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람

여름 _ 월당 서순복 (캘거리 문협)

관심글

관심글


오충근 기자수첩) 영국, 캐나다, 미국

찰스 3세는 개원칙어에서 “캐나다는 전례 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출처: 글로벌 뉴스) 
찰스 3세의 개원칙어(開院勅語)
여왕의 치마자락 뒤에서 평생을 늙은 도령으로 지낼 것 같던 찰스가 국왕이 되어 캐나다에 왔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공식행사인 개원칙어(Speech from the Throne) 낭독하러 왔다. 개원칙어는 하원 개원할 때 행하는 국왕의 연설이다.
칙어는 국왕의 말씀이다. 칙령(勅令)은 국왕의 명령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밀라노 칙령, 낭트 칙령이 그런 것이다.
칙사(勅使)는 칙서(勅書 국왕이 보내는 문서)를 갖고 오는 사신을 말한다. 흔히 대접을 융숭하게 하거나 받을 때 칙사대접 받는다고 하는데 국왕이 보내는 사신이니 대접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왕이 상원을 방문해 칙어를 낭독하지만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에서는 대개 총독이 대독한다. 캐나다에서는 1977년 엘리자베스 2세가 재위 25주년(Silver Jubilee)를 맞아 캐나다 순방 중 하원에서 개원칙어를 낭독했다. 장수한 엘리자베스 2세는 2022년 재위 70주년(Platinum Jubilee)을 맞았고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영국 전통에 국왕은 하원에 들어가지 못해 하원의원들을 상원으로 부른다. 이번에 찰스 3세도 상원(Red Chamber)에서 Black rod(黑杖官 흑장관)에게 하원의원들 불러오라고 지시해 흑장관이 하원(House of Commons)을 방문했다. 흑장관이 오면 하원은 열려 있던 문을 닫는다. 흑장관이 문을 세번 두드리면 비로소 문을 연다. 이것은 하원이 국왕의 명령이 아닌 국민의 뜻에 의해서만 열린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의미한다.

국왕은 하원에 발을 들어놓지 못한다

찰스1세(1600-1649)는 종교 갈등, 스코틀랜드와 전쟁, 재정문제로 의회와 사이가 나빴다. 의회에는 반왕파 의원들이 많아 사사건건 찰스 1세에 반대했다. 왕은 근위대를 이끌고 의회에 쳐들어가 반왕파 의원들을 체포하려 했다. 반왕파 의원들은 도망갔고 하원의장은 왕에게 의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하며 의원 체포의 부당성을 항변했다.
그후 왕당파와 의회파로 갈라진 영국은 내전상태로 들어갔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스코틀랜드는 40만 파운드 받고 왕을 올리버 크롬웰에게 인도했다. 찰스 1세는 연금되었다 사형당했다. 국왕을 시해한 결과는 엄청났다. 잠깐의 공화국을 거쳐 왕정복고로 국왕 시해에 관여했던 의원들은 대역죄로 교수형 당한 후 사지를 찢기는 형벌이 가해졌다. 해외로 도망친 의원들도 추적해서 체포해 사형 후 시체가 토막 나는 형벌을 받았다. 이미 죽은 크롬웰의 시신을 부관참시해 그의 목을 웨스트민스터에 걸어 놓았다. 야만적 형벌인 부관참시, 시신훼손은 조선시대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찰스 1세의 의회 침입 사건으로 국왕은 하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대원칙이 세워졌다.

이란성 쌍둥이 캐나다와 미국

찰스 3세가 캐나다를 방문해 개원칙어를 낭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정체성과 독립을 존중하지 않고 51번째 주 운운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미국은 북미 대륙을 비군사적 국경으로 양분하고 있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공통의 식민지 역사가 있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프랑스어도 공용어다. 양국은 무역, 문화 교류가 활발하고 민주주의, 자유경제, 인권 등 유사한 사회문화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영연방국가인 반면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다. 미국은 개인주의, 자유에 가치를 두지만 캐나다는 공동체주의, 사회복지에 중점을 둔다. 미국은 전쟁이라는 혁명적 수단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캐나다는 점진적이고 평화적 방법으로 독립을 이뤘다.
독립전쟁 후 파리조약을 통해 미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어 공화국이 되자 약 4만명-6만명의 왕당파(Loyalist)들이 박해를 피해 캐나다로 건너왔다. 왕당파들은 영국식 신분제도, 군주제 등 영국 문화전통을 지키며 훗날 캐나다 보수주의 뿌리가 되었다. 왕당파를 영국에서는 공식적으로 U.E.L(United Empire Loyalists)라고 부른다.
미국은 독립했으나 캐나다는 여전히 영국령 캐나다였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 중 일부는 캐나다를 합병하고자 했다. 이것은 미국-영국령 캐나다 전쟁의 한가지 원인이 되었다. 1812년 전쟁에서 미국은 원하는 영토를 얻지 못했고 캐나다군은 백악관을 쳐들어가 불 질러 파괴했다. 이 전쟁은 캐나다 정체성 확립의 계기가 되었다. 1812년 전쟁은 캐나다-미국의 유일한 물리적 충돌이다
캐나다와 미국은 다르다.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상대를 무시하며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혼란을 일으켰다.

미국과 관계 재설정

트럼프 발 무역전쟁과 합병 제안으로 무역과 경제분야에서 미국과 관계 재설정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미국 일변도의 수출에서 탈피하는 수출 다변화는 현실문제가 되었다. 특히 앨버타 이해가 얽혀 있는 에너지 분야는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연방정부도 파이프라인 건설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케니 총리는 이념보다는 실사구시에 역점을 두는 실용주의자로서 주정부와 협의해 캐나다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설정할 것이다.
증설이 완공되어 작년 5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이 좋은 예다. 100% 가동되면 하루 89만 배럴을 운송할 수 있는데 현재 하루 79만 배럴을 에드먼턴에서 밴쿠버 버나비 터미널까지 운송하고 있다. 회사측에 따르면 2027-2028년에는 100% 가동된다. 앨버타 원유 생산량도 늘어나 작년 1분기에는 하루 404만 배럴을 생산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하루 419만 배럴을 생산했다.
WTI 대비 할인율도 많이 줄어 배럴 당 18-20 달러에서 10달러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파이프라인 용량 증설로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되는 원유가 늘었기 때문이다. 원유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할인율이 1 달러 줄어들면 앨버타 세수(稅收)가 7억4천만 달러 늘어난다.
자유당은 올해 7월1일부터 주와 주 사이의 무역장벽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은 오늘 내일 이뤄지는 게 아니지만 국내 무역장벽을 제거해 주와 주 사이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미국 시장의 타격을 일정부분 완화할 수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트럼프 발 무역전쟁과 합병 제안으로 도전을 받고 있으나 이를 극복하고 캐나다와 캐나다 국민들이 국가의 한 소절 “The true North strong and free”처럼 강하고 자유롭게 되어야겠다.

기사 등록일: 2025-06-06


나도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