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인노래방? 여긴 없어요”…한인 새내기들 ‘문화 공백’ - 코인노래방·PC방 전무 “구조적 한계” - 한인 유학생·워홀러 문화 공백 체감
캘거리 다운타운 도심 전경 (사진 : 이정화 기자)
캘거리 17애비뉴 거리 전경 (사진 촬영 : 이정화 기자)
(이정화 기자) 한국에선 동전 하나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즉석 사진을 찍는 일이 일상이다. 대도시인 밴쿠버와 토론토에서도 무인 노래방과 코인 PC방, 셀프 포토부스 등 익숙했던 공간을 때때로 볼 수 있다. 반면 캘거리에서는 이런 '코인 문화'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한인 새내기들 사이에서는 정서적 낯설음과 문화적 고립감이 번지고 있다.
■ 한국엔 많은데 캘거리에선 찾기 힘든 ‘코인 문화’
한국의 코인 문화는 단순한 자동결제 시스템을 넘어 소형 독립시설로 정착했다. 대표적인 예가 코인노래방이다.
이 시설은 전국 대부분의 대학가와 주거 밀집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30세대 사이에선 혼자서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즉흥적 스트레스 해소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가격도 약 500원에 한 곡을 즐길 수 있는 저렴한 구조다. 특정 브랜드 없이도 지역 기반 자영업자들이 독자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진입 장벽도 낮다.
하지만 캘거리에는 이런 공간이 없다. 한인들이 밀집한 NW나 다운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검색해도 무인 형태의 코인노래방은 없다. 노래방 자체도 대부분 유인·예약 기반의 프라이빗 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무인 PC방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지하철역이나 골목 상가 곳곳에 설치된 코인PC방은 없고 대부분 게임 라운지형 공간에 국한된다. 마사지 의자나 포토부스 같은 소형 코인기기는 쇼핑몰이나 트레인역 인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코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설은 코인빨래방뿐이다. 워홀러나 자취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 무인 세탁실은 캘거리 곳곳에 분포돼 있다. 필수생활 영역에 가까울 뿐 여가 소비로 확장되진 않는다.
이처럼 여가 중심의 소형 코인 문화는 한국에선 일상이고 캘거리에서는 ‘없어서 못 즐기는’ 부재의 대상이 됐다. 한인 새내기들에겐 이런 공백이 단순한 차이를 넘어 문화적 이질감을 실감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왜 여긴 없죠?”…수요 부족 넘어 제도적 한계
캘거리에 코인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수요 부족만이 아니다. 제도와 상권 구조 자체가 해당 업종 확장에 제약을 주고 있다. 특히 ▲고정비 부담 ▲낮은 인구밀도 ▲효율 우선 소비 성향 부족 ▲한인타운 규모 미흡 등이 주요 요인이다.
우선 무인 오락시설은 ‘24시간 운영’이 핵심이다. 하지만 캘거리에선 대부분의 상업용 건물이 자정 이후 자동으로 출입이 통제되거나 건물 전체가 닫힌다. 실내 보안과 청소 스케줄, 인근 주거지역 소음 민원 등을 고려하면 야간까지 개방된 공간을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또 코인노래방이나 무인게임시설 등은 시 보건국 또는 AGLC(앨버타 주류·도박위원회)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노래방은 별도 소방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무인 운영일 경우 비상 시 대응 체계가 명확해야 인허가가 가능하다.
임대 구조도 걸림돌이다. 대부분 상가는 넓은 스트립몰 단위로 임대되는 데다 관리비 부담이 높고 고정비가 크다. 한국처럼 좁은 공간에 소형 기계를 밀도 높게 설치하는 방식은 채산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한인 밀집 지역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입점도 어려운 상황이다. 캘거리는 토론토·밴쿠버와 달리 한인타운다운 중심지나 고밀도 한인 상권이 없다. 단독 창업보다는 프랜차이즈와 복합 상권 중심의 점포 유치가 선호되는 흐름도 코인문화의 확장을 더디게 하고 있다.
■ 한인 새내기, 낯선 도시에서 느낀 문화 공백
무인 노래방과 셀프 PC방, 즉석 사진기처럼 한국에선 흔한 코인 문화가 캘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자 처음 이주한 한인 새내기들의 문화 충격은 작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올해 초 캘거리로 유학 온 20대 A씨는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 할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면서 “학업 스트레스가 심할 땐 가까운 코노에서 기분 풀었는데 여기는 그런 공간이 없어 가끔 답답하다”고 말했다. 친구들과의 즉흥적 만남이나 짧은 여가 소비가 어려운 환경에 허전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워홀로 온 30대 B씨도 비슷한 불편을 토로했다. 그는 “빨래방 같은 필수 코인 시설은 있더라도 노래방이나 PC방처럼 감정 해소가 가능한 공간은 전혀 없어 의외였다”며 “기계만 있으면 되는 구조인데 왜 여긴 안 생기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대도시 간 문화 격차를 체감한 이들도 있다. 직장인 C씨는 “밴쿠버에 다녀왔을 때 무인 코인노래방과 셀프 포토부스 등이 한국처럼 있어 부러웠다”면서 “캘거리는 생활 기반은 갖췄지만 문화 인프라는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선다. 코인 문화의 부재가 단순히 여가 소비의 제약에 그치지 않고 정서적 고립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래 한 곡조차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이 도시는 나와 맞지 않는다”거나 “캘거리는 즐길 거리가 없고 재미없다”는 인식으로 번질 수 있다.
이처럼 캘거리의 코인 가뭄은 초기 정착자들이 느끼는 낯섦과 단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캘거리 현실에 맞는 소규모 무인 여가 공간이나 셀프형 시설에 대한 관심은 한인 커뮤니티 안팎에서 조금씩 움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