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 총리의 위기관리능력, 믿을 수 있을까? 위기에 총리가 된 사나이 _ 오충근의 기자수첩
사진: CBC다보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카니 총리:
작년 3월 카니가 총리에 취임할 때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지 두 달 남짓 되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분별한 관세전쟁을 벌였고 캐나다도 직격탄을 맞아 깊은 상처를 입었다.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경제 체급이 캐나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 내상이 당장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한 후유증을 앓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관세전쟁은 캐나다인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미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카니는 총리가 되었다. 자유당은 정권을 빼앗길 위기에 있었다. 트뤼도 전 총리의 지지도는 최악으로 총선에서 보수당 집권은 “떼 논 당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카니가 당 대표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고 결과는 자유당이 기사회생 했다.
카니는 총리가 되자마자 트럼프라는 힘 겨운 상대를 만났다. 고율의 관세, 무역,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조롱과 압박, 요동치는 국제질서에서 트럼프에게 강하게 반발해 우호적 관계가 아닌 긴장된 관계를 설정했다.
차이나와 관계 개선을 통해 그동안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가 해빙무드로 돌아섰다. 그러나 트럼프는 불쾌하다는 듯 “불 난 강변에 덴 소 날뛰듯” 카니 총리를 주지사라로 조롱하며 차이나와 무역협정 체결하면100% 관세부과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캐나다가 잘 사는 것은 미국 덕”이라고 비하하자 “캐나다가 잘 사는 것은 캐나다 국민 덕”이라고 맞받아쳤다. 미국과 긴장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공산이 커졌다.
구원투수로 등판해 자유당을 구한 카니가 공갈포 트럼프를 상대로 캐나다를 구할 수 있을까? 아무 공이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트럼프를 삼진으로 잡을지, 아니면 실투로 홈런을 맞을지, 그건 좀 더 두고 봐야 지만 그는 좀처럼 실투를 던지지 않는 침착하고 영리한 유형이다.
차이나와 관계 개선
자유당 정부와 차이나는 전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차이나에 서구 지도자로서 처음 방문 한 사람이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로 차이나 국제무대 데뷔에 산파 역할을 했다. 우호적 관계를 이어오던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의 요청으로 맹만주(孟晩舟) 화웨이의 재정담당을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해 양국관계가 파경에 이르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캐나다가 입었다. 카놀라 보복관세로 농민들이 피해를 입었고, 맹만주 구금에 맞서 차이나 정부는 캐나다인 사업가 마이클 코브릭과 마이클 스페이버를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공산당의 전형적인, 전근대적인 인질외교다. 3년이 지나 캐나다가 맹만주를 기소유예 처분하자 차이나도 두 마이클을 병 보석으로 석방했다. “맹만주 기소유예와 두 마이클의 석방은 무관하다.”는 멘트를 날리면서.
차이나 정부는 로버트 로이드 셀렌버그를 상대로 더욱 극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그는 2014년 히로뽕 222킬로그램을 차이나에서 호주로 밀수출 하려다 체포되어 15년 징역에 재산몰수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 과정에서 맹만주 체포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상급법원은 “죄가 너무 가볍다.”면서 재심을 명령해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것도 전형적 인질외교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중 카니 총리의 차이나 방문으로 양국 사이에 해빙무드가 조성되자 최고법원을 느닷없이 셀린버그의 재심을 명령했다. 마약 범죄가 반 사회적 악질 범죄이기는 하지만 정해진 법대로 처벌받으면 되는데 정치적으로 사형과 재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권위주의 독재국가, 경제는 자본주의를 따르면서 정치적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 차이나를 상대로 카니 정부는 가시적 성과를 나타냈다. “정치는 정치, 시장은 시장”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점의 접근 결과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전기차 관세를 100%에서 6.1%로 낮춰 많은 사람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 전기차에 관심을 나타냈다. LNG수출협력, 농 축산물 교역확대를 약속했다. 이에 화답해 차이나는 카놀라 관세를84%에서 15%로 낮추고 바다 가재와 게에 부과되던 관세 25%를 올해 말까지 유예한다. 이에 노바 스코시아 어업 종사자들은 환호를 했다. 미국 때문에 망가진 양국관계가 해빙무드를 타자 미국은 또다시 어깃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제 무역에서 계속해서 시장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 선 카니 총리
카니는 총리 취임 후 두 번 국제 무대에 섰다. 작년 6월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7 회의에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도했다. 그는 G7 주도의 핵심광물 생산 동맹을 창설했고 디지털 전환 주도 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우크라이나에 20억 달러 추가 군사지원, 23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확정한 것도 외교적 성과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호주, 우크라이나, 인도 정상을 초대해 G-7의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
다보스 포럼에서 카니 총리는 국제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캐나다 국립은행 총재, 영국은행 총재를 지내며 경제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는 것에 익숙한 카니 총리는 단숨에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이번 다보스 포럼 연설문은 그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체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았다.
