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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환 군악대장 _ 약속의 땅 가나안 2-9
글 : 양재설 (캘거리 교민)

J는 1957년 4월 8일에 육군에 입대했다. 육군 본부와 논산 훈련소의 행정 착오로 훈련소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강경에서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신체 검사를 받고 군번을 받았다.
J가 받은 군번은 10154100이다. 논산 훈련소에서 군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을 마치고 배속된 곳은 장충단 공원 앞에 자리잡고 있는 육군 본부 군악대였다.
J는 이곳에서 작곡가 김희조 선생을 처음 만났다. 이 분은 육군 군가를 많이 작곡한 분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중령으로 육본 군악대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신흥 대학교(지금의 경희 대학교) 음대에 강사로도 출강하고 있었다.
육본 군악대에 새로 배속된 사람들은 대부분 음대를 다닌 사람들로서 각종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J와 같이 약간의 음악적 상식을 가지고 음악을 더 배우기 위해서 온 사람은 세 사람 뿐이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우리들은 음대를 다닌 사람들을 따라 갈 수 없었다. 그렇게 되자 세 사람을 28사단 군악대로 전속 발령을 했다. 이때 28 사단 군악대는 경기도 양주군 신산리에 있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군악 대장은 정필환 중위로 경비대 시절에 사병으로 군에 입대해서 장교로 임관한 사람이다. 이 분은 오랜 군인 생활로 노련한 통솔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같은 일등병이라도 군번이 빠른 사람에게 절대 복종 하도록 했고 사병들은 항상 바쁜 생활을 하도록 계획하고 계획한 대로 실천하였다. 사병이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면 잡생각을 하게 되고 이 잡생각으로 인해서 탈영, 자살 등 각종 사고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J와 같은 사병들은 항상 바쁘고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다. J는 이런 정필환 중위를 인정사정도 없는 차가운 사람으로 생각했고, 군대생활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악대장에 대한 J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사건이 일어났다.
1958년 4월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다. 군악 대장실에서 전화 받으라는 전갈이 왔다. 나와 같은 쫄병에게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누가 했을까 생각하며 J는 전화를 받으러 갔다. 전화를 한 사람은 군악 대장이었다.
“나 군악 대장 정중위인데”
“네!”
“내가 사단본부 부관 참모장님실에 와있거던”
“네!”
“너 육군 본부 특명으로 서울로 전속 특명이 났는데 부관 참모장님이 육군 본부 부관감실에서 오래 계시다가 6개월 전에 사단 부관 참모장님으로 오신 분이거던, 그래서 말인데 부관 참모님께 부탁해서 너의 전속 명령을 취소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나?”
J는 전속 명령이 난 줄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뜻밖에 군악 대장의 질문은 J를 당황하게 하였다.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저는 쫄병인데 군대에서 쫄병이 무엇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알았어. 전출 복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어. 부관 참모장님하고 상의해서 다시 알려 줄터이니까”
J는 전화를 끊고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한참 후에 군악 대장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전출 복장으로 대기하고 있나?”
“네!”
“내가 취사반에 말했으니까 먼저 가서 점심식사하고 내 사무실로 와”
J는 긴장이 되어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대장실로 갔다. 군악 대장은 먼저 J의 전출을 못가게 하려고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설명했다. 내가 군대 생활을 10년 이상하면서 많은 신병을 다루어 봤는데 J같은 아이는 처음 봤다는 것이다. 자기 욕심으로 J가 제대할 때까지 데리고 있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J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국악대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나와 같은 쫄병은 사람 취급도 안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 인 줄 알았는데 겉으로는 표시를 안했지만 군악대원 한 사람 한사람의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군인 생활을 편안히 하려면 요령껏 해야 된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었다. 군대에서 요령껏 한다는 말을 좀 더 설명하면, 감독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안보이면 그대로 주저 앉아 노는것이다.
J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그러한 요령 부리는 것이 신앙 양심상 허락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J는 요령 부릴줄 모르는 시키는 대로 하는 바보같은 군인이였다. 한 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전 대원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모든 대원이 열심히 일하는데 J는 혼자만 교회 가겠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어떤 대원이 말했다.
“오늘 저녁 교회가는 날인데요”했다. “교회갈 놈들은 앞으로 나와”라는 말이 떨어지자 7, 8명이 우르르 나왔다. “너희 놈들은 교회 안가다가 작업할 때면 간다는 놈들이니까 안돼” 그리고 J에게만 교회 갔다 오라고 했다.
J는 어떠한 어려운 조건에서도 산길로 30분 거리에 있는 군인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이러한 J의 생활하는 모습이 군악 대장의 시선을 끌게 했던것 갔다.
군악 대장은 J에게 묻기를 누구에게든지 돈을 꾸어준 것이 있으면 액수의 다소를 막론하고 다 말하라고 했다. 이제 떠나면 또 만날 기회는 없으니까 내가 다 받아 주겠다고 했다.
J는 한 계급 위인 강원도 강릉 사람이 휴가갈 때 여비가 모자란다고 해서 꿔준 사람이 있었지만 없다고 했다. 정말 없냐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 씩이나 다짐하며 물었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을 값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J는 끝까지 없다고 했다. 좋아 그러더니 J에게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했더니 얼마 안되는데 차비나 하라고 한다.
육군 중위의 월급으로 생활하려면 항상 모자라서 쌀, 부식, 심지어 땔나무까지도 부대에서 가져다 써야 할 형편인 것을 J는 알고 있는데 떠나는 J에게 차비까지 배려하는 그에게 감동했다. 그런데 J를 더 감동시킨 것은 그 후에 일어났다.
군악 대장은 J보고 따라 나오라고 했다. 연병장에는 행사 요원과 비행사 요원까지 모두 점심을 안먹고 악기를 하나씩 들고 사열받는 형태로 서 있었다. (비행사 요원까지 악기를 들고 집합하는 일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열중 쉬엇, 차렷, 구령을 몇 번 한 다음 군악 대장이 지휘봉을 들고 앞으로 가고 J는 군악 대장 뒤를 따라 가면서 대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별의 악수를 했다.
이러한 일은 외부에서 높은 사람이 왔을 때와 사단장의 사열을 받을 때 하는 행사와 같은 것이었다. J와 같은 쫄병에게 이렇게 하는 일은 전무한 일이었고 후일에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맨 앞줄에서 시작을 해서 뒷줄까지 다 마치고 부대를 떠나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을때 J의 뒤통수에다 대고 이별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J는 밴드 소리에 맞춰서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것 같았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오늘 군악대에 무슨일이 있냐고 물었다. 군악대에서 동네를 향해서 나팔을 부는 일은 전에는 없었던 일인데 오늘은 동네를 향해서 불고 있으니 연주하는 곡이 J를 위해 부는 이별가인줄 모르는 농부가 묻는것이다. J가 밭을 지나고 동네도 지나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탈 때 까지 약40분을 계속해서 이별가를 연주하였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졌는데도 산중턱에서 아래를 행해서 부는 나팔소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멀리멀리 울려 퍼지고 있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2/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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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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