 채용에도 영향
(사진출처=The Canadian Press)
기업들은 새로운 비용 부담이 인사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캘거리의 스타트업 대표 피터 허드-와틀러는 "예전에는 채용할 때 의료보험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65세 이상 직원을 채용하면 추가 보험료를 반드시 계산해야 한다"며 "기업의 채용 결정에 새로운 변수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맥길대학교 경제학과 에린 스트럼프 교수도 "고령층은 의료비가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결국 65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하는 데 부정적인 유인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들이 증가한 보험료를 감당하기 위해 의료혜택을 축소하거나 직원들의 보험료 분담을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 기업들 "보험 설계 전면 재검토"보험 전문가들은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보험 설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현재 65세 또는 70세에서 의료보험이 종료되도록 설계된 단체보험은 10월 이전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 이미 의료혜택 대상에서 제외된 65세 이상 현직 근로자가 있다면 이들도 다시 보험에 가입시켜야 한다.
또 정부 의료혜택이 아닌 직장보험이 우선 지급하는 구조로 바뀌는 만큼 고가 전문의약품에 대한 사전 승인, 제네릭 의약품 사용 확대, 보험 한도 조정 등 비용 관리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혜택 축소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카드 부사장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 약물까지 무리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만큼 직원 복지 수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고령 근로자 증가…기업 부담도 확대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1년 14.2%에서 2025년 15.2%로 꾸준히 증가했다. 앨버타는 같은 기간 17~18%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앨버타 주정부는 2025~26 회계연도에 84만3,000여 명의 65세 이상 주민에게 의약품과 보조 의료혜택으로 약 11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가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는 대신 기업의 복지비용을 높이는 구조로 바뀌는 만큼, 시행 이후 기업 보험료와 고령층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한편 이번 보건법 개정안(Bill 11) 에는 의사의 공공·민간 동시 진료를 허용하는 이중 진료(Dual Practice) 제도와 환자가 의사 의뢰 없이 MRI·CT·초음파·X선 검사를 자비로 받을 수 있는 자가 의뢰 검사(Self-referral) 제도도 포함돼 있어 의료 민영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