카니 총리는 오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기자들 질문에 고압적으로 대한다고 알려졌고 토론에서도 종종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고 알려졌다. 그의 오만함은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 말한대로 해낼 수 있고 캐나다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
지난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 카니는 “미국이 리더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캐나다가 맡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이번 다보스 연설에서 보여주었다.
전 세계 정치, 경제 지도자 앞에서 트럼프의 황당하고 변덕스럽고 예측불허의 요구에 맞서 협력하자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그의 연설 초반에 체코의 하벨 전 대통령의 에세이 “무권력자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을 인용했다. 하벨 전 대통령은 공산정권 치하에서 반체제 인사였고 소비에트 붕괴 후 자유 체코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카니 총리의 연설은 공산정권 시절 식품점 가게 주인이 창문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문구가 모든 창문에 걸려 있다는 사실은, 체코인들이 “거짓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카니 총리는 소련 공산주의의 공포를 오늘날의 미국과 연결 지었다. 이 메시지는 트럼프의 기이한 요구들에 놀라고 두렵고 어이없어 하던 유럽인들로 가득 찬 방 안에서 강력한 울림을 주었다.
카니 총리의 연설은 트럼프 요구에 굴복하면서도 주권국가인 척하는 유럽을 향한, 세계를 향한 경고였다.
다보스 연설은 카니 총리가 국제 리더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알다시피 카니 총리는 경제 전문가로서 정치는 초보자다. 나이 60세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많은 사람들이 가졌었다. 트럼프가 아니었으면 정치인 카니는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카니 총리는 캐나다인들이 필요로 했던 차분하고 경험 많은 위기 관리자였다.
야구에서 구원투수는 변덕스럽고 요란한 상황에서 등판한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원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일관성, 침착함, 차분한 품행으로 압박을 이겨냈다.
국내정치와 카니 총리
멀지 않은 장래에 카니 총리는 정치적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작년 말 두 명의 보수당 의원이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겨 다수당 172석에서 한석이 모자란다. 그런데 자유당에서도 2명의 의원이 사임해 다시 3석 부족이 되었다. 폴리에브로 당 대표는 1월30일 캘거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87.7%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재신임 되었다. 이는 스티븐 하퍼의 84% 지지율을 능가하는 지지율로 당권을 장악하고 정권 탈환에 도전할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트럼프 재선 이후 입지 확보가 애매모호 하게 되었다. 그의 지지층은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갈라져 있는데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보수당은 이 문제를 안고 가야 한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얻은 국제적 명성이 정치적 성공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캐나다에는 피어슨이라는 스타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고 수에즈 운하 무력 분쟁 해결로 노벨 평화상 수상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피어슨이 “세계를 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제적 명성의 소유자도 국내 문제에서 국민들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주어야 한다. 경제전문가 카니 총리는 그럴 능력의 소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