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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수기) 야 빵 맛있겠다_3
글_이경임 (캘거리 교민)

1985년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이는 학교에 조교로 남아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곧바로 시골로 가야만 했다. 약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위암과 식도암이 겹쳐 끝내3월말 돌아 가시고 어머니도 고혈압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므로 나는 집에서 어머니를 도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흘이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그 애틋함이 더 해만 갔다.
편지지 구석구석에서는 그이의 사랑이 향수처럼 베어 나와 나의 가슴을 감싸 안고, 어쩌면 우리가 헤어져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애절함은 나의 심장을 아려지게 하였다. 그때 주고 받은 편지들은 지금도 우리의 보물 1호로 서랍장 속에 간직 되어 있다.
우리는 가끔 편지를 꺼내어 읽어 보면서 옛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조금 유치한 내용에서는 키득키득 웃곤 한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사람들이 유치해 지지 않는가.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씨가 상대 여배우에게 “애기야” 하고 불렀듯이.
매일 같이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나에게 중신애비들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과년한 처자가 있으니 중신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맞선이 들어 올 때마다 나는 거절했고 그때 마다 엄마는 ‘사귀는 사람은 없니? 그 동안 남자 하나도 못 사귀고 뭐했냐.’는 등등 나를 다그쳤고 나 또한 선을 한번 보라고 어머니가 권할 때 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거절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대학원 진학을 하였다. 밤 열한시, 열두시가 될 때까지 목욕탕 청소를 끝내고 새벽에 일어나 버스로 두시간 거리를 일주일에 세 번씩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나는 다시 숙모님 집으로 더부살이하러 들어갔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우리는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는 도중 나의 언니와 사촌이 그이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모두들 나를 걱정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과 생각을 중요시 해 주었다.
우리는 별빛이 내리는 밤 수성못 가를 팔짱을 끼고 거닐었으며, 짜릿하게 느껴져 오는 전율을 가로등 불빛 잠든 물 속으로 던져버리곤 했다.
추운 겨울날이면 그이의 코트 주머니 속에선 그이와 나의 손가락이 서로의 체온을 전해 주었고, 포장마차 안에서 마실 줄도 잘 모르는 소주 한잔에 꼼장어구이, 따뜻한 오뎅 국물이면 그날의 데이트는 최고였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버린 내가 지금 내 남편의 손을 잡고, 팔장을 끼고 키스를 하며 데이트를 한들 그때 만큼의 설레임은 절대 돌아 오지 않겠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아는 성숙된 제 2의 사랑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숙모님의 아파트는 1층 이었고 내방은 베란다와 연결된 방이었는데 그이는 수시로 내방 창가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세레나데도 아니요 뻐꾸기는 더더욱 아닌 노래. "세현아, 세현아." 내 이름을 부르면 숙모님이 눈치 채실까 봐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노래.
살그머니 문을 열려고 하면 문소리는 왜 그리도 삐거덕 삐거덕 크게 들리는지. 방문을 열고 베란다 창을 다시금 열면 그이의 나와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운 모습이 달빛 머금고 저만치서 웃고 있었다. 여전히 착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서서. 베란다 창살 사이로 차가와진 그이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 그이는 내게 살그머니 봉지 하나를 내민다. 내미는 봉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덕대게가 들어 있었다. 5분간의 창가 미팅을 끝내고 나는 열심히 대게를 뜯는다. 짭짤히 배어 나오는 국물에 대게의 하얀 속살이 쏘옥. 그이를 생각하며 혼자서 배가 터지도록 대게를 먹었다. 흰눈이 내리는 날에도, 추질추질 비가 내리는 날에도, 겨울 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도 그이는 수시로 나의 창가를 찾아 노래를 불렀다.
세월은 자꾸만 흘러 가고 어느덧 나도 결혼이란 인륜지 대사에 대해 더욱 더 많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집은 딸만 둘. 그 중 나는 작은딸이었다.
언니는 남의 집 맏며느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돌아 가셨고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언제 쓰러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어머니를 내가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 시부모는 고사하고 친정어머니를 모시려면 시댁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할 것 같았고 또 남편 되는 사람의 도움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내 사랑에 대해 어머니에게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살던 동갑내기 사촌은 의대에 다녔었고 사촌의 스터디 그룹 친구들은 자주 우리 아파트에서 모여 공부를 하였는데 그때 나는 그 친구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는 등 뒤치닥거리도 해주고 음악회장이나 디스코장에 갈 땐 어김없이 홍일점으로 끼여 다녔었다.
또 그 친구들은 내가 그이 보다 더 먼저 알게 된 친구들이었지만 왠지 남자 친구가 아닌 그냥 친한 친구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 하느님은 미리부터 내 눈을 멀게 만들어 놓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딸 가진 어머니들의 바람과 같이 '사'자 붙은 사위를 맞이하고 싶어 했으며 혹시 내 사촌의 친구들 중에 하나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이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더욱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 건강은 더 나빠져 갔고 그래서 어머니는 건물까지 세놓았다. 그이는 조교로 일하면서 카이스트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나는 그때 그이가 시험에 합격하면 그이와 이별하기로 혼자 생각했었다. 카이스트 출신이라면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결혼하여 잘 살 거라고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마 그렇게 되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으리라.
1987년 가을, 나는 서울에 사는 언니 집에 머무르면서 형부 일을 도왔는데 한두 달에 한번씩 우리는 만나 여행도 하고 63빌딩에도 가고 놀이공원에 가서 청룡 열차도 탔다. 어린아이 마냥 솜사탕도 사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가위,바위, 보 하면서 계단도 오르내리고. 지금은 절대로 탈수 없는 청룡열차를 둘이서 타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풍을 떨어 가면서 놀이 기구를 탔다. 그리곤 또다시 한두 달 간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그이는 대구로 떠났다.
1988년 9월, 교수님들이 여기저기 권하는 직장이 많았으나 학교에 남아 있기를 원하던 그이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뽑히느냐 마느냐의 사회적 시각의 편견 속에서 정식 직원으로 발령 받았다.
카이스트에 들어가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몫을 하는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 해 12월,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기시던 어머니가 두 번째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를 속일 수도, 시간을 벌 수도 없었다. 나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이와 헤어지기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당시의 대학교 전산실 직원들은 예비고사가 끝나면 외부와의 연락이 통제되면서 학교 사택이나 호텔에서 일주일 정도 먹고 자며 일했다.
(다음호에 계속)


본 내용은 CN드림 20호(5/20일 2003)와 2005년 1/28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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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3-10-05
애플파이1 | 2016-08-18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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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4편과 5편은 찾을수가 없네요

운영팀 | 2016-08-18 1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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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다시 기사 수정했구요. .이경임 혹은 빵 맛있겠다...로 검색하시면 총 5개의 연재글 모두 검색됩니다.

운영팀 | 2021-12-09 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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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https://cndreams.com/news/news_read.php?code1=2345&code2=1&code3=270&idx=-1389&pag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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