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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너머 고개밑에 그들은 살아있을까 4/5_김덕선(캘거리 교민)
1990년도의 아버지 / 1949년도의 어머니 
1942년 큰할이버지(김리현 목사)가 목사로 취임하실 때의 온가족 
최근 김덕선 장로가 펴낸 본 책의 머릿말을 5회에 걸쳐 연재함을 알려드립니다. _편집부

(지난 호에이어 계속)

평양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가족 방문의 '조직(북한에서 많이 하는 단어)'을 했다는 말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동생 셋이 평양에 올라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조카 7명과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 등 모두 30명이 넘는 가족들의 얼굴을 못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쩌면 이번 북한 방문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동생, 딸, 손녀를 이곳의 2세, 3세들과 만나게 하려고 이역만리(異域萬里)를 왔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교섭을 시작했다. 다음날 '토의' 결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원산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단 2박 3일이라는 말에 다시 교섭을 시작했다. 2007년에 2박 3일로 원산에 갔을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가는 날, 오는 날을 빼면(평양-원산 간 차로 약 4시간이 걸렸다) 겨우 하루 밖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없으니 3박 4일은 있어야겠다고 우겼다. 또 토의를 한 결과 3박 4일이 허락됐다.
미리 정해졌던 계획을 변경시키고 온 가족을 모두 원산에 동원시켜 3일에 원산에 모두 모이게 하기 위해 안내원들이 힘을 써 주었다. '조직'이 성취된 것이다.
덜컹거리는 4시간의 운전 끝에 오후 1시경 원산에 도착, 송도원 바닷가에 있는 동명호텔에 들었다. 평양에서 우리가 호텔을 옮긴 일이 있어서 송도원 여관에 예약했던 것을 변경해 새로 지은 동명호텔로 정하고 우리는 절망이 제일 좋은 방이 4개가 있는 특실(140달라)로 하고, 희선이와 수경이네는 방 하나씩(85달라)에 들었다.
처음에는 비싼 스위트 룸이 필요한가 망설였는데 나중에 가져온 물건들을 다 집어넣고 10집에 나누고 30여 명이라는 대가족이 오고 가게 되었을 때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명호텔에 1시경 도착하니 넓은 마당에 20명 가까운 가족이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눈물과 포옹으로 극적인 상봉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더 수척해지고 여윈 것을 보자 내 마음이 아팠다.
처음 만나게 되는 수경이와 알렉스도 한 핏줄인 동기의 정을 느끼고 붙들고 모두 울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짐을 곧 풀고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늙은 사람들은 우리가 온 밴으로, 나머지 가족 은 모두 걸어서 얼마 후 모여 점심을 먹게 되었으나 함흥에서 아침에 떠났다는 문선이 가족이 오지 않았다.
온 가족이 걱정하던 차에 얼마 후 어린 손자, 손녀와 성철, 그의 처 그리고 문선이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우리가 함께 묵으리라 생각했던(2007년처럼) 송도원 여관에 갔으나 다 묵을 방도 없고 짐도 맡길 수 없다 해서 그곳에서 겨우 그들 방만 정하고 걸어 나왔다. 천천히 점심을 먹으며 끝없는 화제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행히 작은 식당이었지만(이북의 모든 식당들처럼) 식사시간 외에는 손님들이 없어 우리 가족이 독차지한 듯 했다. 30명 정도나 되는 가족, 안내원, 운전수, 원산에서 나온 해외동포, 원호 위원회 책임자까지 한식사비를 조카들이 내겠다고 극구 우겨서 내버려 두었다가 나중에 그들의 경제사정을 알게 될 때 너무나도 후회가 됐다.
5시 경 호텔에 돌아와서야 긴장했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긴장이 풀리게 되었는지 완전히 녹초가 돼서 드러눕고 말았다. 저녁에는 희선이 가족들을 데리고 안내원들과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며 보냈다.
아침식사를 하고나니 문선이와 유선이가 왔다. 생각지도 않게 우리부부의 금혼식을 한다는 것이다. 사유인즉 먼젓번 편지에 우리가 이번 가을에 방문을 하게 되면 작년에 못한 문선이 진갑(제수가 2008년 사망한 관계), 내년에 올 수자 진갑, 또 내년 1월 3일에 올 우리의 금혼식을 모두 겸해서 기념하는 자리를 갖자 했었는데 그 말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형님 부부가 오셨으니 간단하게나마 식을 올려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들의 정성이 갸륵해서 동생들을 주려고 가져온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명선이도 주려고 가져온 의복을 입기로 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식당을 1시 반부터 6시 정도까지 대절을 했다는 것이다
식당에 들어가니 대단히 큰 상을 차려 놓았다. 누이동생 수자는 은파에서 오는데 직접 연결되는 버스(40리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가 없어 사리원에 나와 하룻밤을 자고 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순대, 과질, 떡을 해오고, 함흥에서 오는 문선이네는 직접 만든 3단 웨딩 케이크를 3시간 버스로 오면서 무릎 위에 놓고 왔다 했다.
