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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사물주의의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2

덕향 이명희
 
글 : 덕향 이명희 / 시인 & 평론가 (한국문인협회 알버타 지부)

구석/김기택(사실적)

다 열려 있지만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
비와 걸레가 닿지 않는 곳
벽과 바닥 사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곳
하루 종일 있지만 하루 종일 없는 곳
한낮에도 보이지 않는 곳
흐르지 않는 공기가 모서리 세워 박힌 곳

오는 듯 마는 듯 날개 달린 먼지가 온다
많은 다리를 데리고 벌레들이 온다
바람과 빛이 통하지 않는 습기와 냄새가 온다
숨어 있던 곰팡이들이 벽을 뚫고 돋아난다

아기 손가락이, 어느 날, 만져본다
문이 없어도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
후벼본다 긁어본다 빨아본다
엄마가 없어도 튼튼하고 안전한 곳
머리를 넣어본다 누워본다 뒹굴어본다
손가락으로도 꽉 차지만 온몸이 들어가도 넉넉한 곳


눈먼 사람/김기택(감각적)

똑똑 눈이 땅바닥을 두드린다
팔에서 길게 뻗어 나온 눈이 땅을 두드린다
땅속에 누가 있느냐고 묻는 듯이
곧 문을 활짝 열고 누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는 듯이

눈은 공손하게 기다린다
땅이 열어준 길에서 한 걸음이 생겨날 때까지

팔과 손가락과 지팡이에서 돋아난 눈이 걷는다
한 걸음 나아가기 전까지는
거대한 어둠덩어리이고 높은 벽이고 아득한 낭떠러지다가
눈이 닿는 순간
단 한 발자국만 열리는 길을 걷는다

더듬이처럼 돋아난 눈은 멀리 바라보지 않는다
하늘을 허공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나아갈 방향 말고는 어느 곳도 곁눈질하지 않는다
눈에 닿은 자리, 오직 눈이 만진 자리만을 본다

어쩌다 지나가는 다리를 건드리거나
벽이나 전봇대와 닿으면
가늘고 말랑말랑한 더듬이 눈은 급히 움츠려든다

눈이 두드린 길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온몸이 눈이 되고 길이 된다
허리가 잔뜩 줄어들었다가 쭉 펴지며 늘어난다
몸 안으로 들어온 길만큼
한 평생의 체중이 실린 또 한 걸음이 나아간다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2]에서 시인의 자각이 확장되고 있다. 시인의 내면과 주제를 파악하려면 시인의 환경과 심경을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의 이해는 시인의 삶을 알아가는 수순에 있다.

인간의 미완, 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구석]과 [눈먼 사람]은 교집합이라는 사물주의의 카테고리에 사실적 시 A와 감각적 시 B로 세분화했다. [구석]과 [눈먼 사람]의 시 속에서 숨어 있는 화자를 찾아내야 한다.

오규원의 [현대시 작법]을 참고 분석해 보면 ‘a와 b, 즉 화자는 숨고,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묘사한 감각적 지각을 바탕으로 한 형태이다.’에서 [구석]은 고정 시점에 의한 객관적 묘사이고, [눈먼 사람]은 주관적 묘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세영의 [21세기 한국 시 연구] ‘휴머니즘론’에서 백철 탐구론을 참조하면 ‘백철은 인간 묘사 혹은 인간형 창조라는 말을 병행하고 있는데 문학의 목적은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에 있으며 실현의 방법은 리얼리즘에 있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구석- 구석과 인간의 관계에서 구석을 ‘외로움’이란 상징어로 삼아 본다. ‘닿지 않는 곳’ ‘나오지 않는 곳’ ‘종일 없는 곳’ ‘보이지 않는 곳’ ‘세워 박힌 곳’ 구석에 박혀있는 인간의 리얼한 모습을 구체화한 것은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로 볼 수 있고, ‘실현의 방법’은 구석에 있는 인간에게 손을 뻗어 관심을 두는 건데 이것을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물을 백철의 ‘탐구론’에 적용해 본 경우다. (1연)

‘먼지가 온다’ ‘벌레가 온다’ ‘냄새가 온다’ ‘돋아난다’는 원하지 않는 ‘슬픔’을 상징어로 떠올려 본다. 먼지, 벌레, 습기, 냄새, 곰팡이는 피하고 싶은 사물이다. 거부하고 싶은데, 곁에 있다. 이들과 함께하는 게 세상 이치다. 뿌리치고 엮이고 싶지 않은데 피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며 순리다. (2연)

‘만져 본다’ ‘후벼 본다’ ‘긁어 본다’ ‘빨아 본다’ ‘넣어 본다’ ‘누워 본다’ ‘뒹굴어 본다’ 아기는 손가락으로, 머리로, 몸으로 구석을 찾아 확인해 본다. 엄마가 없지만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구석은 숨기 좋고 편안한 곳이다. 현대인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구석에 ‘평안’이라는 상징어를 부여한다. (3연)

눈먼 사람- 볼 수 없는 눈이 세상을 향해 두드린다. 배려할 입장이 아닌데 주눅 든 인생이 쓸데없이 조심스럽다. 눈먼 사람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되레 공손하다. 팔다리 세포의 촉이 눈이 되어 거대한 어둠 덩어리와 높은 벽을 만나고, 낭떠러지 같은 착시를 반어가 아닌 직언으로 미래의 발자국을 뗀다. (1, 2, 3연)

올려다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남의 삶을 넘보지 않는다. 일관되게 겸손하고 피해의식을 갖지 않고, 꼬이지 않은 순한 삶이다. 인간 사회의 모순인데, 피해는 언제나 눈먼 약자의 몫이다. (4, 5연)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삶의 방어 자세다. 멀쩡한 것 같지만 넘어질 듯, 쓰러질 듯 살아온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구다. 눈먼 사람은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기에 고자세보다 융통성이 있다. (6연)

[눈먼 사람]은 장애자에 국한된 게 아닌 똑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을 말한다. 수십조의 세포가 있어도 사고와 감성이 죽은 사람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특별한 삶은 한정되어 있다. 팔다리가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줄 신. 인간.사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석]에 있거나 [눈먼 사람]들도 지팡이 또는 안내견의 도움을 받기 전에 자신의 의지로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김기택 시인은 사물과 하나다. 시인이 사물이고, 사물이 인간이다. 사물에 감정을 이입한 건 당신의 운명이며, 우리들의 필연이다. 사물을 통해 화자의 귀함을 깨닫고 사물과 함께함으로써 존재를 상기시켰다.














기사 등록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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