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의 기자수첩) 환자가 죽는 응급실 - 허명(虛名) 만 남은 보편적 헬스 캐어
Alberta Health Service
그레이 넌 병원 응급실에서 진통제 먹으며 9시간 버티던 환자가 심장이 쥐어뜯는 듯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었다. “기다리다 죽는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캐나다의 무상의료는 전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지만 살인적인 의료 대기시간은 상식이 되었다. 늘어나는 대기시간은 이민자가 급격히 늘어난 몇 년 사이에 더욱 심각 해졌으나 사실은 수십년 된 고질적 문제다. 필자가 처음 이민 왔을 때에도 선배 이민자들이 “여기는 (의사) 기다리다 죽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1990년대 캐나다 전체 평균 대기시간은 9주였는데 지금은 3배가 늘어났다.
필자는 요즘 귀 전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 귀에 난청 현상이 생겼는데 난청 때문에 죽지는 않겠지만 언제까지 불편함을 참고 견디며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2025년 Fraser Institute 자료에 따르면 앨버타에서 가정의에서 전문의까지 연결되는데 평균36주를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평균은 28.6주다. 치료분야별로 대기시간이 천차만별인데 초음파(Ultrasound) 검사는 비교적 짧아 평균 5.4주가 소요된다. MRI는 18.1주, 가장 긴 진료 대기는 신경외과 수술로 49.9주 걸린다. 방사선암 치료는 의외로 빨라 평균 4.2주 걸린다.
늘어나는 대기시간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환자들이 고통속에서 전문의 수술이나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원인은 복합적이고 구조적 문제인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특히 가정의 부족이 눈에 띈다. 캐나다 전체에서 가정의 없는 사람이 460만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캐나다 전체적보다 앨버타에 국한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
현재 캐나다는 인구 10만명당 의사241명이 있다. 이 수치가 적정 수치도 아니고 기준이 되는 수치도 아니다. 캐나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으로 OECD 평균, 인구 10만명 당 의사 35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캐나다 평균 의사수를 앨버타 인구에 맞춰 계산하면 앨버타에는 11,800명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2024년 1분기 자료에 의하면 앨버타에는 11,632명의 의사가 있다. 여기에는 최근 은퇴한 의사, 파트타임 의사, 진료를 하지 않는 의사가 모두 포함되니까 실제로 활동하는 의사는 11,632명 이하다. 이는 캐나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가정의는 캐나다 평균에 맞춰 계산하면 5,900명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5,200명-5,600명이 있어 평균보다 300명-700명 부족하다.
앨버타 인구 증가 속도는 전국 최고다. 2004년-2024년까지 앨버타 인구는 50.9% 늘어났다. 이는 전국 평균 29.3%에 비해 매우 가파르게 인구가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사이에는 연 1.1%씩 인구나 늘어났으나 2022년부터 3년동안은 연 3.3.%씩 인구가 급증했다. 그러나 인구증가에 맞춰 전문의, 가정의가 늘어나지 않았음을 통계는 보여주고 있다. 의사 부족은 캐나다 의료체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 구조적 문제로 앨버타 주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료 인프라 건설은 인구비례대로 늘어났을까?
AHS (Alberta Health Service) 보고서에 의하면 응급실, 외래방문 등 서비스 이용은 늘어났으나 병상 수, 병원 확충, 인력확충이 인구비례대로 늘어나지 않았다. 앨버타는 에너지 수익으로 재정적으로 의료 인프라를 확충할 능력이 있음에도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인프라 투자와 시스템 효율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증가로 장기 요양, 의료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이것이 캐나다 최고 부자 주 앨버타의 의료 현실이다. 그렇다면 주 정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UCP 정부의 의료 구조 개편안
UCP 정부는 작년 5월1일 의료 개편안을 담은 Bill 55를 입법부에 제출했다. Bill 55는 5월7일 입법부를 통과해 법제화되었다. 이 법안으로 AHS는 해체 수준으로 재편되었고 의료부분을 총 4개의 별도기관으로 분류했다.