유선이네는 시루떡, 찹쌀떡, 진편 등을 천내와 원산에서 만들어왔다. 내 환갑 때 아내가 차려준 상 이후로는 처음 받은 융숭한 상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이 음식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가를 후에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때 내 눈에 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유선이가 사회를 보고 문선이 축사를 하고 수경이 영어로 축사를 하고(더듬거리는 조선말로는 도저히 자기의 감정을 다 표시 못하겠다 해서) 승연이가 통역을 했다. 알렉스가 축배를 올리고 식사가 끝난 뒤 노래자랑을 했다.
유선이가 우리들이 조국 방문 중 결혼 50년을 기념하게 된, 장장 24페이지의 축하 글을 녹음한 것을 들려주었다. 22년 전 처음 이북 방문 때의 감격으로 시작해 5차 방문까지 일어났던 일의 회상과 만나서 즐거웠던 때의 녹음한 것을 삽입하는 등, 며칠을 밤을 새며 노력한 그 정성과 형제의 우애에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의 글 속에는 내가 석유개발에 대한 책과 재료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50세 생일을 맞아 동생들과 석화액자와 시를 증정한 얘기가 있다. 당시 아버지와 주위가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이북 방문을 단행한 나로서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그것은 사상을 떠나 오로지 형제에 대한 사랑의 표시였을 뿐이었다. 또 한편 동생들이 아버지 없이 고생하는 동안 부귀와 행운을 누리는 내가 그들에게 바치는 속죄의 뜻도 없지 않았다.
우리의 잔치가 끝난 후 유선이는 녹음된 테이프와 쓴 글을 안내원에게 맡기며 우리가 그것들을 가지고 가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도 평양에 와 몇 번이나 독촉하고 선처해 주기를 부탁했다. 떠나는 날 아침 글을 쓴 노트는 받았다. 허나 테이프는 끝내 내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동생이 형에게 바치는 애절한 사랑의 표시였건만 왜 그들은 그 뜻을 이해 못하는지 답답하고 화도 났다. 결국 내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은 셈이다. 우리가 과거 가졌던 집안의 잔치들은 많았다. 특히 내 환갑, 아내 환갑에 비하면 조촐하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정과 사랑은 어느 때보다도 넘쳐흐르는 잊을 수 없는 잔치였다. 그 잔치의 식당비용은 360달라(물론 대부분의 음식은 우리 식구가 가져왔고 식당에서는 반찬, 밥, 나물, 냉면, 술 등을 제공했음)였다.
그날은 마침 아내 명선의 73회 생일이어서 동생 조카들의 생일 축하를 받게 되어 더욱 뜻있는 잔치가 되었다.
저녁에는 호텔에서 동생들과 조카들이 가져온 선물을 풀었다. 함흥의 문선이와 성철이네가 우리 부부, 희선 부부, 수경 부부 그리고 알렉스의 초상화(유화)를 기증했다. 과거 우리가 보내왔던 사진들을 확대해서 그린 것들로 사진의 년수에 따라 사람의 연령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희선이네 것은 내 환갑 때 사진(그리고 아주 적은 얼굴부터)을 그린 것이어서 한 20년 가까이 젊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알렉스 그림이 제일 지금 모습이었다. 성철이는 또 군대에서 배웠다는 목공 기술로 옛날 우리가 살던(1937-1950) 원산 우리집(당뒤집이라 불렀다)의 모형을 문선이의 기억을 더듬어서 만들어왔다.
은파의 수자네는 사위를 두 번이나 평양에 보내 고려청자에 그림을 그린 것을 우리 세 부부에게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높이 40cm가 되는 청자에 우리 부부의 사진을 구어 넣은 것이었다.
천내의 유선이네는 우리에게 50년근(정부에서 감정해 증명했다)의 산삼 두 뿌리를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말과 더불어 주었고 희선이에게는 가정의 융합을 훈시하는 액자를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기사 등록일: 2013-11-22
운영팀 | 2022-06-01 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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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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