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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의 산 증인을 만나다 _ 글: 죽산 이정순(동화작가, 캐나다 여류 문협)
 
2019년 2월 4일 딱 5박 6일 일정으로 우리 부부는 갑자기 고국에 가게되었다. 우리 고유의 명절 설 연휴가 서울거리는 한산했다. 미세먼지로 숨도 못 쉴 줄 알았는데 하늘은 캐나다 하는 못지 않게 쾌청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났지만, 공적인 급한 볼일 외 글 벗 소록도 동화작가를 만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나와 남편은 여독이 풀릴 겨를도 없이 2월 8일 새벽 6시, 고흥으로 가는 첫차를 타기위해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서울에 있을 때도 가보지 못한 소록도는 어떠한 곳일까? 궁금해 하며 가로수를 뒤로하고 한적한 들판을 4시간 30여분을 달렸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글벗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글벗이 차려주는 고향 맛이 물씬 풍기는 밥상에서 고국의 정을 듬뿍 추억으로 담아 올 수 있었다.
그는 청소년 소설 『소록도의 눈썹달』을 쓴 작가다. 그 인연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소록도로 달려간 것이다.
고흥에서 소록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바다 위로 시원하게 놓여있었다. 우리는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 강창석 시인님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분이야말로 소록도의 산증인이 아닐 수 없었다. 글벗은 그분을 인터뷰 섭외를 해 주었다. 입구에서 강 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 시인은 청년기에 한센 병을 앓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한센 인에 대한 선입견이 아직도 남아 있는 터라 쉽게 다가가지를 못했다. 글벗이 쓴 책을 읽은 후 소록도를 많이 이해하고 공감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어릴 때 접했던 문둥이라는 단어가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당시 엄마는 한센인(그 당시는 문둥이로만 알았다)들이 집에 밥을 얻으러 오면 바가지에 밥을 담아 주곤 하는 것을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무서워 등 뒤에 숨어 엿보던 기억이 있다.
소록도에는 2월 초순인데도 벌써 봄이 왔는지 매화꽃이 피어있었다. 소록도 입구 휴게소 앞에서 강 시인님을 만났다. 강 시인은 병을 앓은 흔적은 남아 있지만, 완전히 한센 병이 완치되었다.
강 시인은 한하운 문학연구소소장 직을 맡고 있었다. 강 시인은 한하운 시인의 문학 후배이며, 한하운 시인의 작품은 한센인의 유산과 같기에 잘 못 알려진 왜곡된 흠집을 지우고 한센인의 인물로 바로 세우려는 작업을 하는 분이었다. 그 일을 한 지가 8년째이고 확인은 거의 마치고 마무리 작업만 남아있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했다.
한하운 시인님은 한센 인으로서 『보리피리』로 유명한 시인이다. 강 시인은 한하운 시인님의 애절한 시 『소록도 가는 길』을 읊어주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신을 벗으면…. 중략.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 시는 강시인 자신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기도 한 시다. 강 시인은 우리를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구석구석 안내를 했다.
입구에는 소록도를 영구보존하는 역사적인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이 있었다. 일반인 금지구역에 보존되어 있는 것은 교도소와 한센 인들의 유해를 모시는 만령당, 84인을 학살한 장소와 애환의 추모비, 잔학한 일본 스오 소장의 동상이 서 있던 곳, (스오 소장은 가혹행위로 불만을 사던 중 1942년 감사일 행사에서 이춘상에 의해 살해되고 태평양 전쟁 물자로 동상이 철거되었다) 소록도 벽돌공장. 영아원 등 그 당시의 실상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낡은 것들이 많아 귀한 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죽어도 놓고 바위> 그 바위는 일본인 스오 소장은 한센 인들을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산 위에 있는 바위를 밑으로 옮겨놓게 했다. 그 바위의 크기는 장정 열 명 정도가 앉을 정도로 큰 바위였다,
“저 큰 바위를 손가락이 뭉그러져 없는 사람들이 팔목으로 옮겨놓았답니다.”
강시인의 설명이다. 군데군데 그들의 핏자국이 스며있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죽어도 옮겨 놓고 죽자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을까. 그 바위 위에 한하운 시인님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수탄장이 있었다. 수탄장은 철저히 부모와 아이가 격리되어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소였다. 어른들이 보는 길의 너비는 아무것도 아닌 짧은 거리였지만, 그들은 손을 내밀어 손이라도 잡아보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다. 부모들은 행여나 아이들한테 몹쓸 병이 옮기기라도 할까 철저히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인지도 모른 채 목청껏 엄마를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로만이 아이들은 엄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는 거리. 아이들의 애절한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수탄장은 탄식과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숲을 걸어가는데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어른 손이 닿을 만한 부분이 움푹 패어 있었다.
"강 시인님! 이 나무는 왜 이리 흉한 상처가 있습니까?"
"소나무 송진을 채취한 것입니다. 일본 놈들이 환자들을 동원해서 전쟁물자 송탄유를 만들기 위해 송진을 채취해 일본으로 가져갔지요."
강 시인은 안으로 들어가면 더 아픈 사연들이 많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문둥병은 무서운 병으로서 이에 걸린 사람을 하나님의 저주나 재앙을 받았다고 했고, 그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문둥병 환자를 철저히 격리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추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를 지옥의 섬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록도는 천국도 아니요. 그렇다고 지옥도 아닌 사람이 사는 섬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워했고, 이들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눈물과 서러움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사람과 사랑은 남습니다.'=『소록도의 눈썹달』중에서.
이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이 된 소록도! 소록도의 100여 년의 역사! 한센인의 전설이 된 소록도! 그 전설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고통 없이는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소록도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소록도 주민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들은 한센 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 조금 불편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 곳은 따뜻한 봄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곳, 사람과 사랑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었다.

신문발행일: 2019-04-05
Juksan | 2019-04-11 14:33 |

감사합니다.
글을 발쵸 할 수 있는 지면을 할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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