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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섬_Salt Spring Island_2
 
글 : 김선정 (캘거리 문협)


아쉬움을 안고 다시 도로에 오른다. 남편은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고,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해 수 없이 나를 격려한다.

내 앞에 펼쳐지는 경치는 한국의 시골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매우 친숙하다. 포도 농장, 마늘 농장, 유기농으로 재배한 파, 마늘, 자두, 꽃등을 파는 무인 판매대등, 누렇게 타 들어가는 길가의 잡초들, 주렁 주렁 열린 노란 자두들, 무엇 보다도, 나른한 오후에 길게 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싶은 충동이 일게하는 큰 나무 아래 그늘과 늙은 풀들. 한가한 농촌 풍경에 저절로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

요트가 정박해 있는 부두를 지나 언덕을 오르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이 보인다. 주소를 보니 그 곳이 우리가 오늘 밤 텐트를 칠 곳이다. 보통의 시골 학교 운동장 만한 정원에 온갖 꽃들과, 나무들, 연못이 있고, 정원에서 일하던 50 내지 60 대 여자가 나와 우리를 반긴다. 모라는 우리에게 텐트 칠 장소를 보여준다. 바로 그녀의 정원 옆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을 보여 준다. 흙 볏집과 나무로 이루어진 집, 플라스틱 류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고, 모든 것이 나무와 돌로 이루어져 자연의 품에 들어온 착각을 하게 한다. 그녀는 동양의 음양 오행설과 풍수 지리설에 맞게 집을 지었고, 정원도 그것에 따라 배치를 했다고 말한다. 지금 그녀가 일하고 있는 정원도 완성되면,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를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참으로 순수하다. 잠시 후, 그녀의 남편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여자같고 가슴이 크다. 순간, 나는 그녀들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남자 옷을 입고 있고, 어투도 남자 같다. 그러나, 레즈비언이든, 게이이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전혀 문제가 안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됨됨이, 즉, 인간성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들과 마음을 터 놓고 대화를 한다. 그들은 상당히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여느 부자에게서 볼 수 있는 느끼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겸손하고 순박하며 물질을 숭상하지 않고 정신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담백한 영혼의 예술가들이다.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텐트로 돌아온다. 보통 캠핑장에서 겪었던, 야외에서는 마음껏 떠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용히 해야할 시간이 10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던 사람들, 안하무인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나의 잠을 설치게 했던 젊은이들, 우리 텐트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던 바로 옆 텐트장의 10명의 철없는 아이들, 그들이 이 곳에는 없다.

향긋한 꽃 내음과 그 속에서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 두 마리, 팔뚝만한 집 없는 달팽이들, 그리고 조용한 레즈비언 할머니들 뿐이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그 동안 즐기지 못했던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우리는 그 다음날도 이곳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다음날, 호수를 다시 찾는다. 가는 길에 무인 판매대에 노란 자두 봉투가 여러 개 있다. 커다란 봉지 2개에 5달러다. 가지고 있는 잔돈이 5달러가 될지 모르겠다. 운좋게 페니까지 긁어 모아 두 봉지를 들고, 돈을 깡통 속에 넣는다.

호수에 도착할 때 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가뭄을 시기한 비처럼, 메마른 땅에 마구 매질을 한다. 나무 터널에 들어서자 벌써 누군가 나체로 비를 맞으며 수영을 즐기고 있다. 경계없는 잿빛 하늘과 호수 속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비의 애무를 받으며, 그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다.

오늘은 내 마음이 방해가 안된다는 것을 안다. 비오는 날의 나체 수영을 기대하며 우리는 호수로 걷다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텐트 창문을 열어 놓은 것이 생각난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오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서둘러 걷는다. 그러나, 비는 화가 난 듯, 천둥 번개까지 동반해서 만물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끈적 끈적한 몸에 빗줄기가 쑤시고 들어오자 나는 몸을 웅크리고, 남편은 그의 웃옷을 벗어서 나에게 건넨다. 그러나, 비를 맞는 흥분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우리는 오랜만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는다. 빗줄기가 눈두덩과 입술을 때릴 때마다, 나는 오히려 빗줄기에 얼굴을 들이민다. 이상한 기쁨이다. 끼익 차가 서고 누군가 우리쪽으로 걸어온다.

그녀다. 모라의 남편 조이. 그녀는 우리를 금방 알아봤다고 말하며, 그녀의 차에 올라타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흠뻑 젖었고, 그녀의 좌석을 축축하게 할 것 같아 거절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한사코 우리를 그녀 차에 태운다.

텐트로 돌아온 후, 조이는 텐트에서 자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고 자꾸만 우리에게 물어본다. 방수가 되기 때문에 괜찮다하고, 우리는 텐트 안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텐트 위에 떨어지는 비 소리와 천둥 소리를 즐긴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는 이곳에 사는 수 백명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는, 토요 장터인 갠지즈로 나간다. 이른 아침의 상큼한 풀과 나무 내음에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우거진 숲이 주는 무한히 깊은 위로를 즐기며 장터에 들어선다.
(다음호에 마지막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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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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