1. Acute Care Alberta: 병원 운영, 응급 의료, 수술 시술, 고난도 전문 치료, 병원인력 및 시설관리
2. Primary Care Alberta: 1차진료, 가정의, 워크 인 클리닉, 기초의료 서비스, 예방 조기 진료, 의료연계, 지역 기반 진료 모델
3. Continuing Care: 장기 요양, 보조생활 시설, 재가 돌봄 (Home care) 노인, 장애인 돌봄, 퇴원 이후 관리
4. Metal Health and Addiction: 정신 건강 서비스, 중독치료, 정신건강 응급 대응, 자살 위기 대응, 청소년 청년 정신 건강, 지역 기반 회복 프로그램
의료 개편안의 핵심은 앨버타 의료의 과부하와 문제점이 잘못 설계된 시스템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구조개편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정부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즉 이 개편안은 어느 지역에 언제 병원을 세운다, 혹은 병상을 늘린다, 의사를 충원한다는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기존의 자원과 인력을 필요한 곳에 더 보내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지금까지 결과는 구조 개편이 대기시간, 응급실, 의사 부족을 개선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의료현장애서는 여전히 빡빡하고, 체감상 나아졌다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구조개편의 혼란이 정리되고 4개 기관이 업무 분담을 유기적으로 협조하면 현재의 인프라로 대기시간, 병상 회전율을 개선할 수 있다고 의료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대기시간 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민간 의료 확대
앨버타 주정부는 지난해 11월 Bill-11을 입법부에 제출해 12월10일 의회를 통과해 법제화되었다. Bill 11은 의사가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겸할 수 있는 Dual Practice가 핵심이다. UCP의 의료구조개편은 민간의료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민간의료 확대는 진통제이지 치료제가 아니다. 민간의료 확대는 “돈으로 줄서기” 현상이 생겨 취약 계층은 공공의료에서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불평등한 사회현상을 만들어 낸다.
Dual Practice가장 큰 문제는 이 체제에서 의사가 공공에서 민간으로 이동할 뿐이지 부족한 의사가 저절로 늘어나지 않고 부족한 병실, 수술실이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제도가 진통제이지 치료제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민간의료는 이익이 우선이므로 병상이 빨리 빨리 돌아가는 쉬운 수술, 간단한 수술에 치중하고 위험이 수반되는 수술,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고령 만성질환 수술 등은 여전히 공공의료가 담당하게 되므로 오히려 대기시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Dual Practice에서 일부 환자들은 빠른 진료를 경험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간진료 단가 상승, 공공의료와 경쟁으로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므로 정부는 민간의료 계약 비용 상승에 공공의료 유지 비용 상승의 악순환이 생긴다.
또한 의료비용의 일부를 개인이 부담하거나 사설 보험이 부담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개인의 재정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취약계층에 결정적으로 경제적 타격을 준다.
UCP가 민간의료 확대하는 이유
길어지는 대기시간, 의료 인력 부족, 병상과 수술실 부족에 불만 가득한 유권자들에게 주정부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민간의료 확대는 주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민간의료를 확대해 수술이나 검사에서 일부 주민이라도 짧아진 진료를 경험하면 좋은 선전 효과가 된다.
연방정부와 관계에서도 민간의료 확대는 주 권한 강조로 비춰져서 앨버타 독립을 외치는 지지층이 공감한다
민간의료 확대는 UCP의 이념적 정합성과 일치한다. Libertarianism(자유의지론) 세계관을 갖고 있는 UCP는 “경쟁이 효율을 만드니까 공공이 의료를 독점하는 것은 비효율적” 이므로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UCP지지층은 보수, 극우이므로 민간의료 확대로 사회주의 의료와 대결한다는 구도를 만들어 지지층 결집에도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