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기자수첩) 타락한 개신교, 엘리야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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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몰락
열왕기 상 21장23절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솔로몬 시대의 빛과 어두움
솔로몬 왕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유대 왕국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대로 분열되었다. 솔로몬 왕 때 유대는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그때 이미 분열의 징조가 보였으니 아이러니다.
1. 궁전, 성곽, 건물 건축을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였고 백성들은 강제노역에 동원해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북쪽 지파에서 원성이 심했다.
2. 솔로몬은 유다 지파를 중용하여 그들이 정치 권력의 중심이 되고 다른 지파들은 소외되어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3. 솔로몬은 여러 명의 이교도 여인들을 후궁으로 삼아 이방종교가 도입되어 종교적 문화적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정책에 반대하다 이집트로 망명했다 솔로몬이 죽은 후 귀국했다. 백성들은 로호보암 왕에게 세금과 강제노역을 완화해달라고 청원했으나 거절당했다.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 북부 10개 지파들과 함께 북 이스라엘을 세워 왕이 되었고 유대 왕국은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가 연합했다. 주류는 유다 지파였고 벤야민 지파는 소수였다.
이스라엘 6대왕 아합은 강력한 왕이었으나 성경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해 가장 악한 왕이라고 쓰고 있다. 가장 악한 왕의 뒤에는 가장 악한 왕비 이세벨이 있어 악을 더욱 부채질했다. 나봇의 포도원이 대표적 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났으나 기업으로 물려받은 포도밭은 팔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나봇이 거절하자 이세벨은 나봇을 모함해 죽이고 아합은 포도밭을 차지했다.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죽음을 예언했다. 아합이 죽고 그의 피를 개들이 핥을 것이고 이세벨의 시체를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아합은 아람과 전투 중에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았다. 격렬한 전투 중에 누구도 아합을 도울 수 없었다. 아합은 전차 안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장사 지냈으나 피로 얼룩진 그의 전차를 연못에서 닦을 때 개들이 몰려와 그의 피가 흐른 물을 핥아 먹었으니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세벨의 죽음
예후는 북 왕국의 군 사령관으로 아람과 전투 중에 길르앗 라못에 주둔하였으나 혁명을 일으켜 왕궁으로 쳐들어가 요람 왕과 나머지 아합의 가족들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피의 숙청이 이뤄지는 중에 이세벨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예후의 명령대로 내시들이 이세벨은 궁궐 창밖으로 내던져 죽였다. 그의 시신을 개들이 뜯어먹어 두개 골과 손과 발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그렇게 엘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세벨은 왕비의 지위를 이용해 탐욕과 부정부패, 거짓을 일 삼았고 거짓 선지자를 따라 이방종교를 널리 퍼뜨려 정신적 종교적 타락을 조장했고 야훼 신앙에 충실한 선지자를 박해했다.
한국판 아합과 이세벨
아합과 이세벨이 죽은 후 천 몇 백 년이지나 한국에 그들을 똑 같이 닮은 부부가 있었으니 윤석열과 김건희다. 이들 부부는 3년동안 탐욕을 채우고 사리사욕, 정적 제거, 거짓선동, 부정부패에 공권력을 이용했다. 이세벨이 아합을 조종하듯 김건희도 윤석열을 조종했다. 이들 부부는 영구집권을 꿈꾸며 친위쿠데타를 획책하다 국민적 저항의 부딪쳐 실패하고 남편 윤석열은 탄핵으로 권력에서 쫓겨나 내란 수괴로서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다. 특별검사가 적시한 김건희 죄목은 16가지로 그들 부부의 죄는 이미 하늘에 닿을 만큼 크지만 천인공노할 죄는 마약 밀수 무마사건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16가지 죄 이외에도 김건희는 국민 세금으로 해외여행을 즐기고 국가유산인 종묘를 사적용도로 이용했다. 종묘는 역대 왕의 신주를 모셔 놓은 신성한 장소로 왕들도 감히 함부로 출입을 못하는 곳인데 김건희는 그곳에서 차담회를 열어 개인 카페처럼 사용하며 국가 공공 유산을 개인 물건 취급했다.
윤-김 부부의 용서 못할 죄가 또 있으니 사이비 종교, 거짓 기독교, 무속, 주술로 한국사회를 정신적으로 타락시킨 죄다. 소를 산채로 가죽 벗기는 기이하고 잔혹한 행위, 부부의 주변에는 법사, 술사, 역술인들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신천지, 통일교 등 사이비 기독교도 윤-김 정권에 등장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교인들이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조차 우상숭배라면서 금 하는 개신교 목사들이 손바닥에 왕(王)자 쓰고 나타난 대통령 후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고 무속과 주술에 빠져 사는 이들 부부를 따라다니며 축복해주고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윤-김 부부를 축복해주고 따라다닌 개신교 목사들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자들이고 아합과 이세벨을 따르던 거짓 선지자 같은 자들로서 결국 윤-김 부부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몰락을 앞당기게 했으니 “아람과 전쟁하면 이길 것”이라고 거짓 예언한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윤-김이 권력을 잡았던 3년동안 미가야, 엘리야 같은 진정한 선지자는 그 주변에 없었다.
타락한 개신교, 엘리야는 어디에?
타락한 개신교는 실과 바늘처럼 윤-김 정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타락한 개신교, 극우화 된 개신교는 윤-김 정권의 적극적 지지세력이자 든든한 외부 지원 단체였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 속에서 예수의 정신을 지키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으나 기독교가 공인된 후 세속화되고 타락했듯 한국 개신교 역시 해방 후 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타락과 극우의 징조가 보였다.
북한에서 박해를 피해 남하한 개신교인들은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공정책과 맞아 떨어지며 권력에 협조적인 든든한 우군이었다. 개신교인이 전 국민의 5%에 불과했으나 정부의 국장 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40%가 개신교인이라는 당시 통계가 이승만 정권이 개신교와 어떤 관계였나 를 설명해 주고 있다. 정권과 밀월관계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졌다. 군사독재시절 일부 개신교가 정권에 저항했으나 대부분 개신교회는 “지도자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로마서에 충실했다.
권력에 순종적이던 개신교가 발톱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말하는 좌파정권 부터 시작되었다. 북한과 관계개선은 반공을 토대로 하는 개신교가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었다.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학교를 운영하는데 사학법 개정으로 학교운영에 정부 관여가 심해지고 여러가지 제동이 걸린 것도 그 동안 누려온 기득권 침해로 받아들여졌다.
그와 동시에 일부교회는 세습으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금전 문제, 이성문제 등으로 타락한 목사들도 지탄의 대상이 되며 그때를 즈음해서 교인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줄어든 것은 교회나 목사들의 타락에도 있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도 있다. 과학과 경제가 발전해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교육수준 지적수준이 높아지고 민주주의, 사회복지가 발달하면 교회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이에 개신교는 불안, 공포, 분노 등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런 위기의식이 전광훈으로 구체화되었다. 윤-김 정권은 주술, 무속과 더불어 사이비 기독교 극우 개신교를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
그러나 개신교에는 전광훈, 김장환, 이영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나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가 말씀하신 진리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오늘도 예수의 가르침을 성찰하며 묵묵히 따라가는 많은 교인들이 있고 그 들로 인해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이 곧 엘리야다. 마치 작년 12월3일 불법 명령을 거부한 현장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소극적 진압이, 불법 계엄에 맞서 수많은 이름없는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에 모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살렸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