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술 마시지 마세요”…캘거리 광고에 놀란 한인들 - 태아알코올증후군 20만 추정
“한 잔쯤 괜찮다” 인식 확산, 전문가 “소량 노출도 위험”
앨버타 주류 규제기관 AGLC의 임신 중 음주 예방 캠페인 영상 화면 (사진 출처 : AGLC)
(이정화 기자) 만삭 임산부의 모습 위로 “술을 마시거나 대마초를 피우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캘거리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정부 공익광고다.
한국인 시각에서는 “왜 이런 당연한 내용을 세금까지 들여 광고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 메시지 뒤에는 앨버타가 오랫동안 대응해온 태아알코올증후군(FASD)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 자폐증보다 흔한 앨버타 고질병 'FASD' 20만 추정
현재 캐나다 전체 인구의 약 4%가 FASD를 겪고 있다. 이 중 앨버타 내 환자 규모만 약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주내 자폐증과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환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FASD가 유행병 수준으로 확산했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FASD 증가세는 일상적 음주 문화와 연관이 있다. 캐나다 보건부에 따르면 현지 임신의 50~60%가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인지하기 전인 극초기에 태아가 알코올에 노출되기 쉽다.
북미 임산부의 15.2%가 최근 30일 이내(6월 기준) 음주 경험이 있었다. 이 중 4.9%는 폭음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브리스톨 의과대학 연구진도 태아기 알코올 노출과 청소년기 위험 행동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앨버타 보건당국은 임신 기간 9개월 동안 금주를 유지하자는 'Dry9'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매년 9월 FASD 인식의 달에는 캘거리 타워를 붉은빛으로 밝히는 등 대중 인식 개선 활동도 이어진다.
■ "파티인데 한 잔쯤"…보건계 "소량 노출도 치명적"
반면 앨버타주의 주류 및 대마초 관련 제도는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주정부는 규제 완화를 이유로 주류 판매 시작 시간을 오전 6시로 앞당겼고, 대마초 농가 직거래 제도인 '팜게이트(Farm-gate)'를 도입해 구매 문턱을 낮췄다.
여기에 대마초 합법화가 장기화되면서 젊은 임산부들 사이에서는 대마초를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이 아닌, 입덧과 불안을 달래주는 ‘천연 허브’ 정도로 가볍게 인지하는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현지 온라인 공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레딧 캘거리 채널에는 "임신 중 가벼운 음주는 태아에게 무해하고 오히려 엄마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일부 영미권 서적의 주장을 인용하며 음주를 정당화하려는 예비 부모들의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반면 정부의 직설적인 공익광고를 옹호하는 이들은 현지의 느슨한 경각심을 직접적인 목격담으로 고발한다. 한 유저는 "현지 홈파티나 모임에 가면 임신 초기인 예비 엄마에게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며 술이나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권하는 문화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파티에 온 어떤 임산부는 토닉워터와 탄산수에 직접 술을 섞어 마시며 괜찮다고 하더라"며 황당했던 일화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타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 극단적인 개인의 자유(My Body, My Choice) 문화가 결과적으로 태아 보호에 대한 도덕적 억제력을 약화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임신 중 음주와 대마초 사용을 둘러싼 인식은 문화와 세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한국 등 일부 사회에서는 임신 중 금기가 비교적 명확한 반면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북미 사회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이 공존한다.
이를 두고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소아과학회(AAP) 등 글로벌 보건 전문가들은 "합법화된 대마초나 일부 서적의 자의적 통계 분석이 젊은 임산부들에게 '소량은 괜찮다'는 왜곡된 면죄부를 주고 있다"며 "FASD 예방책은 임신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출산할 때까지 술과 약물을 '단 한 방울도' 대지 않는 완전한 금욕뿐"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