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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받은 중매쟁이.....연재 칼럼)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14/20) ,, .글 : 어진이
 
글 작성일 : 2004년 4월 28일


때는 1975년 11월, 장소는 캐나다 토론토

‘에~이~ 이럴줄 알았으면 요기라도 하고 오는건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음식 냄새가 코를 더 자극했다. 다른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 앉는 것을 보면서 우리 넷(순진이, 오빠, 여동생, 나)은 집을 나섰다. 그 당시 한국 식당이라고는 시내에 두개가 있었다. 순진이의 언니집은 서쪽 끝에 있으니 시내에 갈려면 한참 걸렸다. 게다가 햄버거 가계도 요즘처럼 곳곳에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낯선 동네에서 햄버거 가계를 찾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앗다.

순진이 오빠가 자기가 사는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니까, 자기 사는 것도 보고, 자취를 오래 했으니 음식 솜씨도 괜찮으니 저녁을 자기가 손수 지어 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재미 있겠네!’
차안에서 여동생을 힐끗 쳐다보니, 얼굴이 별로 편해 보이질 않았다. 요기를 하고 가자던 오빠를 억지로 못 먹게 했는데 배를 쫄쫄 굶고 있으니 그에 대한 죄책감(?)이 역력했다. 나 또한 내 얼굴을 볼수 없었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저녁대접을 못 받은 것은 고사하고, 순진이 형부의 태도가 자꾸만 내 신경을 건드렸다. 순진이도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 더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순진이 오빠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순진이 오빠는 rooming house에서 살고 있었다. 세평이 될까 말까한 3층 다락방에서 살고 있었다. 계단은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부엌과 화장실은 2층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고 있었다. 방에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가 달랑 있었고, 한 쪽 구석에는 종이상자 위에 전축이 있었다. 방의 많은 부분을 전축판과 책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침대에 앉고 남자들은 책을 묵어 놓은 보따리를 끌어다가 그위에 앉았다.
‘난 그래도 소파와 식탁은 있는데……’
순진이 오빠는 소파는 고사하고 티 테이블도 없었다. 곰팡이 냄새나는 퀴퀴한 다랑방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왔다.
‘이 친구는 아무 것도 없는데 음악은 있구나!’

순진이 오빠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 카토릭 신학대학에서 3학년을 끝내고 카나다에 왔다고 했다.
‘아~! 그래서 책도 많고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나하고는 좀 다른 科에 속하는 사람 같았다. 순진이 오빠는 돕겠다는 순진이와 여동생을 제쳐놓고 부엌에서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음식을 하느라고 분주했다.

우리 셋은 방에 있으면서 대화의 궁색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중매쟁이인 여동생이 바람을 잡아 주어야 하는데, 뭣이 틀렸는지 입을 열지 않았고, 순진이는 워낙 말이 없는데다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을 하는 사람이니…… 나도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무슨 말인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짖눌려서인지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든 하긴 해야 하는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여자들끼리 이야기 하겠지.’
음악을 듣는척 하면서 전축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순진이는 오빠를 돕겠다며, 부엌으로 내려갔다.
“야~ 너라도 이야기를 좀 해야지!”
“오빠, 이젠 난 몰라!”
“야~ 좀 작게 이야기해! 듣겠다.”
“……”
“중매쟁이가 이러면 어떻게?”
“하여튼 난 기분나뻐!”
여동생은 기대했던 저녁대접을 못 받는게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였다.

“아이구~ 이거~ 처음 오셨는데 어쩌지요?”
순진이 오빠랑 순진이가 쟁반도 없는지 스파게티를 담은 접시를 두개씩 들고 올라왔다. 노총각에게서 굉장한 것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스파게티는 좀 의외였다. 국수를 무던히 좋아하는 나의 누나는 국수를 먹어야 오래 산다고 했다. 긴것을 먹어야 오래산다나? 그러나 난 국수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집이 어려웠던 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국수를 먹었는데, 그때 국수에 디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쩌랴!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이라고는 스파게티 밖에 없는데…… 거~한 저녁을 먹을거라고 쫄쫄 굶고 나온 여동생을 쳐다보며 웃을수 밖에 없었다. 시계는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간을 굶은거야!’

식탁도 없고 티 테이블도 없는 집이라, 우린 방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순진이 오빠는 신문지를 깔고 스파게티 접시 네개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 내려가더니 단무지가 든 종지를 하나 가져다가 가운데다 놓았다. 스파게티 접시 네개! 단무지가 담긴 손바닥만한 종지가 달랑 한개! 히~야~! 맛선 보는 날! 곰팡이 냄새나는 노총각의 집에 와서 방바닥에 앉아서 신문지를 깔고 스파게티를 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노총각이 만든 스파게티 먹을만 했다. 스파게티맛이 아니라, 배가 고팠기에 “입맛”이었으리라!
“C형, 이거 보기보다는 맛이 좋습니다.”
“내가 뭐랬어요. 내 음식 솜씨 괜찮습니다. ㅎㅎㅎ”
‘싸나이, 인사로 한마디 했는데……’
“네~ 맞습니다! 맞아요! ㅎㅎㅎ”
‘그래 웃자 웃어!’
스파게티와 단무지! 아무리 봐도 궁합(?)이 맞지 않았지만, 그런걸 따질 처지가 못됐다.

집에 오는 길에 순진이를 언니집에 내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여동생이 한마디했다.
“오빠~ 정말 이젠 난 몰라! 오빠가 알아서해!”
“……”
“도대체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데가 어디 있어?!”
“……”
“그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그래도 순진이는 착하다며?”
“하여튼 순진이고 어진이고 난 모르니까, 잘해봐!”
“야~ 너 되게 화났구나?”
“오빤 밸두 없어?”
“……”
“난 끝이니까, 좋으면 오빠가 알아서 해!”
중매쟁이 여동생은 정말 열통이 터지는 모양이였다.

‘물건너 갔구만……’

기사 등록일: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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